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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엄마도 오고 지진도 오고"

by 나경sam 2018.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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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오고 지진도 오고"


토요일 오후 엄마랑 여동생을 마중나가는 교토 역

두달 넘겨 살면서 교토역에서 만남과 혜어짐을 반복했다.


엄마랑 여동생이 온다고 연락을 이주일 전쯤 받고 그 동안 좀 힘든 일이 있으면

"그래 조금만 참으면 엄마가 온다"

그러면서 참았다.


칠십 넘은 엄마는 오십 넘은 딸에게 아직도 진통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진통제지 싶다.

그러면 자식은 뭔가

자식은 통증 유발제


엄마를 기다리느라 입장권을 120엔 주고 끊어서 하루카가 내리는 곳에서 기다렸다.

멀리서 들어오는 하루카의 기차 불빛이 내마음으로 들어왔다.

6호차에 타고 있던 엄마는 벌써 가방을 메고 서 계셨다.


엄마가 내리고 여동생이 내리고


싱가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던 역사적인 순간처럼

우리도 그렇게 만났다.



엄마가 하루카에서 내리면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안아주면서
"뭐하려고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냐고" 조금 우셨다.


엄마의 짐가방은 수화물 무게를 초과해서 짐을 몇번을 풀렀다 다시 쌌다 엄마식의 표현으로는

"공항에서 쑈를 했다"고


그래서 엄마의 짐가방에서 나온 것들은


"묵은 김치,무김치,새로 담근 김치,소고기 고추장볶음,멸치볶음,장조림,김,송편(송편까지 쪄서 갖고 오신 위대한 엄마다)"

치약 샴푸 린스

엄마의 여행 가방은 온통 딸 주고 싶은 물건뿐이었고 샴푸는 무게 초과로 버려야 했는데

"우리 딸이 공부하러 갔는데 갖다주고 싶어서 챙겨왔어요" 라고 말하자 그냥 패쓰했다는 인청공항 프리패쓰의 새 역사 되시겠다.


집이 너무 좁아 집 근처 호텔 트리플 룸을 잡고 이박 삼일을 지냈다.

말이 이박삼일이지 온전한 날은 하루뿐이었고 나머지는 오고 가는데 다 썼으니

(오는것도 어려웠지만 가는 건 더 어려웠던 엄마의 일본 행)


일요일


드디어 "신자부로함푸"의 가방을 샀다.




여동생과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색깔로 사서 갖고

엄마가 이고 지고 온 반찬으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일요일 카와라마치 대로변을 수원 우리 동네처럼 걸어다녔다.


걷다가 덥고 다리 아프면 들어가서 쉬고



여동생이 마시자고 해서 걸으면서 함께 마신 "호료요이"

음주보행도 하고



니시키 시장에 가서 타코야키도 먹고

지금 "무인양품 주간"이라서 무인양품에 꼭 가야 한다는 여동생이랑 함께 무인양품에 가서

쇼핑도 하고

일본에 왔으니 먹어야 한다는 "모스버거"도 먹고

일요일 하루를 셋이 옹골차게 보냈다.


저녁에는 엄마랑 함께 "아사히" 맥주집




엄마랑 여동생이랑 나랑 아사히 맥주로 여행 마무리

빠르게 지나간 하루가 저 맥주 한잔에 담겨 있다.


맥주집에서 엄마가 나한테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잘하고 있는것같아서 이제부터는 걱정 안하실거라고 하셔서 내마음도 뿌듯했고

여동생도 언니가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기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하면서


막내 여동생 - "엄마 우리도 언니처럼 열심히 살자"

우리 엄마 - "엄마는 이제 열심히 살 나이는 지났다.너나 열심히 살어"


우리 엄마는 언제나 솔직하다.


비릿한 강물 냄새를 맡으면서 호텔로 돌아와 짧은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월요일 오전 비행기를 타야 해서 일찍 취침 모드


이때까지는 참 좋았다.


