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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송광사 템플스테이

by 나경sam 2020.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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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옷차림 - 고무신이 생각보다 편했다.

 

2000년도에 세례받고 천주교에서 하는 피정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내가 송광사 템플스테이를 갔다.

나 혼자 간다. 템플스테이

순천 송광사까지 기차타고 버스타고 어지간한 동남아로 패키지여행가는 시간만큼 걸려서 도착했다.

 

 

작은 방에 딸린 편백나무 다실 그리고 작은 툇마루 앞 편백나무 숲

혼자는 언제나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 와서 다실을 보고 새벽에 일어나서 온 보람을 느꼈다.

숨만 쉬어도 뒷골에서 땀이 똑똑 떨어지는 남도의 더위에 손수건이 젖어 버렸지만 기차를 네 시간타고 오는

긴 시간이 싫지는 않았다.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그리고 돌아가신 후 모셔져 있는 불일암까지는 네시까지만 개방을 하기 때문에

템플스테이 등록을 하자마자 축지법을 써서 다녀와야만 했다.

 

불일암 무소유길

 

며칠동안 숙지산을 열심히 다닌 덕분일까

심장이 터질것처럼 힘들었지만 빠른 걸음으로 불일암까지 속도전으로 입성, 3시 출발 3시 15분쯤 들어갔으니

중간에 멈춰서 쉴 때 들렸던 게 내 심장 뛰던 소리였음은 거짓이 아니다.

 

 

불일암 - 스님의 하안거 기간동안 4시까지만 개방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법정스님이 모셔진 자리다

 

법정스님은 생전에 앉아서 책읽고 사색하기 좋아했다는 자리로 돌아가셨다.

후박나무 아래가 바로 그 자리다.

묵언으로 관람가능한 불일암에는 새소리만 시끄럽게 들렸고 사람 소리는 없었다.

묵언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사람소리에 치여서 살았고 일본어 청해에 하루중 두 세시간은 귀를 내어주고 살았으니 내 입도 귀도

템플스테이에 와서는 휴가다.

 

송광사 대웅보전

 

텅비어 있는 절마당에는 석탑 하나 없었다.

조계산이 연잎처럼 절을 싸고 있고 절은 그 안에 핀 연꽃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서 절 마당에 석탑이 있으면

무거워서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에 절마당을 비워 두었다고 한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살벌한 조계산이 연꽃같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절마당이 텅비어 있음이 연꽃자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저녁 공양시간-욕심을 비우러 갔는데 남들 한개 쓰는 발우를 세개나 쓴 나-.-

 

오전 6시 - 11시 - 오후 6시 절의 공양 시간이다.

음식이 정갈하게 놓여져 있고 종소리가 둥하고 배음처럼 울려 퍼지면  공양시간이다.

미리 앉아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고 일어서서 줄을 서서 음식을 담았다.

기쁨의 종소리였다.

 

밥이 맛있어서공양시간때마다 시험에 들었다. 먹으러 템플스테이 온 줄

 

140여분 계신다는 스님들중에는 노스님들도 계시니 그분들의 식사는 젊은 스님들이 방으로 나르느라

공양간은 바빴다.

 

 

떡을 찧고 아직도 사용하는 절구들 - 떡 먹는 날 다시 가고 싶은 송광사

 

저녁 예불 시간에 참석해서 스님들의 예불소리를 듣는 데 깜짝 놀랐다.

젊은 스님들이 많았기때문에 예불 소리가 남성합창처럼 울림있게 들렸다.

발이 저렸지만 좌복에 앉아서 예불에 참여하기를 잘했다.

 

 

순천까지 데리러 온 남편이야 말로 부처님이었을텐데, 남편이랑 차를 타고 오면서 늘 그렇듯이"

나 혼자 버럭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버럭하면서 "템플스테이왔다 가는 데 이렇게 버럭한다니 말도 안된다" 했더니

남편 말이, 삼십분만에 버럭할걸 한시간으로 늘리는 게 템플스테이한 효과라고 -.-

 

남편이야말로 송광사 스님같은 말을 해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웃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갈비탕을 염천에 끓여서 남편에게 공양했으니, 우리 집 양반은 스님이 아님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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