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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남편과 둘째"

by 나경sam 2019.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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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둘째"


큰 애와 막내가 집을 나가 있는 상황이니 애들로 늘 시끄럽던 우리 부부에게는 둘째가 마치 외동딸 같다.

셋을 키우다 보니 애들이 어렸을 때는 다른 집 애들도 우리 집을 좋아해서 우리 집은 터미널 같았다.

엄마들도 애들 때문에 왔다 가고 애들은 늘 우리 집을 아지트 삼아서 오고 갔었다.



애들 데리고 우리 집에 오던 엄마들이 늘 하는 말이



"승범이 엄마는 애들이 많아서 데리고 오기가 힘드니까 자기들이 오는 게 나은 것 같다"며 특별히 나를

생각해 주는 배려를 하며 우리 집에 왔다가 애들 데리고 놀고 갔지만


그 바람에 승범이 1학년 입학했다고 입학 선물로 사줬던 이층 침대는 이층 쪽 어딘가가 우지끈 소리를 내면서 부셔젔었고

모두가 돌아가고 나면 우리 집은 폭격 맞은 전쟁터처럼 참혹했었다.



물론 정리를 해주고 가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정리란 집주인의 정리와는 다른 것이라서 늘 마지막에는 내 손을 거쳐야 정리가 되었다.



애 셋 키우면서 깔끔한 정리를 하고 살 수는 없어도 블록에 발바닥을 밟히지 않으려면 그래도 치우기는 치웠어야 했으니

육아는 지금 생각해봐도 전쟁이었다.



그때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았던 애들을 데리고 살 때였던 전주 아중리에서 승범이 유치원 친구 성현이는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아주 충격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다.



1층이었던 우리 집에 늘 오며 가며 들르면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놀아놓고는 성현이가 참다 참다 나중에 물어본 거다

일곱 살짜리가 진지하게

"야 유승범 니네 집은 왜 찌른내가 나냐"

요하의 기분 표정


우리식구는 아무도 맡지 못하던 "찌른내"

남편도 나도 후각이 정상이었었지만 애들 오줌 냄새에 그냥 젖어 사느라 몰랐던 거다.

치킨집 아저씨 기름 냄새 베어 있어도 아마 본인은 모를 수 있듯이 우리가 그랬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을 드나들었었건만 누구하나 차마 그 말을 못했었나보다.

하지만 최성현이는 우리집에 그 말을 남기고 갔었다. 얘가 참다참다 한 거 같았다.


성현이가 말한 "찌른내" 의 근원지는 돗자리였었다.

나중에 제주도 이사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살림을 처분할 때 엄마한테 여름내내 펴고 살 던 돗자리를 보냈었는데

엄마가 그걸 닦아서 본인이 쓰려고 했더니 대나무 돗자리가 애들이 맘 놓고 싸 댔던 오줌을 다 흡수해서

  엄마가 닦아서 써 볼려고 했지만 닦아도 닦아도 냄새가 나더라면서 결국은 버리셨다고 하셨었다.




육아 전쟁 속에 키웠어도 요즘 집에는 둘 쨰 하나 집을 지키고 있다.

애들이 셋 이지만 둘째는 딸임에도 아빠 얼굴을 많이 닮았다.

아빠랑 얼굴이 닮은 것도 우리 식구들은 사실 잘 알지 못했다.

그건 마치 성현이만 맡았던 우리집 찌른내 사건" 같은 거다.

중학교 때 예중을 갔기 때문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같은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 해 초등학교때 친구들을 만 날 일이 별로 없었던

둘 째가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은진아 학원갔다오다가 3번 버스 안에서 너 닮은 아저씨 봤는데 혹시 니네 아빠냐"고 물었다고 했다.


"3번 버스의 문제의 아저씨는 애들 아빠 맞다"

우리 눈에는 안보이는게 남의 눈에는 보여지고 우리는 못맡는 게 남은 맡을 수가 있다"


주중에 셋이 사는 집에 금요일 저녁 둘의 귀가가 12시가 다 되게 늦었다.

주말에 온 아들이 차를 가지고 연습실에 가서 정류장까지 데리러 나갈 차도 없고 해서 먼저 내린 남편에게 둘째 기다렸다가

데리고 함께 걸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쨰한테 문자를 보냈다.


"버스 정류장에 너 닮은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답이 왔다.


"끔찍하군요 -.-"



서로 닮은 자의 비극이다.

가끔 둘째가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우리들도 생각했었어야지 어떻게 엄마 생각만 하고 결혼할수 있었느냐고

따질 때가 있다.

자기가 가장 피해자라면서 -.-


자전거를 타고 밤 늦게 정류장에 나간 나는 자전거는 딸한테 타라고 주고

남편은 둘째의 무겁디 무거운 클라리넷을 메고 딸의 가방까지 한 쪽 어깨에 끼고는 술에 살짝 취해서

자기보다는 덜 취한 딸이 타고 가는 자전거를 보면서 집까지 10분쯤 함께 걸어왔다.

감수성이라고는 1도 없었던 남편이 집에 와서는 갑자기

아침에 상추에 물주려고 옥상에 올라갔더니 상추가 시들시들 다 죽을 거 같아서 불쌍했다면서 12시가 넘었는데

옥상에 올라가서 상추를 보고 오겠다며 옥상에 올라갈 기세였지만

(그래서 내가 화를 낼 뻔 했는데)

둘째가 바로 제압해버렸다.


"떨어져,올라 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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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에 벌어진 옥상소동은 둘째의 한마디에 없었던 일이 되었다.


내 말도 잘 듣지만 자식말은 더 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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