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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식당

광복절 전 날 삼시 세끼

by 나경sam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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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가 하마터면 곱게 늙을 뻔 했으나, 남편놈 눈에 들켜서 우리 입으로 들어왔다.

남편놈이라 함은 순전히 전지적 오이 시점에서 말 한 거고, 내 감정은 아니다.

내가 오이였으면 그렇게 말했을것이다.

 

화분뒤로 늘어져서 몸을 숨기고 길쭉했던 다른 오이들과 달리 배 나온 스모선수들처럼

몸집을 불려가며 색깔도 늙은 오이들처럼 변해갈려고 하는 참이었다.

 

 

남편이 따 온 오이를 보고 내가 그랬다.

"곱게 늙기도 어렵네"

 

화분 뒷 쪽으로 늘어져 있어서 낮은 포복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꼼꼼한 남편 눈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그렇게 늙어갔을지도 모른다.

가지에 달린 것만 오인줄 아는 내 눈에는 절대로 들킬 일이 없는 위치였으나, 옥상에 가면 텃밭 주변을 샅샅이

금광처럼 살피는 남편 눈은 피할 수 없었을테니

"오이야, 너도 팔자려니 해라"

 

 

아침 - 모닝빵 떡갈비 오이 샌드위치

 

집이 작기도 하지만, 오이를 채썰었더니 냄새가 안방까지 난다며 남편이 오이 냄새를 맡았다.

두 개 남아 있던 모닝빵위에 채 썬 오이를 올리고, 양파도 올리고, 피클도 올리고 떡갈비를 구워서 채소만 있는 빵 사이에 끼워주고 (환상의소스는 - 머스터드, 마요네즈, 케첩) 이지만 케첩도 없고, 머스터드도 떨어 진 냉장고-.-

 

빵에는 딸기 잼 바르고 떡갈비 위에는 마요네즈만 뿌려서 아사삭, 한 입 아니 나는 네 입 정도로 끝났고

입이 큰 남편은 두 입 정도로 끝난 우리의 아침

 

그래도 너무 맛있어서 둘 다 기분좋은 아침

 

모닝빵 사이에 넣고 남은 오이는 승범이랑 나랑 남편의 열무 물김치 말이 국수

 

점심 - 열무물김치 국수

 

열무물김치 국물에 생수와 매실 엑기스 조금 넣고 간을 맞춘 다음 국수 삶고, 김치 올리고 얼음도 넣고

오이 채 썬거 올리고 깨 안뿌리면 완전 섭섭하지

 

방울 토마토도 있으니까 넣고

계란 없으면 어때

 

연주회 연습때문에 주말에 집에 오기를 포기한 딸을 제체두고, 태백으로 여름 전지 훈련을 떠난 셋째를 잠시 잊고

우리 식구는 남편과 나 승범이만 있는 것 처럼 맛있게 먹은 점심

 

점심 먹고 남편과 여주 아울렛 - 돈쭐을 내주고 싶었으나 돈쭐 내러 온 사람들 구경하는 걸로 대리만족

 

와인 할인 매장 앞에서 스위트 레드 와인 두 병 득뎀

 

여주 아울렛 리빙관에서 르쿠르제 커피잔

 

 

여주 프리미엄아울렛 명품관 앞에서 줄이 늘어 선 곳은 몇 군데 안되었다.

알아주는 명품관 앞에는 역시 돈쭐 내러 온 사람들이 있고 나머지는 그냥 설렁설렁한 수준

 

남편과 나는 딱 두개만 사서 왔다.

 

"르 쿠르제 커피잔 셋트+ 스위트 레드 와인 두 병"

 

모처럼 동그랗게 주황색으로 지는 석양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또 저녁이 되었네

 

저녁 - 허니콤보,복숭아,포도,레드 와인

 

삼시세끼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시켜서 찾아 온 치킨과 여주에서 사 온 와인으로 저녁 끝

 

애들 없이 둘이 치킨을 시켜서 먹은 게 오백년 전 일처럼 까마득하지만

애들없이 우리 둘이만 먹었어도 허니콤보는 옳고, 와인은 달달했으며,포도와 복숭아는 단물이 툭

 

광복절 전 날 삼시세끼가 평화롭게 지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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