좋았던 여행의 반전이 지진이 될 줄이야-.-


월요일 아침 엄마와 여동생은 일찍 교토역으로 가고 나는 집에 와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8시쯤 집을 막 나서서 현관문에 섰을 때

정말 큰 소리가 건물 아래쪽에서 들리면서 갑자기 집이 흔들렸다.

땅속에서 나던 그 소리 진짜 무서웠다.

아주 심하게 -.-


내가 여태 살면서 그런 공포심을 느껴본적이 없을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흔들림이 멈추고 건물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걷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핸드폰보면서 걸어가는 아이들이나 직장인들을 좀처럼 볼수 없었기 때문에

큰일났다 싶었다.

무서운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놀란 마음 가라앉히고 걸어가는데

동네 할마씨들이 밖에 나와서

"비꾸리싰쨨다" - "아주 놀랬당게"

아 정말 지진맞구나 싶었다.


학교에 가서도 수업은 못하고 대기상태였는데 전철이 멈춰서 학생도 선생님도 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엄마와 여동생이 탄 하루타도 멈췄을수밖에


여동생이 카톡에 "언니 열차가 오사카 공항 도착 10분전에 멈춰서 갈 생각을 안해"

또 한참 지난 후 여동생이 카톡에 "엄마가 걸어가도 벌써 갔을것 같데"


달리는 차 안에서는 진동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게 그나마 다행이었다만 다행이다.

그저 열차안에 있는게 좀 답답해서 그렇지 아침에 내가 느꼈던 공포심을 엄마가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시간 정도 하루카 안에 있던 엄마와 여동생은 결국 기차에서 내려서

한시간을 걷고 전철역에 가서 전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

3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오후 늦게 연락이 된 여동생이 한국이라고 하면서


"언니 나는 엄마가 아주 강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엄마가 간사이 도착해서 한 번 울고 인천공항에서 한 번 울었어"

"나는 엄마가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지진을 겪어보니까 우리 엄마는 아주 소심하고 약한 사람이더라고"



우리 엄마 "황경예" 여사는 마음이 약하고 소심한 여자라는 걸 큰 딸인 나만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같다.


하루를 그렇게 힘들게 보냈으니 엄마는 여동생 집에서 하루 자고 내려가도 되련만 인천 공항에서

군산 가는 리무진을 타고 혼자 내려 갔다고 했다.

엄마나 여동생이나 무사히 돌아가서 다행이지만

어제 저녁에는 작은 지진이 두 세차례

오늘 아침에도 작은 게 한 차례 정도 우르릉 거렸다.


한 번 지진을 무섭게 겪고 났더니 카모강 건널 때 도로에 버스만 지나가고 훌렁 하는게 지진이 난 줄 알고 무서웠다.

교실에서는 다시 짝꿍을 바꿔 중국인 남자 게임 오타쿠 "쇼상"이랑 앉았는데

이 자슥이 수업 시간에 다리를 계속 떨어서 나는 또 지진이 난 줄 알았다.

정말 무서워서 애들 표정을 봤는데 아무렇지도 않길래 지진이 아니고 "쇼상" 다리 떨기라는걸 알았다.

개노무새끼 다리를 책상에 묶어버리고 싶다.


학교 끝나고 알바갔더니 빵집 아줌마들이 엄마가 한국으로 잘 돌아가셨냐고 자기 일처럼 걱정을 해줘서 고마웠다.


"일본에서 혼자 사는게 좀 쓸쓸했는데 아줌마들 덕분에 혼자가 아닌 마음이 들어서 감사하다"고

교과서적인 멘트를 날려주고 마음 약한 아줌마 한 명은 울려고 했다.


지진이 났어도 빵집은 잘 돌아가고 아무 일 없듯이 교토도 돌아가고 있다.


우리 집 애들이 나더러 헬맷 쓰고 자라고 카톡을 보낸 걸 보고 웃음이 나는 걸 보면 나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고



세상 다 그렇게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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