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전날까지 4시까지 일을 한다고 했으나 사과 배 선물세트는 일단 내 키만큼 쌓여 있는 매장
월요일 문을 열자마자 검정 세단타고 어떤 남자가 양복입고 나타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거 다 실어" 했으면 좋겠다.
공유같은 남자가 선글라스 끼고 나타나서 "저거 다 실어" 하면 남자들이 확 달려들어 우리 매장의 배 사과 선물 상자들을 열심히 트렁크에 넣었으면 (제발)
꺅 나는 정말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아니 공유는 욕심이고 우현이 선글라스 끼고 나타나서 "저거 다 실어"해도 우현이 멋져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대입해보니 우현까지 안가고 공유에서 끝났음 좋겟다.-.-
정말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날까 - 나이는 오십 넘었으나 정신 연령과 타입이 빨강 머리 앤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고점장은 그런 상상을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현실은 말입니다.
내가 다 먹어치우든지 어떻게든 싸게라도 다 팔아야 된다.
어쩔*100이다.
매출은 누구도 짐작할 수가 없고 어떤 물건을 들여야 대박 아이템이 될지는 상상할수가 없다.
통계에 의해 적당히 배치를 해야 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 전해 명절에 동태전이 100개가 팔렸다면 이 번 해에는 200개를 팔아야 매출의 성장세를
달성하는 것이므로 작년에 100개를 팔았다고 올해도 100의 목표는 안된다가 윗 분들의 생각이고
그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루어내기는 도대체가 어렵다.
생협 매장에 남아있는 선물세트들을 생각하면 제 정신으로 밥먹기도 힘들지만 이제 많이 담담해졌고
간이 커진 고점장은 그래도 밥도 잘먹고 잘 살고 있다.
동치미 열개 안팔리고 풀풀 익어가던 거는 이제보니 큰일도 아니었네
그래도 아침마다 양복입은 남자들이 와서 선물세트 구매해서 차에 대량으로 싣고 가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우리 거래처인 새안양 신협에서 주문한 물량이 상당했으므로 나는 아침마다 새안양 신협에서 주문한 선물세트를
숫자에 맞게 챙겨서 보내는 것도 오전의 중요한 일과중 하나였다.
내가 주문한 물건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아침마다 공급 명세서를 보고 체크 하는 일도 편하지는 않았다.
내가 주문을 제대로 넣었는지 - 그게 우리 매장에 들어올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고 숫자가 맞게 들어왔는지도 신경이 쓰였고 도무지 편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명절을 앞두고 물량이 딸리는 선물 세트의 경우에는 주문창이 닫히는 경우도 많아서 담당 엠디와 통화를 한 후 산지와 조율을 해서 공급을 맞춰야 되는 일도 있었다.
절임배추 주문을 받을 때 힘듬은 힘듬도 아니었어
절임배추값 내지 않아 그 돈 받으러 분노의 질주를 할 때의 스트레스는 1도 아닐만큼 안 팔리고 있는 물건들을
보는 일 이란 속이 시꺼멓다.
생협의 일이란 절기와 함께 가는 일
추석 전에 들어왔던 나로서는 추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지나간 거고 김장부터 힘들었고 김장 지나 매장 기획 행사
두 번에 이번에 설날 까지를 해보니 생협 일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조금 알것같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를 애를 써도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사고를 칠 수밖에 없다.
배송사고는 일도 아닐 만큼 선물세트 주문서를 제 시간에 넣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생각나서 밤중에 소리지르면서 일어나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안에 주문을 넣지 못하면 사전예약 10%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조합원 입장에서는 금액의 손해이다.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돈한테 보내는 답례의 선물이었다는데 내가 그걸 주문을 잊었던 거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써놨어도 놓쳤었던 주문이 밤중에 자다가 생각이 났다는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명절 선물이 다 팔렸든 안팔렸든 공식적인 명절은 지나간 거고 안팔리면 삼시세끼 배만 먹고 살든지 -.-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출근해야지 안그럼 나는 생협에서 제정신으로 못버틸것같다.
이제보니 물걸레 청소기의 압박감도 장난이었었네
그래도 삶이라는게 고달픔만 있는건 아니어서 물걸레 청소기로 울고 싶을 때는 임대표의 도움으로 클리어 시켰고
동치미도 풀풀 익어가면서도 폐기처리 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 팔았었다. 할인율을 올려서 처리하기는 했지만
팔긴 팔았다.
하나 처리하면 하나가 밀려들어오는 이 전쟁터같은 매장에서 시간은 가고 절기에 맞춰 조합원들의 삶도 퍼즐 조각을
맞춰나간다.
설을 지나면서 메주 예약을 받아야 된다고 전단지에 계속 써 있었다.
