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통 렛슨 마치고 서울로 안가고 우리집으로 온 둘째와, 동생이 왔다고 집으로 일찍 들어 온 오빠란 사람과
맘 좀 잡아보고 운동 좀 하려는 데 코로나 땜에 문닫은 피트니스 센터를 보면서도 그다지 아쉽지 않은 나
세사람이 함께 있는 이른 저녁 시간은 요 근래 드문 그림이었다.
돌아가신 밥아저씨에게 그림 한 편 부탁하고 싶은 화서동 우리집 밤 풍경
새 밥을 안쳐놓고, 고등어 한 마리를 온 집안에 냄새 풍기면서 구워놓고, 어머니 김장 김치 잘라 놓고
어젯 밤에 덕선이 어매만치 손이 큰 내가 맘 먹고 큰 솥으로 한 솥 만들어 놓은 자장 곁들이고, 참치 김찌 찌개랑 함께
차려줬더니
그으래. 니들이 입맛 제대로 된 인간들 맞구나
맛있지 않음 사람 새끼도 아니다 싶은 저녁 밥 앞에 둘다 한결같이
"맛있다. 쩝쩝쩝, 후루룩 후룩 ,쓰왑"
각종 효과음을 내면서 밥을 먹는 걸 보는데
어디다 내놓을 번듯한 명함 한 장없는 쓸쓸한 갱년기 아줌마지만, 명함없으면 어떠하리
밥차려주는 엄마도 꽤 근사하다 싶었다.
제철 음식에 입맛을 타는 둘째는 굴보쌈이 먹고 싶다하니 이번 주말에 집에 오면 보쌈하고 시장에서 굴 사다가
아직 김장김치가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 함께 먹자고, 식탁결의를 하고 났더니
"옴마, 머해"
셋째가 혀가 반으로 콱 접혀진 코맹맹이 소리로 전화가 왔다.
"우리 보쌈 얘기 하고 있었는데 이번 주말에 뚜민이 오면 함께 먹으면 되것다"
우리 엄니 황여사도 우리 다섯을 키우면서 우리 빨래 만으로도 정신 못차릴 정도였으면서도
우리가 먹고 싶다는 것은 한 번도 싫다고 하지 않고 다 해주셨다.
쫄면 먹고 싶다고 하면 쫄면 파는 집 알아내서 면을 직접 사다가 계란삶고 콩나물 삶아서 집에서 한 양푼 해줬고
지금은 쫄면도 마트에서 팔지만 1990년 전에 군산에서는 시장에서도 쫄면 면만 파는 집이 드물었다.
엄마는 면만 전문으로 파는 어떤 집을 알아놓고, 한 번씩 대량으로 사다가 쟁여놓고 한양푼 씩 해주셨다.
응팔의 덕선이 엄마의 원조 아지매가 우리 엄마같다.
고 3때 엄마가 토요일 점심 도시락으로 쫄면을 만들어 가지고 학교로 왔을 때 우리반 애들이 엄마의 양푼에 달려들어
다 먹어 치우는 걸 본 우리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쫄면을 만들어서 학교로 가지고 오지 않으셨다.
나도 한 젓가락 못 먹어 보고 뚜껑 열자마자 우리반 애들이 다 먹어 버린 엄마의 쫄면이었다.
돈까스도 집에서 고기 사다가 직접 만들어서 만들어 주셨다.
등심으로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빵가루 입히고 계란물 입혀서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튀겨주셨다.
김밥도 소풍날이 각각 다른 다섯 명 애들 키우면서 한 명이 김밥 싸는 소풍 날이면 소풍 아닌 애들은 엄마가 남은 김밥 재료로 만들어 준 볶음밥이 그날 도시락이었다.
엄마는 햄 자투리, 계란 말이 자투리, 시금치 남은거에 김밥에 넣고 남은 단무지를 쫑쫑 썰어넣고 볶음밥을 해주셨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부침개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반죽만 김치 버무리는 양푼에 한통이 만들어졌고
질릴 때까지 부치고 또 부치는 게 우리 엄마였다.
그렇게 커서 그런지, 나도 우리 애들이 먹고 싶다고 하는 건 어지간하면 다 해준다.
한참때 연습실에서 돌아와서 배고프다고 하면 새벽 두시에도 만두 굽고 삼겹살 구워서 비빔면과 함께
셋트로 차려 주었다.
오로지 남편만 새벽에 내 밥을 못 얻어 드시는 우리집 유일한 사람이다.
자식하고 남편하고 이런 차별을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우리 어머니에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하에 없는 아들이니
세상은 공평한거고
밥 해주는 엄마 명함 한 장만 가지고 살아도 그것도 보람있는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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