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둘째"
큰 애와 막내가 집을 나가 있는 상황이니 애들로 늘 시끄럽던 우리 부부에게는 둘째가 마치 외동딸 같다.
셋을 키우다 보니 애들이 어렸을 때는 다른 집 애들도 우리 집을 좋아해서 우리 집은 터미널 같았다.
엄마들도 애들 때문에 왔다 가고 애들은 늘 우리 집을 아지트 삼아서 오고 갔었다.
애들 데리고 우리 집에 오던 엄마들이 늘 하는 말이
"승범이 엄마는 애들이 많아서 데리고 오기가 힘드니까 자기들이 오는 게 나은 것 같다"며 특별히 나를
생각해 주는 배려를 하며 우리 집에 왔다가 애들 데리고 놀고 갔지만
그 바람에 승범이 1학년 입학했다고 입학 선물로 사줬던 이층 침대는 이층 쪽 어딘가가 우지끈 소리를 내면서 부셔젔었고
모두가 돌아가고 나면 우리 집은 폭격 맞은 전쟁터처럼 참혹했었다.
물론 정리를 해주고 가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정리란 집주인의 정리와는 다른 것이라서 늘 마지막에는 내 손을 거쳐야 정리가 되었다.
애 셋 키우면서 깔끔한 정리를 하고 살 수는 없어도 블록에 발바닥을 밟히지 않으려면 그래도 치우기는 치웠어야 했으니
육아는 지금 생각해봐도 전쟁이었다.
그때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았던 애들을 데리고 살 때였던 전주 아중리에서 승범이 유치원 친구 성현이는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아주 충격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다.
1층이었던 우리 집에 늘 오며 가며 들르면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놀아놓고는 성현이가 참다 참다 나중에 물어본 거다
일곱 살짜리가 진지하게
"야 유승범 니네 집은 왜 찌른내가 나냐"
우리식구는 아무도 맡지 못하던 "찌른내"
남편도 나도 후각이 정상이었었지만 애들 오줌 냄새에 그냥 젖어 사느라 몰랐던 거다.
치킨집 아저씨 기름 냄새 베어 있어도 아마 본인은 모를 수 있듯이 우리가 그랬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을 드나들었었건만 누구하나 차마 그 말을 못했었나보다.
하지만 최성현이는 우리집에 그 말을 남기고 갔었다. 얘가 참다참다 한 거 같았다.
성현이가 말한 "찌른내" 의 근원지는 돗자리였었다.
나중에 제주도 이사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살림을 처분할 때 엄마한테 여름내내 펴고 살 던 돗자리를 보냈었는데
엄마가 그걸 닦아서 본인이 쓰려고 했더니 대나무 돗자리가 애들이 맘 놓고 싸 댔던 오줌을 다 흡수해서
엄마가 닦아서 써 볼려고 했지만 닦아도 닦아도 냄새가 나더라면서 결국은 버리셨다고 하셨었다.
육아 전쟁 속에 키웠어도 요즘 집에는 둘 쨰 하나 집을 지키고 있다.
애들이 셋 이지만 둘째는 딸임에도 아빠 얼굴을 많이 닮았다.
아빠랑 얼굴이 닮은 것도 우리 식구들은 사실 잘 알지 못했다.
그건 마치 성현이만 맡았던 우리집 찌른내 사건" 같은 거다.
중학교 때 예중을 갔기 때문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같은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 해 초등학교때 친구들을 만 날 일이 별로 없었던
둘 째가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은진아 학원갔다오다가 3번 버스 안에서 너 닮은 아저씨 봤는데 혹시 니네 아빠냐"고 물었다고 했다.
"3번 버스의 문제의 아저씨는 애들 아빠 맞다"
우리 눈에는 안보이는게 남의 눈에는 보여지고 우리는 못맡는 게 남은 맡을 수가 있다"
주중에 셋이 사는 집에 금요일 저녁 둘의 귀가가 12시가 다 되게 늦었다.
주말에 온 아들이 차를 가지고 연습실에 가서 정류장까지 데리러 나갈 차도 없고 해서 먼저 내린 남편에게 둘째 기다렸다가
데리고 함께 걸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쨰한테 문자를 보냈다.
"버스 정류장에 너 닮은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답이 왔다.
"끔찍하군요 -.-"
서로 닮은 자의 비극이다.
가끔 둘째가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우리들도 생각했었어야지 어떻게 엄마 생각만 하고 결혼할수 있었느냐고
따질 때가 있다.
자기가 가장 피해자라면서 -.-
자전거를 타고 밤 늦게 정류장에 나간 나는 자전거는 딸한테 타라고 주고
남편은 둘째의 무겁디 무거운 클라리넷을 메고 딸의 가방까지 한 쪽 어깨에 끼고는 술에 살짝 취해서
자기보다는 덜 취한 딸이 타고 가는 자전거를 보면서 집까지 10분쯤 함께 걸어왔다.
감수성이라고는 1도 없었던 남편이 집에 와서는 갑자기
아침에 상추에 물주려고 옥상에 올라갔더니 상추가 시들시들 다 죽을 거 같아서 불쌍했다면서 12시가 넘었는데
옥상에 올라가서 상추를 보고 오겠다며 옥상에 올라갈 기세였지만
(그래서 내가 화를 낼 뻔 했는데)
둘째가 바로 제압해버렸다.
"떨어져,올라 가지마"
한 밤중에 벌어진 옥상소동은 둘째의 한마디에 없었던 일이 되었다.
내 말도 잘 듣지만 자식말은 더 잘 듣는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딘가에 점으로만 박혀 있어도 엄마는 알 수 있다" (0) | 2019.06.08 |
---|---|
"어서와 서울은 처음이지- 빵집 특공대 서울 방문기" (0) | 2019.06.06 |
"오래 됨" (0) | 2019.05.29 |
"그렇게 저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0) | 2019.05.21 |
"죽음과 삶" (0) | 2019.05.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