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저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그동안 옥상에 뿌려놓은 상추와 쑥갓을 참 잘도 먹었다.
쑥갓은 전으로 부쳐먹고 상추는 뜯어서 비빔라면에 넣어서 휘리릭 비벼도 먹고 고기를 먹을 때는
샐러드를 만들어서 고기와 함께 먹고 비빔밥 좋아하는 남편은 밥도 두 번 이상은 비벼먹었다.
뿌려놓은 씨앗이라는게 나는 별로 한 일도 없었는데도 하루가 다르게 아니 오전과 오후가 다르게
잎이 쑥쑥 위로 올라오는게 아침에 빨래 널러가서 보면 작았던 상추잎이
오후에 빨래 걷으러 가서 보면 저걸 바로 뜯어다 먹어도 될 만큼 쫙 편 아기 손바닥 만큼은 보일 정도로 커 있었다.
그렇게 크는 맛에 물은 열심히 줬지만 나머지는 지들이 알아서 커줬다.
이년 전에는 옥상에 배추를 심어 놓고 잎마다 벌레 먹은 그 배추를 한 포기씩 뽑아다가 밤마다 배추전을 부쳐먹었었다.
뒤 늦게 맛들린 배추전의 유혹은 참 커서 저녁이면 후레쉬를 들고 컴컴한 옥상에 올라가서 배추를 뽑아오는게 남편의 일이었었다.
배추로 전을 부쳐먹는걸 처음 알았던 게 대구 관사에 살던 1999년이었었다.
대구 관사였었기 때문에 주로 경상도 지녁의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었는데 경상도 지방에서는
배추로 지지미를 해서 먹는다면서 관사의 아줌마들이 평상에 앉아서 배추로 전을 부쳐주면
나는 얌전히 앉아서 받아 먹기만 했었다.
넓적한 배춧잎 한 장에 젖은 가루를 묻혀서 배춧잎 모양대로 부쳐내던 그 배추전이 처음에는 이상했었지만
심심한 그 맛에 간장을 찍어서 먹으면 나름 끌리는 맛이 되었다.
그걸 이년 전에 밤마다 질리도록 해먹었었다.
그 맛이 생각나서 작년에 교토에서도 혼자서 가끔 해먹었었다.
영혼의 짝꿍 호로요이와 함께 배추전을 먹으면 키타무라에게 욱하고 올라왔던 짜증도 이해가 되었고
언제나 있었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잠시는 잊을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과연 끊을수 있을 까 하고 걱정했었던 호로요이 중독증도 이마트에서 호로요이 가격을 보고는
바로 끊을 수 있었다. 100엔 조금 넘으면 살 수 있었던게 우리돈 3000원이 넘는 걸 보니 사서 마시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지난 주 토요일엔 중앙대 101주년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다녀왔다.
아들이 4학년이라서 이제 정기 연주회에 서는 건 마지막이다.
막히는 올림픽 대로를 느긋한 마음으로 운전하고 kbs홀에 도착
리허설 마치고 나온 아들과 사진 찍고
연주를 보러 수원에서부터 와 준 선생님들과도 사진 찍고
90분 동안의 연주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 그렇게 막혔냐싶게 갈아 뻥 뚤려 있었다.
서울길을 마음 편하게 운전한 적이 있었나 싶게 항상 마음이 바둥바둥거리면서 운전하고 다닌게 대부분이었었다.
아이들 입시나 콩쿨 아니면 렛슨갈 때 운전하고 다닌게 대부분이었었기 때문에 서울 운전은 내게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었다.
이제는 그런 모든게 다 끝났다.
반포 대교를 건너 서초로 가는 길에 운전석 왼쪽에 큼지막한 저녁해가 마지막 색을 내면서 일몰 직전이었다.
다리에 걸린 석양의 해도 보고,그것도 마음 편하게,살다보면 그런 날이 꼭 온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일요일에는 아침에 일어나자 뭔자 등에 통증이 팍하고 왔다.
