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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시간이 키우는 것 들"

by 나경sam 201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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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키우는 것 들"


3월 19일 돌아와서 곧 바로 부활 연습에 들어 갔기 때문에 성가대로서 성당에 다시 나가 부활 연습하는 일이

한 달째 계속 되는 내 나름대로의 빡센 일정이었는데 그게 오늘 끝났다.

예수님의 부활이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듯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한

우리들의 행사도 항상 힘들고 늘 무리데쓰네-.-

늘 새로운 곡을 연습시키는 실력있는 우리 지휘자는 우리들의 실력보다 늘 한단계 아니 몇단계는 더 높은 곡을 선곡하니

한 달 새에 그걸 다 연습해서 부활에 부르고 나면 오늘처럼 부활절 후에 하는 회식에서

아무리 신부님이 계시더라도 맥주를 마시지 않을 수 가 없다.


하지만 맥주는 역시 일본 맥주가 더 맛있다.

하이트와 카스가 제일 맛있는 맥주인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마셔 본 삿뽀로 비루가 가장 맛있었다.

언제 다시 삿뽀로에 맥주 마시러 갈 날이 있겠지


어제는 반주 파트를 도와주러 승범이와 은진이까지 와서 연주를 해줘서 작은 성당에 화음이 구석까지 퍼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성탄절 미사를 도와주러 나왔던 게 성당 봉사 연주의 시작이었던 은진이는 벌써 대학교 2학년이고

고등학교 때부터 성당에 나와서 교중 미사에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었던 승범이는 그 동안 대학교도 가고

군대도 다녀오고  소년에서 남자가 되었다.


우리 성당은 워낙 나이드신 분들이 많으셔서 우리 큰 애가 군대에서 제대한지 한참이 지났을 때도

"군대는 언제 가냐고" 뜬금없는 소리들도 하시고 교중미사때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면 구슬프게 우시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내가 성가대 나가서 알토 파트 시작한게 올 해 딱 8년째이고 아이들은 나보다 조금 늦게 성당 반주 봉사를 했으니

얘네들의 성당 반주 경력도 무시못할 짬밥이 되었다.

그때는 아직 진로도 분명치 않고 걱정만 많았던 때였는데 음대생이 되어서 저렇게 봉사를 해주니 저것들의 에미로써 뿌듯하기가 말해 뭐하랴 싶다.


부활이 끝났고 부활전에 옥상 손바닥 텃밭에 상추와 쑥갓의 씨를 뿌렸다.

그리고 소피아 언니한테서 받은 수박 모종도 심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수박꽃이 노랗게 몽오리가 맺혔다.


그러다가 며칠도 안되서 저렇게 수박 모종에 호박꽃 같은게 뿅하고 폈다.


엄마가 내가 심어놓은 수박 모종을 보고서는 혀를 끌끌 찼었다.

"수도세도 안나온다.저거 다 뽑아버리고 차라리 상추를 심어"

한 번 뱉은 말은 고집으로라도 하고야 마는 "황씨 고집" 우리의 "황경예"여사가 그렇게 말을 했으니

우리집 수박은 엄마 손에 뽑혀서 죽을 수도 있다.

우리 엄마는 말을 하면 그대로 한다.눈치 볼 것도 없이 하고야 마는 데 그래도 큰 딸이라고 내 눈치는 조금 보는 편이라

내가 버럭했다.


"뽑기만 해봐.엄마랑 의절할꺼야"

수박 모종 네 개에 엄마랑 의절 할 뻔했다.

엄마가 움찔해서 꼬리를 내리고 그냥 두면서 조용히 궁시렁 거리셨다.

"니 동생네 것 같으면 뽑아버리는 데 -.- 그려 알았다"

하여간 그바람에 저 수박 모종은 꽃을 피우게 된 거다.

역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쑥갓도 하루가 다르게 싹이 쑥쑥 올라오기 시작했다.


땅에 찍어 놓은 초록 점 처럼 보이지만 쑥갓 싹들이 정신없이 올라왔다.

방울 토마토와 고추 모종도 심어 놨더니 고춧모가 흰 꽃을 피웠다.

시간은 그렇게 정직한 것

옥상에 올라 다니면서 창고 정리를 하다가 중학교 때 친 소나티네 책을 발견했다.

소나티네를 다시 쳐보니 멜로디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소나타처럼 스케일이 큰 곡이 주는 느낌과 소나티네가 주는 작은 곡의

아름다움이 다른데 어릴 때는 소나타만 멋지다고 생각했고 소나티네는 "흥"하고 무시했으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사 준 34년 된 "영창 피아노"가 아직도 승범이 방에 있다.

대전으로 제주도로 대구로 전주로 춘천으로 수원으로

배 편으로 하는 이사 만 두 번에 총 횟수로는 스무번이 넘고 서른 번에서 조금 모자라는 우리 집 이사 횟수에

영창 피아노는 따라 다녔고 우리 집 애들도 다 그 피아노로 내가 가르쳤고

1도 화음 5도 화음 4도 화음을 만들어서 누가 가르치지지도 않았는데 작은별을 치던 네 살짜리 은진이를 봤을 때

천재를 낳았다고 혼자서 흥분하기도 했었다.

이제 그 피아노로 집에서 소나티네부터 다시 혼자서 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매홀 여성합창단 오디션에서는 "그 집 앞"을 불러서 메조 파트로 배정이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가 합창단 오디션에 혼자 가기가 쑥쓰럽다고 함께 가자고 하도 졸라서 같이 가서

시험을 봤는데 그 때 오디션 곡이 "그 집 앞"이었다.

친구는 붙고 나는 당연히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함창단 오디션을 볼려고 혼자서 준비를 했으니까 붙었던 거고

나는 친구따라 가서  아무 준비없이 봤으니까 떨어진 거다.

매홀 여성합창단 오디션곡으로 "님이 오시는지"를 준비했었는데 오디션 직전에 무슨 오기가 났는지"그 집 앞"으로 바꿔서 불렀다.

지휘자가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무슨 배짱인지 오디션 볼 때 심지어는 하나도 떨지 않았다. 오디션을 지켜보던 부단장이 어쩜 그렇게 하나도 안 떠시냐고-.-

원래가 강심장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혼자살던 일본 생활 일년동안 내가 조금 달라졌구나 싶었다.


시간은 그냥 가는게 아니더라


집에 와서 아들한테 엄마가 지휘자한테 칭찬을 받았으니 아무래도 노래에 숨겨진 재능이 있는것 같으니

아무래도 이제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야 겠다고 했더니 자기 침대에서 딱 반바퀴 뒹굴거리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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