나이드신 조합원들이 전화를 하셔서 "메주예약"을 물으셨다.
정월이 지나면 장을 담가야 된다면서 전단지보다 빠르게 메주 예약을 물어 보셨고 그렇게 선주문 받은 메주 예약이
벌써 일곱말 반이 되었다.
강원 손틀 메주가 한 말에 십이만원 반말에 육만 육천원
메주의 수량 단위가 한 말 두말 이라는것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능숙하게 한말 십이만원 반말 육만육천원이
자동 응답기처럼 술술 나온다.
"정월이 지났으니 정월 장을 담가야 된다"는 우리 조합원님들 참말로 귀엽다.
이 분들 덕에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우리나라 절기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고
힘들게 하는게 마녀같은 진상 조합원이 있어서 확 그만두고 싶다가도 어느날은 마음이 너무 따뜻한 조합원이 계셔서
일하는게 참 보람있다 싶은 날도 있다.
저런 분이 계셔서 일할 맛이 나는 거다.
자기를 낮추고 우리를 존중해주는 조합원님들이 계시는가하면 올라갈 때까지 올라간 위태로운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조합원들도 있다.
누군가 밑에서 툭치면 떨어질것같은 위태로운 의자에 앉아 있는 교만하신 분들도 계시고
겸손이 몸에 베어 있어 향기가 느껴지는 분들도 계신 생협의 조합원님들
어쨌든 그 분들 덕으로 생협은 굴러가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릎 수술 받으시고 휠체어 타고 매장에 오셨던 조합원님이 남편 분 도움을 받아서 걸어서라도 생협에 오시는 걸 보면 한달이 저렇게 보람있게 지나갔구나 싶다.
밀크 카라멜을 좋아하시는 그 조합원님께 내 돈으로 밀크 카라멜 하나 사서 선물로 드리고
( 내가 생각해도 고 점장^^~ 기특하다.돈 쓸줄아네 알어 ㅋ)
재활 치료 더 열심히 하시라고 말씀드렸더니 나를 꼭 안아주셨다.
우리 시어머니한테는 못되게 구는 면이 있는데 왜 남들에게는 잘하는거야 어머니 죄송해요-.-
우리 어머니도 팔십이 넘은 노인이라 만날 때마다 아프다고 하시고 아픈곳이 안아픈데보다
훨씬 더 많은데 남들한테 하는 거 마음 씀씀이 어머니한테 조금만 해도 금마면에 효부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다음주면 어지럼증때문에 대학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하시는데 걱정은 그때뿐이고 집에 오니
내일 출근해서 할 일들이 걱정이고 시댁 일은 잊게 된다.
오년전에 국민은행에서 빌렸던 대출금 오천만원이 다음 달 한 번의 상환만 앞두고 있다.
셋째는 육상이라 비교적 돈이 안들었지만 큰 아이와 둘째는 집에 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애들 렛슨비로
흰봉투에 담겨 나가기가 바빴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훠얼씬 많았기 때문에 애들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빚이 생겼었다.
그게 다음 달 한 번의 상환만 앞두고 있었다.
물론 우리 집 대출이 그걸로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오천만원은 애들이 만든 빚이다.-.-
아니 그 이상 만들었을 테지만 어느 정도는 부모의 몫이므로 패쓰- 쏘 쿨하게
하지만
세 명 다 모였을 때 말했다.
"니 들이 갚아.마지막 돈은"
그리하여 우리집 애들 셋은 이번에 받은 세뱃돈을 다 걷어서 우리에게 주고 빚을 갚으라고 했다.
"마지막 빚은 너희들이 갚아"
엄마의 일방적인 말에 한 놈도 불퉁거리지 않고 열심히 모아서 주면서 엄마 이걸로 국민은행 대출금 한 개 깨버려
해줬고 다섯이서 두시간 동안 열심히 가비아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명절 후기를 나눴다.
심지어 커피도 큰 애가 사줬고 "아 증말 나 애들 잘키웠나봐"
이런게 좀 있어야 내일 매장에서 맞닦뜨릴 배 선물 상자를 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동공에 지진이 안나지 않겠는가
그치만 제바알-.-
하느님 내일 매장에 검정 세단에서 누군가 내려서 "저거 다 실어" 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
조폭같은 아저씨들이 우르르 와서 우리 매장의 배 상자와 사과 상자를 다 실고 돈을 확 뿌리고 가는 일이 제발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상상도 정도껏 하고 내일부터는 또 매장에서 미친듯이 달려야 된다.
오늘 밤 꿈속에서 들릴 대사는 "저거 다 실어"가 될 듯
정신차리고 낼 부터 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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