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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죽음과 삶"

by 나경sam 2019.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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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 저녁 성가대 연습 시작 전에 알토의 내 옆자리에 앉은 베로니카 언니가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는 벌떡 일어나서 뛰어 나갔다.

시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고 했다.


연세가 있으시니 그런가보다 하고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는데 그게 사실은 돌아가신거였다.


다음날 베로니카 언니 시어머니의 부고가 성가대 밴드에 올라왔다

.

내가 어렸을 때는 부고는 노란 종이 봉투에 넣어서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호기심이 언제나 많았던 나는 대문에 꽂아진 우표가 없는

그 우편물이 너무 궁금해서 글자를 읽게 되었을 때

그 봉투를 먼저 열어봤고 그게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우편물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밴드로 카톡으로 죽음이 전달된다.


연도를 바치러 빈센트 병원으로 가서 30분 정도 연도를 바쳤다.

돌아가신 분 얼굴이 85세의 할머니가 저렇게 곱구나 싶을 정도로 인상이 고우셨다.

연도를 바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서 연도는 마치 합창처럼 장례식장안에 울려 퍼졌다.

장례식장에서 연도를 바친게 열번은 된 것 같은데 이번에 할머니를 위해서 바치는 연도가

사람들의 음성이 가장 좋았다고 느꼈다.


다 이유가 있었다.

돌아가신 아나스타시아 할머니는 기도를 정말 열심히 하시던 할머니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본인이 열심히 해주시던 분이라서 이번에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를 해준것이다.


손에 묵주를 쥐고 돌아가셨다고 전해 들었다.

 상주는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건만 함께 간 사람들은 할머니가 죽음을 행복하게 맞았다고 했다.

할머니의 연도를 바치면서 함께 음성을 모아 연도를 바치는게 죽은 이에게 해드릴수 있는 살아있는 자의

마지막 선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지오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레지오를 하게 되면

연령회에 들어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처음 해보았다.


죽음은 사람을 가르친다.


아버지의 죽음도 나를 가르쳤다.


주위 사람들의 죽음이 추상적인 느낌이었었다면

아버지의 죽음은 현실적인 타격이었으므로 너무나 선명한 아픔이었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고 이후 내 인생에 있어서

분명한 선이 하나 그어진 것 같았다.


소피아 언니는 내가 일본에 가게 된 근본적인 출발선 중에는

아버지의 죽음도 있을거라는 비교적 예리한 추론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분명히 그어준 선이 비포와 에프터로 남아있는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특히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 우리 성당에서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주일 미사를 드리던 노인분들이

어느날 보이지 않으면 그건 분명히 돌아가셨거나 입원하신 거다.


성당의 의자에 본인 이름을 새겨놓은것도 아니면서 자기만의 자리를 고집하는 어른들이 많다.

늘 앉던 자리가 주는 심리적인 이유에서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리가 비었을 때 더욱 알아차리는게 빠르다.

나도 나이가 들어 성당을 다니면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은 성가대 석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지만 성가대를 더이상 하지 못할 할머니가 되면

마음에 드는 자리를 정해놓고 그 자리에 앉아서

주일 미사를 늘 드리다가 언젠가는 그 자리에 더 이상 앉아있지 앉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사는 일은 하루하루가 다른 날과 얽힌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도 같은 일들의 연속이지만

죽음이란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다.

그저 늘 보이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그것이 죽음인것이다.


돈을 얼마를 가지고 어떻게 쓰고 살았건 카톨릭 신자라면 저렇게 죽는 순간에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묵주 밖에 없다.


할머니는 열심히 기도를 하셨고 그 기도는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본인을 위한 연도로 돌아왔다.



할머니도 나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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