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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교토가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by 나경sam 2018.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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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가 내 마음으로 들어 왔다"



지진은 났었지만 어차피 교토는 큰 피해를 입지도 않았고 교통대란쯤 겪은 거라 일상은 다시 평온

물론 지진이 났던 날도 여기는 사람들 표정이 아무일 없는 것처럼 그랬다.

나는 그 무표정과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무서웠었다.

나같았으면 동네에서 만난 모르는 아줌마하고도 지진 얘기를 했을 것 같은데 여기는

그 무서운 흔들림을 겪고도 사람들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걸 보고 내가 겪은게 지진이 아니었나 순간 그런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하여간 일본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아 보인다.

물론 우리 담임 미하라 요시코 귀여운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수업 시간에도 발음의 엑센트를 온 몸으로 표현해주시는 분이시니 지진이야 말해 뭐해

어찌나 실감 나게 본인이 겪었던 걸 표현해내시는지

일본 사람들 다 차분하다는건 취소다 취소


엄마가 돌아가는 날 지진이 난 걸 요시코 선생님이 아셨기 때문에 엄마 안부도 따로 물어봐주시고

야마구치 선생님은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미안할게 하나도 없는데 선생님이 진심으로 미안해하셔서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빵집 아줌마들도 그렇고 이제 여기서 생긴 새로운 인간 관계가 내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학교 갈 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여고생도 그렇고

카와라마치 사거리 횡단보도 쯤에서 만나는 직장 아줌마도 그렇고

학교 거의 다 가서 만나는 인혁이 엄마 닮은 아줌마도 그렇고

교토 살이 두달 넘겨 석달 째 연결고리가 생겨나고 있다.


축구는 우리나라가 깨져버려서 아주 유감이긴 하지만 일본은 이겼으니 축하한다고 빵집 아줌마들한테 말했더니

내가 말을 건넨 아줌마 두명이 무슨 소리 하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 - "축구요 축구 월드컵요 일본이 이겼잖아요 축하한다고요"

아줌마 - "지금 축구헤요.몰랐어요"


제법 젊은 아줌마였는데 관심이 없는지 축구하는줄도 몰랐다면서 게다가 월드컵인줄 몰랐다고 해서 내가 등짝을 한 대 때려줬다.

빵 포장만 하지 말고 축구 보면서 맥주도 한 잔하고 재밌게 살라는 의미로-.-


우리 교실에만 동막골 에미나이가( 찐상)  있는 게 아니라 빵집에도 동막골 아주마이가 둘이나 있었다.

찐상은 일본으로 유학이라도 왔지 빵집 아줌마들은 청학골 수준 쯤 되나 보나.


그저 자기 일만 묵묵히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아줌마들의 눈에 내가 얼마나 이상한 한국 아줌마로 보일까 싶기도 하고 -.-


오늘은 야스미에다 4교시만 있는 환상의 날


교토 대학교로 갔다.

언제부터인가 가보고 싶었으나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갔다.

집하고 멀지 않아 버스로 네 정거장 쯤 가서 교토대학교 정문에서 하차







학교가 대부분 평지이고 차가 다니지 않아 자전거로 이동하는 대학생들이 많아서 보기 좋았다.

나무들이 밑둥이 우람하고 나무만 봐도 역사를 알 것 같았다.

백주년 기념관이 있는 걸로 봐서 역사가 오래 된 교토 대학교다.


1897년에 설립이 되었다고 하니 벌써 120년이 넘었다.

학생 식당도 가보고 (역시 학생 식당이라 메뉴도 많고 가격이 밖에 비해서 엄청 쌌다)


하지만 돌아다니다가 생협에 들어가서 사먹은 "가리가리군"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일본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아주 더운 여름날 "가리가리군"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여자 주인공의 대사가

"여름에는 가리가리군이지" 그러면서 우두둑 우두둑 아이스크림을 쌉어서 먹었는데

"가리가리군"을 먹으면서 그 대사가 생각났다.


