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가서 고생하고 있으니, 눈 딱 감고 내려갔다.
이젠 며느리들을 예전만큼 오라 가라 하지 못하시는 시부모님들에게 우리 남편이 딱이다.
시부모님 맞춤형 인간이 바로 남편이라
시부모님 - "와라"
남편 - "네"
이게 되는 사람이 청주 도련님
![](https://t1.daumcdn.net/keditor/emoticon/friends2/large/003.png)
나한테나 도련님이고 나한테서나 철철 넘치는 사랑받고 살지, 아직도 우리 시부모님들은 당신들 말에
'싫어요 아부지' 소리를 못하는 아들로 아시니 어렸을때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싫다고 못했고
지금은 사시면 얼마나 사시냐 지금 반항하면 도련님 아버지 돌아가신다고 또 반항을 못해
연차쓰고 김장하러 간 청주 도련님을 찾으로 내 발로 기어들어가 배추지옥을 만났다.
사실 몇 년전부터 시댁에 갈 때마다 남편한테 출장비를 받고 다니기 때문에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나는 돈받고 시댁 가는 여자다 싶으니 시댁 가는 일에도 스트레스가 한결 덜 해서 이것또한 좋은 방법이다.
우리 엄마는 신문에 날 일이다고 놀라셨지만, 상노동 무임금 원칙의 시댁행이었던 시절과 달리 남편한테 입금받고 가는일은 뭐랄까 좀 즐거워졌다.
![](https://t1.daumcdn.net/keditor/emoticon/friends2/large/019.png)
돈의 힘, 놀라워라
그래도 도련님은 돈 줄테니 가자소리도 하지 않고 당신 힘드니까 오지 말고 집에서 쉬지, 왜 왔어 하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이라 남편 놈 하나 보고 가서 백 이십 포기 배추 지옥을 만났다.
결혼 초에 남편이 이런 스킬을 썼다면 우리 부부는 지금쯤 열 남매쯤 낳고 인간극장에도 나갔을지 모르는데
그땐 서로 어떻게 해야 슬기롭게 결혼생활을 하는 줄 몰라서 박 터지게 일년 쯤, 아니 이년 쯤 싸우고 서서히 문제푸는 방식을 익혀갔다.
오지 말라고 해놓고 익산 역 앞에서 나를 보고 웃는 사악한 놈
"아 몰라 몰라 그냥 당신땜에 왔어"
시댁 김장은 삼백포기의 영광은 반토막 난 지 오래다.
아줌마들이 중공군처럼 떼로 몰려들어 김장을 해주던 시절도 영화롭던 옛날 이야기고 이제는 식구끼리 이야기해가면서
해도 열두시 안에 끝낼 수 있을 만큼 양이 소박해졌다.
그렇더라도, 배추 지옥은 지옥
오른손 손목은 아파오는데 배추는 줄어들지 않아,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난 형님이랑 이야기도 좀 하면서 김장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서로 말이 없어져, 헤어지는 커플들처럼-.-
어머니가 "파김치 가져가라, 통에 담아놨다" 하셔도 "아니요, 안가져가요, 어머니 저는 파김치는 안먹어요'
"아니, 아범이 잘 먹어, 가져가" "아니, 그래도 안가져갈래요, 결국 남아서 버리게 되더라고요"
어머니를 이겨먹고 파김치통을 시댁에 두고 가는 데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파김치를 두고 가는 게
아쉬우셨을테지만, 이젠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스트레스 안받기로 했기 떄문에 시댁에 파김치를 두고 온 건
싫은 걸 싫다고 말 하는 훈련이고 그렇게 되기까지 나도 십 오년 이상 걸린 일이다.
해야 될 일만 하고 수원으로 정신없이 돌아오는 일도 이제는 그만
오는 길에 들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걸 가을 나들이로 치자
숲정이 성지가 있길래 들러서 마침 성당에서 성지 순례 나온 팀이 있길래 엮어서 한 팀인것처럼 신부님 설명도 듣고
함께 기도문도 바치고 이번 시댁행은 그래서 다른 때보다 좋았다.
시댁 밭에서 자란 생강을 씻고, 도련님이 껍질 까줘서 생강차를 만들었다.
작은 유리병으로 세통이 나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흐뭇했는데 잠시 후에 열어보니 숨이 죽어서 이것들이
두 통밖에 안됐네
생강사기단-.-
리브로에서 산 책, 짧은 인생을 살면서 싸우고, 사과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책임을 추궁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서로 사랑하고 살아가기에도 모자란 시간이 아닌가? 비록, 찰나와도 같은 인생이지만, 좋은 인간관계가 좋은 인생을 만든다.” p.105
좋은 말이다.
50부터는 물건은 뺄셈, 마음은 덧셈이라는 책도 있는데 책 제목이 진짜 말이 필요없는 제목같다.
지금 필요한 건 물건을 줄여가면서 마음은 넓혀가는 일이 정답일테니,
김장과 생강차와 책 한권을 샀고, 도련님이랑 놀러도 많이 다녔더니 다른 해 가을보다 올 가을이 좋았다.
가을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
물건은 빼고 마음은 덧셈하면서 겨울 준비 시작하자!!!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다모다샴푸 한달 후기 (0) | 2021.11.26 |
---|---|
좋은 피트니스센터 고르는 법, 운동해서 살 빼는 방법 (0) | 2021.11.25 |
남과 경쟁해야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0) | 2021.11.18 |
하나를 알려면 삼일이 걸리고 하나를 하면 두 시간은 자야 되는 나이 (0) | 2021.11.17 |
공평한 하루 (0) | 2021.11.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