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넘게 쉬다가 일을 하러 나가도 늘 해오던 일은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어색함이 없다
그저 다른게 있다면 하루하루 떨어지는 체력 뿐
특히 아침이 힘든 나는 일어나자 마자
하루 시작종을 커피로 울리고 늦은 밤에도 똑같이 한 잔을 내려 마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잔다.
감성충만 아줌마에게 커피는 필수 아이템
어찌보면 쌀 20킬로보다 더 비쌀 저 분쇄 원두를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들여서 쟁여놓고
흐뭇해 하는 건 내가 부리는 몇 안되는 최대의 사치지만
뭐 그런거라도 없으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돈 벌 이유가 없다고 당위성을 주어가며
커피 봉지 달랑 거리면 예전 우리 엄마 겨울에 창고에 연탄 들여놓고 아주 좋아하던 것 처럼 채워 놓고 좋아한다.
집 뒷쪽에 있던 연탄 창고가 나중에 집을 고치면서는 넓은 방 한 칸이 되었을 만큼 컸었다.
그 때 집 부엌은 연탄 화덕도 있었고 한 쪽에는 아궁이도 있었다.
나름 동네에 몇 안되는 양옥집이었어도 부엌은 거실 아랫쪽으로 쑥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아궁이에 땔 허드렛 나무도 연탄 들이는 시기에 맞춰서
어떤 아저씨가 가져오시면 엄마는 딸들을 줄줄이 데리고 한 웅큼씩 팔로 안아서 나르라고 하셨고
옷에 엉겨붙는 그 나무들을 옮기는 동안 툴툴 대고 입을 내밀고
뭐 그러다가 등짝 한 대 맞았던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고
그 시절 우리 엄마는 스스로에게는 돈 한 푼 안쓰고 지내셨을거다.
중 2때까지 교복을 입었는데 교복이 다 거기서 거기였겠지만 내가 친구들에게 듣고 "수산나" 교복이 유명하다고 거기서 맞추고 싶다고 하니까 두말없이 군산에서 알아주는 양장점에서 친구들보다 비싸게 맞춰줄줄도 아셨고
자식들에게는 돈을 잘 쓰셨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그만큼 해주신 것도 힘들었을 텐데 이거해주라 저거 해주라 요구사항도 많았었다.
랜드로바 황토색 방울 달린 신발이 신고 싶어서 엄마 그거 만구천원이라는데 사줘 그랬다가 그때는 진짜 혼났었다.
액수를 기억하는건 그때 못가졌던 랜드로바에 대한 결핍으로 금액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이다.
운동화는 프로스펙스를 신고 다녔으니 구두는 좀 참아도 되지 싶었건만 그 땐 그렇게 철이 없었다.
중학교 때 못 신었던 랜드로바를 결국 대학교때 오만원에 사서 신었었다.
엄마도 커피를 좋아하신다.
병커피를 프림이랑 설탕 넣고 타드시다 나중에 나온 일회용 빨간색 직사각형 봉투의 맥스웰 커피 참 좋아하셨다.
집안 일 힘들게 하고 한 잔 마시던 엄마 모습이 기억이 나고
지금 나는 그때 엄마보다 훨씬 덜 힘들어도 힘들다고 툴툴대면서 꼭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내고
오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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