기분나쁜 통증이 하루종일 따라다녔다.
그래도 스타벅스 가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두시간에 걸쳐서 보고
사카모토 선생님이 지난주에 다운로드시켜준걸 일요일 오후에 봤다.
카톨릭 오케스트라 연습을 가는 아들과 딸을 따라 오케스트라 연습실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 간 일요일
스타벅스 앞에 나를 내려주고도 딸은 내가 스타벅스안으로 잘 찾아 들어가는지 내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엄마 그렇게 띨빵한 사람아니라고 했더니 스타벅스 입구가 이상한 쪽에 있어서 엄마가 당황하고 못찾을까봐 바라본거라고 했다.
엄마는 당황하면 바로 허둥댄다는걸 아니까 자기가 걱정이 되서 본 거라면서-.-
어느새 딸은 내가 자기를 그렇게 바라보던 눈길로 나를 보는 나이가 되었고
나는 딸이 보기에 가끔은 2프로 부족해서 허둥대는 어른이 되었다.
일요일에 아프기 시작한 몸은 월요일에 최고점을 찍고 그대로 드러눕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
아픈 곳은 견갑골쪽인데 온 몸이 마비가 오는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쉬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누워있는것도 아프기는 마찬가지
뭔가 사단이 났다 싶었지만 월요일 약속도 있고 해서 그냥 참고 요즘 들어 가장 심하게 불었던 바람을 맞으면서 찾아간
"윤 아트홀"
70석 규모의 연주홀과 연습실을 갖춘 아트홀이다.
앞에 딸린 작은 카페에서 카페 주인겸 아트홀 사장님이 되신 딸의 고등학교 동기 엄마와 학교 동기 엄마들과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길고 긴 수다
덕분에 아픈걸 잠시 잊을수 있었다.
보는 사람은 결과물만 보니까 축하한다고 인사를 하지만 그동안 저걸 저렇게 해내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윤이 엄마가 한 말이 나는 머릿속에 콕 박혔다.
"몇 달동안 집에서 밥을 못해 먹었고 강아지 두마리는 산책도 못시키고 집에 쳐박아뒀고 고양이 한마리는 급기야 집을 나갔다"
그리고 탄생한 "윤 아트홀"
영재 발굴단에도 나온 저 집이 막내 아들이 아마 저 안에서 멋진 연주를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오월에 이렇게 더워도 싶나 싶게 더웠던 날씨가 무색해질만큼 바람이 불어서 추운 날이었다.
킴스클럽에 들러서 새우를 사고 집에 와서 새우튀김을 했다.
얼음물에 가루를 풀었더니 튀김이 바삭해졌다.
새우 등에 콕 박혀있는 새우 내장을 꺼내는 일은 교토에서 알바하던 "밤부"에서 가츠상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한 방에 깨끗하게 제거
새우 튀김에 버드와이저를 남편과 나누어 마시고 저녁을 끝냈다.
그리고 바로 누워도 아프고 옆으로는 눕지도 못하고 이래도 저래도 아픈 악몽같은 하루를 보내고
내 발로 찾아간 "정형외과"
원인은 목디스크
뼈가 자라고 있는 걸 보고 나니 허걱했지만 어쩌겠는가
튀어나온 뼈 두 조각이 어딘가 신경을 건드려서 이틀동안 굉장히 아팠던 거니까
앞으로는 스스로 조심하면서 살면 모든 사람이 수술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니까 별수없이 목디스크를 끌어안고 사는 수 밖에 없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괴로운 밤에
남편은 바로 내 귀에다 대고 코를 심하게 골면서 잤지만 나는 남편을 때릴수도 없었고 남편의 몸을 뒤집을 수도 없었다.
자면서 말로만 "당신 코를 곤다 제바알-.-" 그러면서 밤을 보냈다.
주사 세 방에 좀 풀린 어깨
나이를 먹어간다.
오늘은 바람이 어제보다는 덜 분다.
옥상에 상추들과 쑥갓들이 오늘도 신나게 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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