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됨"
남편의 출신 고등학교는 "익산 남성고"
명문이지만 남편은 고입 시험이 폐지된 기수의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선배들한테서 개 무시를 당하면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었다.
명문고등학교에 자기들은 기껏 시험쳐서 들어갔는데 1학년 것들은 뼁뺑이를 돌려서 들어왔으니 그 시절 익산 남성고 64년생 1학년들은
도매금으로 "멍청이"들이 된 거다.
하긴 선배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3학년과 2학년은 시험을 봐서 기를 쓰고 들어왔는데 1학년 신입생들은 그냥 걸어 들어왔으니
무시를 당해도 싸긴 싸다.
어찌되었든 남편은 고등학교때 3학년 1반이었었고 그때 같은 반 친구들이었던 남자들이 모임을 만들어서 그게 지금까지
30년 정도 된 것 같다.
친한 친구도 있었고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도 있었겠지만 모임이 되어서 "한빛회"라는 이름으로 주구장창 만난다.
처음에는 3학년 1반 남학생들끼리 만나다가 결혼하면서 부인들도 함께 만나고 아이들도 만나서 밤새도록 술마시고 떠들고 놀다가
어느샌가 아이들은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고 몇 명되지도 않던 친구들이지만 지병으로 먼저 세상 떠난 이도 생겨서
여차저차 지각 변동을 거치면서 30년이 넘었다.
승범이가 태어나기 전에 비디오카메라를 샀던 우리는 비디오카메라에 온갖것들을 다 녹화해둬서
우리집 비디오카메라에는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부터 우리 아버지 우리 시댁의 큰어머니와 큰아버지도 계시고
젊은 나이에 먼저 우리 곁을 떠난 한빛회 회원이었던 古임석태씨도 있다.
전주 아중리에 살 때 우리집은 1층 석태씨네는 5층이어서 또 그집 딸 정하가 우리 승범이랑 동갑이어서
승범이랑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정하는 거의 매일 우리집에 와서 간식도 먹고 저녁때가 다 되면 자기집으로 올라갔었다.
저녁 쯤 되면 석태씨가 우리집으로 정하 찾으러 항상 내려와서는 한 템포 느린 말투로 "우리 정하있어요" 하고 물어보는게 일과였었다.
우리집 비디오에는 정하 아빠 목소리도 들어 있다 "우리 정하 있어요" 하는 그 소리
그 당시에 정하 엄마는 학원 강사를 하느라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정하 아빠 밥도 내가 많이 차려줬었다.
우리 집 애들 셋에 정하에 정하 아빠에 정하 아빠 친구인 우리집 양반까지
나도 밥 차리느라 수고가 많았었네 - 쓰다보니-.-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잠시 일을 쉬고 있던 정하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건 우리가 전주에서 제주도로 이사 들어간 2002년이었다.
2002년 7월 17일 제주도로 이사 들어갈 때 우리 시어머니만큼이나 정하 아빠도 서운해했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낮에 한 말을 듣고 저녁에 자기 전에 그 말이 생각나서 웃게 되는 그런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병은 아니었었기 때문에 나는 제주도에 이사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정하 아빠 부고를 들었을 때 말도 나오지 않을 만큼 황당했었다.
아이들이 어렸었지만 자기들 아빠만큼 매일 보던 아저씨였었기 때문에 차마 아이들에게 "정하아빠 돌아가셨어" 그 소리를 못했다.
삼일장으로 치르지도 않고 짧게 끝내버린 정하 아빠 장례식장에 가지도 못했었는데
은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나 정하 아빠가 꿈 꿨다" 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하늘나라 가기 전에 제주도 우리집에 들려서 은진이한테 인사하고 갔나보다 생각했었다.
오래 된 이야기다.
오래 된 친구들이랑 오래 된 도시 "나주"에 갔다.
사람은 100년을 못 살아아도 나주에 있는 나무들은 600년은 넘겨야 "보호수"라고 명함 내 밀수 있다.
수령 650년 은행나무다
나무를 잘 보면 큰 기둥에 자식 나무를 빙 둘러가면서 달고 있다.
나주의 오래 된 흙 담장 - 나는 오래 된 것들을 좋아한다.
나주는 처음 가 본 곳이지만 동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영산강 앞에는 홍어거리가 있어서 거기서 작은 홍어 한 팩 사다가 시댁에 들러서 드리고 대신 어머님의 열무김치를 얻어왔다.
남편의 뺑뺑이학번 친구들이 아니면 나주에 갈 일도 없었을테지만 그 친구 중에 한 분이 증맬증맬 높으신 분이 되어서
나주에 초대받아 간 거라 럭셔리 나주투어를 하고 돌아왔다.
교토에서의 생활은 견적이 딱딱 나오는 생활이었지만 돌아와서는 놀러 다니기도 바쁘고 아이들 연주 보러 다니기도 바쁘다.
어제는 서울대 1,2 관악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여서 연주회보러 갔다.
악장님이 되신 우리 집 딸의 이름이 팜플릿에 악장으로 인쇄되어진 걸 보는 것도 즐겁다.
오빠가 불 던 악기로 오빠따라 다니면서 배운 악기로 악장까지 되기까지 - 우리집 둘 째도 고생많았다.
그림자 뒷바라지로 유명한 음악계에서 반쯤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꿋꿋하게 콩쿨도 혼자 나갈 때도 많았었던 우리 둘째
엄마가 박수 보낸다.
악장이라 그런지 솔로 부분도 많아서 중간중간 나오는 클라리넷 솔로 소리에 마음 졸이고 아니 쫄이고
나중에 연주 다 끝났을 때 남편이 나한테
"은진이 솔로 소리 듣고 사람들 울더라" - 남편이 웃자고 한 소리다.
그래서 내가 "당신하고 나 두사람" -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자기 자식 소리나 맘 졸이고 듣는거지 나도 남의 아이들은 독주회를 해도 편히 볼 수 있다.
연주회 끝나고 사당동 "돈 페페"
여기 사장님도 "한빛회" 친구
공짜 와인과 수제 맥주를 무한 리필로 마시고 이 집 특허 "고구마 피자"도 먹고 연주 2차 끝내고 12시 넘어 건너 온 딸이랑 셋이서 귀가
"돈 페페" - 이름이 참 멋지지만 알고보면 "돈을 패대기치듯이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줄임말이다.
야무지기가 나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사장 부인이 지은 가게 이름이다.
이 집은 정말 이름처럼 "돈 페페"가 되어 가고 있어 보인다.
이번에 "한빛회"회원들 만나보니 건물이 세 채인 사람 아니면 자기 건물을 따로 지은 친구들도 있던데
우리집은 아직도 "돈 페페"가 아니고 "돈 퉤퉤"인지 -.-;;;
62년 63년 선배들은 본인들이 3학년이고 2학년일 때 1학년 신입생 이었던
64년생들 뺑뺑이 돌려서 남성고 들어왔다고 싸잡아서 멍청이들이라고 했다고 했건 어쩌건 간에
다들 잘만 살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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