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테나시"
오모테나시 (おもてなし)
오모테나시는 상대방에 대한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친절을 베푸는 상대를 미리 헤아려 마음 씀씀이를 행하는 것
교토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똑같은 사람들인데도 느낌은 100프로 달랐다.
지난주 일요일부터 공항에 픽업나가서 연예인 아이돌이 입국할 때 팬들이 들고 있는 핸드폰 led화면을 띄우고
에츠코 선생님을 기다렸다.
입국장에서 나오던 에츠코 선생님이 핸드폰화면에 지나가는 자신의 이름을 보고는 깔깔깔
나도 깔깔깔 - 교토역 주변에서 3월에 마지막 만남후에 두 달 조금 안되어서 다시 만났지만 한국에서 봐서 그런지 반가움지수 급상승
내 차로 호텔까지 함께 가는 것도 그 분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한국의 친구가 마중나와준것같은 마음이라고 고마워했다.
막걸리면 막걸리 맥주면 맥주 도무지 술에 있어서는 내가 어떻게 해 볼수 없는 막강에츠코라서 체크인후
곧바로 사당동 "전주전집" - 백선생이 다녀가셨는지 가게 앞에 사진이 떡허니 걸려있었지만
친절 점수는 "소꼬소꼬"
지평생막걸리와 모듬전셋트로 우선 여기서 중요한건 "우선"이라는 단어다. 우선 목을 풀고
사당동 "돈 페페" - 남편 고등학교 친구 홍래셒이 운영하는 수제 맥주집으로 2차
그날은 "돈 페페"가 쉬는 날이었었는데 우리만을 위해서 가게 문을 11시에 열어주었다.
그래서 가게에는 에츠코상과 돈 페페 주인네들 그리고 우리집 바깥 양반뿐이었다.
수제 맥주 전문점답게 맥주를 종류별로 줘서 그것도 공짜로
에츠코 선생님은 중간맛과 묵직한 맛까지 네 잔을 무려 마신후에 내일의 음주를 위해서 호텔로 돌아갔고 물론 그동안
술대신 물만 마신 남편이 운전을 했다.
이런 식의 시작을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무려 엊그제 종로3가에서 막걸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아흐흑 - 그 뒷 날 나는 머리가 정말 스무살 때 음주에 젖어 살 떄처럼 음주후 두통에 시달려서 결국은 약을 먹고 털고 일어날수가 있었다.
그래도 다음날 청와대 앞 구경도 하고
청와대 앞에 있던 경호원과 사진도 찍었다.
저 사진을 찍었을 때 에츠코선생님이 너무 좋아했다. 한국을 그동안 여러번 왔었지만 청와대 앞구경은 처음이었고
경호원과 사진을 찍는 일은 생각해본적도 없었는데 내 덕분에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경호원이라서 그런지 생긴것도 살짝 배우처럼 생겼다)
청와대 앞에 있던 통인시장에 가서 기름 떡볶이도 먹었지만
떡볶이는 역시 국물 떡볶이가 진리다. 기름 떡볶이 의문의 1패가 아니라 확실한 1패
한강 시민공원에 가서 치맥을 하면서 에츠코 선생님을 위해서
집에서부터 우쿨렐레를 들고 돗자리를 가방에 넣어서 서울까지 가는 길은 나도 좀 힘들었지만
나도 언제 이런걸 해보겠어 - 함께 관광 온 사람의 모드가 되어서 연남동을 거쳐서 한강 시민공원까지
가는 길에 지구를 완전히 한 번 떠났다가 돌아왔다.
연남동에서 지구를 떠났다가 무사히 착륙한 후에
한강 시민공원에 가서 치맥을 하고 우쿨렐레를 치면서 "펄리쉘"을 부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에츠코상은 호텔로 나는 집으로
교토에서 시차를 두고 오는 "히라이"선생님을 마중하러 다음날 또 공항으로 가서 픽업하고
"나경투어" 진짜로 차려야겠어
셋이서 서울대학교 축제에 갔다.
역시 언제나 음주와 함꼐 - 일주일 내내 맥주를 한 잔이라도 안마신 날이 없었나보다.
그리고 사진 찍는 컨셉은 에츠코 선생님은 우사기상과 함께
나는 라이언과 함께 히라이쌤은 몸키짱과 함께 - 언제나 사진을 찍을 떄는 자기만의 캐릭터와 함께 찍었다.
정말 나이가 셋이서 150이 넘은 사람들이 언제나 저렇게 인형과 함께 -.-
마지막날 막걸리 집에서도
어디를 가더라도 라이언과 우사기상과 함께 -
마지막 날은 경복궁에 가서 한복을 입고 - 점프 사진을 찍는 다는게 인당수에 빠지는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도전했지만 - 이번에는 정신이 나간 아줌마가 되었네
북촌에 있는 미슐렝가이드에 소개 된 적도 있다는 삼계탕집에 가서 삼계탕을 먹고 마지막은 막걸리로
일주일을 술과 함께 그리고 좋았던 사람들과 함께 간간히 남편도 함께
수원과 강남과 공항을 왔다갔다하면서 손님접대를 했다. 우리동네 화서시장도 함께 가고 화성행궁도 함께 걷고
화성 행궁 주변에 새로 생긴 한옥 커피숍에도 가고 경복궁 생과방에 가서 다소곳이 앉아서 오미자차도 마셨다.
토요일 저녁 늦게 헤어지고 일요일은 시댁으로 가서 식사후에 아버님이
밭에 늘어지게 있던 아욱을 뽑아가라고 하셔서 - 그전같았으면 "사먹어도 되니까 안가져 갈래요"했을텐데
나는 좀 철이 났는지 이제는 아버님 어머님이 뭘 가져가라고 하면 알았다고 대답을 잘한다.
아버님이랑 아욱을 뽑으러 텃밭에 나갔는데 사실 어떤게 확실히 아욱인지도 잘 몰랐다.
그랬으니 더욱이나 아욱밭 옆에 있던 게 양파인지 대파인지 알리가 없었던 내가
"아버님 - 대파가 참 싱싱하네요" 그랬더니
우리 시아버지 시크하게 "다마네기다"
올라오는 길에 충주에 시합나가 있던 우리 막내를 숙소로 찾아갔더니
한달 전에 보고 이번이 두 번째인 우리 막내는 한달동안 시합만 이번이 세 번째라서 몸이 너무 힘들어 있었는지
숙소 앞에서 우리를 보고 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누가봤더라면 어렸을 때 잊어버렸던 딸을 충주에 가서 찾은 것같은 모양새였다.
우리만 보면 항상 혀가 반은 접어져서 발음이 갑자기 세짤이 되어 버리는 우리집 막내
숙소앞에서 우는 걸 떼놓고 올라오면서 마음은 좀 짠했지만
항상 생각하는게 저러면서 좀 크겠지한다.
누가 보면 다 큰 딸이지만 말이다
에츠코 선생님과 히라이선생님한테서 너무나 고마웠다는 라인으로 전송된 긴 메일을 읽으면서
일주일의 시간이 정리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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