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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탈리아로 유학 가야겠어"

by 나경sam 2019.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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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유학가야겠어"


합창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건 삼년 전이지만 실천에 옮긴건 2019년 4월부터가 되었으니

내 인생에 합창은 since 2019가 되시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등학교때 학교 축제같은 행사에서 우리반 중창 여섯명쯤 연습해서 나갔던것같다.

서로 친한척하면서 손잡고 "노란새"를 불렀었다.


"노란새 저 귀여운 작은 새 노란새 저 귀여운 작은 새"

뭐 그런 노래가 있었다.

유치하게도 제목이 노란새라고 옷도 상의는 노란색을 입었었고 치마는 청치마를 입었었다.

페페로네 노란색 반팔 윗옷을 입었었다.

내가 아끼던 페페로네 노란색 티셔츠


내가 정말로 원하는 메이커는 "그린 에이지"였었는데 내가 엄마를 엄청나게 졸라서

"그린 에이지" 매장에 들어가서 엄마가 블라우스 가격을 물어 봤는데 블라우스 한 장에 이만 구천원이라고 하니까

엄마가 이 집 거의 미친거 아니냐는 얼굴로 나를 데리고 확 나와서 내가 진짜 창피했었다.

그래도 정말로 입고 싶었던 그린 에이지 프릴 블라우스 목 부분에 달려있었던 검정 새틴 리본

엄마가 안사줬던게 또 하나 "랜드로바" 방울 달린 황토색 단화

아버지는 사달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책가방이며 운동화며 프로스펙스 깔맞춤으로 알아서 사다 주셨지만

엄마는 절대 그런 법이 없어서 아버지는 운동화는 알아서 사오셨지만 랜드로바까지는 구두라서 미처 생각도 못하셔서

안사오셨었고 그래서 엄마한테 랜드로바 방울 두개 달린 단화 사달라고 했다가 집에서 쫓겨 날 뻔 했었다.

그래도 그때는 철이 없을 때라서 집에서 쫓겨 나도 그런 구두 사주는 집이 있다면

스스로 걸어들어가서 "저를 들이셔야 합니다.대신 랜드로바 구두를 사주세요"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못 얻어신은 랜드로바를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사서 신고 다녔었다.

메이커 병이 중증이었을 때였다.

그래도 세련된 아버지 덕에 중학교 이학년 때 교복 자율화가 되면서 프로스펙스 책가방을 들고 다녔고 운동화는

눈치볼 것없이 프로스펙스를 신고 다닐 정도였으니 아버지 어머니 고생 많으셨겠다 싶다.

그래도 그 시절 나의 결핍은 그린 에이지 블라우스와 랜드로바

승범이가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대전 동양 백화점에서 랜드로바 아동화를 사서 신겨주고 얼마나 좋았었는지.

지금은 랜드로바가 그런 디자인은 없고 얼마전에 내가 사서 신은 랜드로바는 중년 아줌마들 발 편하게 신으라고 나온

효도 신발같은 랜드로바 - 3월 19일날 집에 왔더니 집에 안쓰고 굴러다니는 금강제화 상품권이 있길래 그걸로 랜드로바 효도 구두를 사서 신었다.


방울을 만들어서라도 달고 싶으나 -  그것도 잡혀 갈 사유가 된다. 나잇값에 결격 사유

 

나잇값 결격 사유 - 1.리본 2. 방울


지금은 그런 블라우스는 망설임없이 사 입을 수 있는데 그런 블라우스 입고 다니면

나잇값도 못한다고 어디 끌려갈지도 모를 나이가 되었다는게 슬프다.


"비틀즈도 베토벤도 모두 좋지만 언제나 푸른 꿈이 피어나는 우린 그린 에이지 그린 에이지"

이런 씨엠쏭이었었다.

중창 연습을 하면서 "신화자" 라는 아이랑 싸웠었는데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노란새는 아직도 멜로디와 가사가 생각나

이 놈의 미친 옛날 기억


매홀 여성 합창단에 나가서 딱 세 번 연습을 했는데 무대에 서라고 지휘자께 말씀을 들었다.

내가 뭐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워낙 숫자가 적은 합창단인데 그 중에 한 명이 무대에 오르지 못 할 사정이 생겨서

내가 급급급 대타로 투입이 된 것이다.




가사도 다 외워야 되는 데 대타 투입 여부도 거의 무대에 오르기 삼일전 권유를 받은거라

악보나 겨우 보고 부르는 수준이었는데

뭐냐 나는 시키면 하는 여자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쨌든 틀려가면서도 무대에서 메조 소프라노 내 역할을 했다.


함께 합창했던 멤버들이 자기들은 일 년동안 꾸준히 연습했던 곡이었는데 어떻게 한 번 연습하고 했냐고 놀랐지만

아마 내 옆에 함께 섰던 창순언니와 은경언니는 알았을것이다.

내가 소프라노로 헤매다 정신차리고 메조로 돌아오고 알토로 헤매다 메조로 돌아온 것을 말이다.

뭐 그렇더라도 리허설때보다는 실전에서 더 잘했으니까 나는 만족한다.


지금도 혼자서만 고개 뒤로 젖히고 뭐하자는 건지 모를 폼으로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많게는 10년차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솔로로 독창할 수 있는 실력자들도 소프라노에는 제법 있어서 자세도 안정이 되어 보이는데

민망하게도 나는 사진을 찍을때도 다리를 출격 1초전 스모선수처럼 벌리고 서 있거나 혼자만 엉성하다.


그래도 저 노래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불러 본 가곡이다.

메조의 멜로디와 소프라노가 합쳐지는

"단 한 번만이라도 그대를 만 나아"

그 대목에서는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렇게라도 한 번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할 때는 울컥거려 혼났었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이성을 찾고 냉정하게 불렀다.



빵집 아줌마들한테 합창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빵집의 고상은 잊어주세요. 저 노래하는 여자예요"

하면서 웃겨주었다.

그리고 나를 찾아보라고 했더니 나카무라 아줌마는 잘도 찾아서 나한테 100점을 받았다.


돌아와서 맞이하는 은진이의 생일

12시 넘어서 화장실에 가면서 생일 축하한다고 가장 먼저 축하를 해주고

돌아와서 합창 무대에 한 번 서고 남편이랑 두 번 쯤 다퉜고 (그래도 하룻밤을 넘기지 않는 내공을 발휘-자기 전에는 화해를 했다)

수민이는 시합을 두 번 나갔고


승범이는 집을 나갔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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