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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카드는 재 발급되지만, 남편은 재발급이 안된다.

by 나경sam 202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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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당 성모님

시국이 이렇지만 네 번 정도 성가대 연습을 하고

성탄 밤 미사때 한 번 성탄 낮미사때 한 번

성탄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시국 전에는 원어로 된 성탄미사곡을

해마다 다르게 연습해서 부르느라 교중 미사후에

남아서 연습하기를 한달 이상은 해야 성탄미사를

드릴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성가만으로 소박하게 보냈다.

 

그래도 성가를 부를 수 있는 성탄절을 보낸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성가없이 살았던 근 이년을

보내보니 알 수 있었다.

노래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것이

성가대원의 특권이며,

그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못하다가 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1억모으기도 좋고 부자가 되겠다는 결심도 좋지만

성악 렛슨받고 수원교구 합창단에

입단하겠다는 인생 목표가 생겨버렸다.

하고 싶은게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새로 생기는 것 같아서 괴롭다.

 

어제보다 그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한 것도 미칠 노릇이다.

성탄절이라고 애들이 눈감아보라더니

용돈을 빵빵하게 봉투에 넣어서 줬다.

 

밤중에 마트가서 콩순이 인형 사다 차 트렁크에 몰래 넣어뒀다가 잘 때 머리 위에 

올려 둔 수고로움을 돈봉투로 돌려받다니

아까워서 쓸 수가 없는 돈

세 놈 부자 만들 종잣돈으로 써야겠다.

 

성가대원이 사십명이 넘던 때도 있었다. 

베이스도 빵빵했고 테너는 프로의 소리를 내는

형제님도 있는 우리 성가대는

우리 성당의 자랑이었는데, 이제는 쪼그라들어서

사람이 없어졌다.

하지만 역대급으로 초라할 수도 있었던

이번 성탄 밤미사가 오히려 나는

지금까지 어려운 곡을 연습해서 지냈던 성탄절보다 좋았다.

 

알토 두 명 소프라노 세 명 테너 둘이었던

성탄 밤미사가 좋았고

알토 두 명 소프라노 두 명 테너 한 분 뿐이었던

성탄 낮미사도 좋았다.

우리끼리 소박하게 부르는 노래가 나쁘지 않았다.

 

성탄절 보내고 너무 행복해서, 아니면 너무 추워서 그랬나

남편이랑 신협 ATM기에 현금입금해놓으려 갔다가

돈을 입금하고 카드와 손가방을 두고 나왔다.

 

집에 거의 다 와서야 손가방 두고 온걸 알고

남편이 뛰어갔으나 가방이 사라졌다.

 

다음 날 누군가 다시 신협에 맡겨놓을것같긴 하지만

불편한 마음에 카드 분실신고 두 장 처리하고

집에 왔지만 뭘 잃어버리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속상해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여보, 카드는 재발급하면 되지만

남편은 재발급이 안되잖아, 남편은 안 잃어버렸잖아"

그러니 속상해할것 없다고 괜찮으니까 속상해하지말라고

아니 이런 꿀이 뚝뚝 떨어지는 멘트를 어디서 연습을 했나

 

요즘 우리가 너무 행복해서 정신을 못차렸기 때문에

정신 좀 차리라고 당신이 카드 잃어버린거라는

도련님의 꿀물 멘트로 속상함을 날려버렸다.

 

삼시세끼 밥 해준 보람이 있네

 

추워서, 카드를 잃어버려서, 행복해서 기억에 더 남을

내 인생 성탄절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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