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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크리스마스 빵, 슈톨렌

by 나경sam 202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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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주 한쪽씩 잘라먹는 슈톨렌

수민이가 대전에서 놀다가 성심당 들른다길래

작년에 승범이가 주교님한테 받아왔던 파네토네가 생각나서 사오랬더니

슈톨렌을 사왔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주 한 쪽씩 잘라먹는 다는 단단하고 납작하게 생긴 독일의 정통 크리스마스 케이크

카톨릭 전례로 생각해보면 지금이 대림 3주니까 지금이 슈톨렌 먹기 딱인 시기다.

랩으로 꽁꽁 싸여있는 슈톨렌을 꺼내면 처음에는 베개인가 싶을 정도로 모양부터 빵처럼은 안생긴 빵이지만

안에 씹히는 말린 건조과일이나 견과류가 마치 우리나라 찰떡처럼 쫀득거려서

한 쪽을 먹어도 든든한 맛이 있다.

 

그래서 한 쪽씩 먹으라고 했나봐

 

승범이 아기였을 때 살았던 대전 선화동 2층집은 전세가 1700만원이었다.

은진이를 선화동에 살 던 1998년 4월에 낳고 집을 옮기려고 했더니 둔산동에 살 던 주인이

아이엠에프로 집이 안나간다며 전셋돈은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그냥 나가라고 해서

1700만원을 차용증 하나 받고 비워줬었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그땐 그랬었다.

선화동은 대전 시내랑 가까워서 아침만 먹으면 승범이랑 은행동 지하상가를 쭉 지나서 성심당에도 가고

대흥동 시내도 돌아다니고 동양 백화점 지하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돌아왔었다.

 

성심당에 가면 빵집안에 그네가 있었는데 승범이는 그걸 꼭 타고 싶어했었고

지하상가에 있는 베라에서 900원짜리 싱글콘 하나를 사서 먹고 선화동 교보생명 지하에 있는

서점에 가서 그림책을 읽고 돌아오는 게 승범이와 나의 하루였다.

 

지하상가에서 큰 애를 잃어버려서 남편이 미친놈처럼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다니다가

잔뜩 겁을 먹고 지하도 입구에 서 있던 큰 애를 찾은 적도 있었던

애증의 대전이다.

 

내 돈을 못받고 나왔어도 어쩌다 주인에게 전화를 하면 기분 나빠했었고

결국 나중에 그 돈을 받게 된 것도 어쩌다 놀이터에서 한 번 씩 만났던 한 동네 살았던

아줌마가 집이 나간것 같다면서 전화를 해줘서 집주인한테 집 나갔더라고 누가 말하더라며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한 아줌마도 아니었는데

명보네 엄마였다. 어제 일은 생각나지 않아도 이십 년 전의 일은 생생한 이 미친 기억력 좀 보소

명보 엄마 고마웠어요.

 

차고 딸린 2층 집들이 쭉 있었던 선화동 언덕배기에 있던 우리가 살았던 2층집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아직 있을지 부수고 다른 건물이 들어섰을지

궁금하다.

 

남편이 리틀타익스 붕붕이에 승범이를 태우고 일요일에 언덕배기를 밀고 다녔던

마흔도 안된 젊은 도련님과 서른 다섯도 안된 젊은 내가 있었던 곳

 

선화동은 그래서 나에게는 응답하라 1998같은 곳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매 주 한쪽씩 잘라먹는 슈톨렌처럼

펼치면 하나 씩 나오는 기억의 보따리들이 성심당 빵을 보니 끌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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