나도 했다.조용히 나무 그늘에서 먹으면서

"여름에는 가리가리군이지"


도서관 밖에 공부도 하고 떠들기도 하는 테이블이 있길 래 나는 거기서 공부도 하고 경대생들 잡담도 듣고

젊다는 건 이렇게 초록초록한것이구나를 다시 한 번 느끼고 돌아왔다.


걸어오다 학교의 낡은 건물을 발견했다.





빈 건물같지만 저 안에 학생들이 있었다. 동아리활동 방같았다.

경대는 워낙 역사가 길어서 건물들이 새 건물과 오래 된 건물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경대 기숙사도 그 중에 한 예인데 너무 낡아서 학교 측에서 없애려고 해도 학생들이 반대를 해서 건물을 허물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새 기숙사와 오래 된 기숙사가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래되어서 학교에서 없앨려고 하는 기숙사는 한달에 3천엔정도가 기숙사비라고 하니까 엄청 싸긴 싸지만

돈보다도 어떤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는거지 사실 살만한 환경은 못되는 것 같고

교토라는 도시가 옛날과 지금의 공존으로 이루어진 도시인것은 대학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리가리군을 먹으면서 들은 전화통화를 듣게 된 학생은 자기 방의 월세가 12만엔이라고 전화 통화를 하는 걸로 봐서

그렇게 비싼 집에서 사는 애들도 있고 돈하고 상관없이 한달에 3천엔 기숙사에서 사는 애들도 있고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은 그렇게 제각각들이 모여서 그림 조각처럼 맞추고 산다.


100년이 넘은 경대 기숙사 "요시다료"


오늘은 드디어 수업 시간에 손은 핸드폰 게임기에 다리는 집중 떨기에 제각각 바쁜 "쇼상"에게 진심으로 한 마디해줬다.


나 - "야 짜증나니까 그만 좀 해라 작작 좀 하라고"


"쇼"가 너무 놀라서 핸드폰 게임을 순간 껐다. 얘랑 짝꿍을 하는 어느 누구도 "쇼"의 행동에 대해서 관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만 못참고 드디어 한 마디 해준거다.


나도 "쇼"의 성격을 다 아는 건 아니라 순간 겁은 났지만 얘가 수업 시간에 핸드폰만 하는 바람에

나까지도 수업에 방해를 받을 때가 있으니 오늘은 못참고 크게 말했더니 얘가 얼어가지고 다리 떨기까지 멈췄다.



뒷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걸 참았으니 "쇼상" 너도 계탄줄 알아라


206번 버스를 타고 교토대학 가는 길에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정류장에서 차를 세우고 밖으로 확 뛰쳐나갔다.

뒷 쪽 버스 타는 곳으로 가셔서 장애인 승차에 필요한 리프트를 설치하고 밖에 있던 휠체어 탄 장애인 아저씨를 승차시켜주었다.

버스 안에 있던 의자 두개를 접으니까 그게 바로 휠체어 들어가는 자리가 되었다.


너무도 당당하게 버스를 탔던 장애인 아저씨와 승차를 열심히 돕던 기사 아저씨

아 정말 그런건 우리도 좀 배워서 이렇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진심으로 일본이 부러웠던 장면이었다.

축구를 이겨서 부러운게 아니라 우리도 좀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하고 살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



빵집일을 해도 하루는 길고도 짧고 안해도 하루는 길고도 짧다.



이제 다음주면 또 딸이 온다.


신발이 찢어져서 하나 사오랬더니 신발가게에서 신발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함께 골라주는 딸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한 엄마고

구구절절 말이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 한마디 말로 큰 위로를 주는 아들의 한 마디

이 자슥의 말은 열 글자를 안넘긴다.


"한국와요"



저녁밥으로 김치 볶음밥한다고 해서 아들한테 간단 레시피 전송하고

나의 소중한 하루도 해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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