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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오 겡끼 데스까"

by 나경sam 2018.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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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겡끼 데쓰까"


오늘까지 딱 이주의 수업을 받았고 일본에 온지는 19일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산 것이 아니라 살아 낸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나이 오십에 뭐가 무섭다고 밤에는 무서워서 잠을 못자고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잠투정을 하기도 했고

덜커덕 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질것 처럼 놀라기도 했고

두곤 온 애들이 보고 싶어서 헤이안진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는 혼자 울기도 했다.


빵집 알바를 하고 온 첫 날에는 버터의 느글느글한 냄새를 너무 많이 맡아서 어찌나 김치 생각이 간절하든지

저녁에 남편과 페이스톡을 하면서 김치를 먹어보라고 시키는 이상한 짓까지 했다.


"시킨다고 그걸 또 먹는 남편과 소리까지 내면서 먹으라고 주문하는 부인"

혼또니 이상한 부부이지만 남편 입으로 들어가는 김치를 보면서 그나마 대신 먹은 것 처럼 위로를 삼고

밤마다 무서워서 집에서 가져 온 묵주를 손에 꼭 쥐고 자기를 19일 째

어쨌거나 시간은 가고 사람은 다 적응하면서 살게 되어 있다.


아들과 페이스톡을 하는데 아들 얼굴에 잔뜩 올라 온 여드름을 보면서

집 밥을 못먹고 배달 반찬으로 지내는 탓인가 싶어

마음이 우울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본 일본 여자애 머리카락 색깔이

한국에 있는 우리 딸 머리 색과 똑 같아서 그 일본 아이를 하염없이 쳐다보기도 했다.

( 탈색 자주 하면 머리카락 상한다고 잔소리를 퍽이나 퍼붓고 왔었는데 그 머리 색깔마저 그립다 )


막내는 운동 선수라 여기저기 조금씩 아픈게 신경쓰이고

또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아 잘먹고 잘쉬어야 하는데 엄마라고 뭐 해줄수 있는 것도 없고

주말 부부 4년하는동안 남편도 이렇게 힘들었을텐데 그때 내가 남편에게 따뜻하게 해주었나 셀프 반성도 하게 되고

이래저래 교토에서 혼자 지내면서

"인간극장"을 찍고 산다.


(지난주에는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싸놓은 똥을 보고 저게 한국가는 우리집 수원쪽 지나가는 비행기일까 그러면서 올려다봤다)


줸장-.-;;;

혼자 있으면 홀가분 하고 하루하루가 닐리리 맘보일것같았었는데

이런 배신감은 뭔지 싶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더워서 아예 칠부 소매를 입고 바지도 긴 바지 들여놓고 바람 솔솔 통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


금요일 수업까지 마치면 주말에 쉰다고 속없이 좋아하면서 집을 나섰다.

다른 날은 학교도 일찍 가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20분쯤 늦게 나갔다.

아마 나의 비극은 거기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 거의 다 왔을 때

내 머릿속에 팍하고 켜지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가스불을 꼭 끄지 않고 나온 것 같다"는 쓸데없는 걱정이 불꽃처럼 점화가 되서

그 기분 그대로는 수업을 갈 수가 없을 것같아서

다시 뒤로 돌아서 통바지 너풀거리면서 집까지 뛰어 갔다.


날은 더웠다.

마음은 더 더웠다.

평소처럼 나왔으면 다시 집에 들렸다 학교로 가도 지각하지 않을 만큼 시간 여유가 있었겠지만

오늘따라 늦게 나와서 시간도 너무 촉박했고

마음속에서 에이씨를 천번도 더 하면서 교토 산죠역에서 히가시야마 땡땡땡 번지까지

나는 전력질주를 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노랫말은 사랑에 관한 것일 때만 맞고 가스불은 아니다.


집에 왔더니 아무 이상 없고-.-;;;

아무 일 있었으면 더 큰일이었으니 다행이다 생각하고

다시 오던 길 되짚어

아줌마 달려 달려

 "하시리니 하싯떼" -달리고 달려라는 일본어 표현-

오늘 배운 표현인데 딱 오늘 아침의 나였다.


얼마나 달렸는지 다시 학교까지 갔는데도 수업 시작까지 5분이나 남아 있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그동안 일본와서 매일 실행되었던 운동앱이 기록을 경신했다고 축하 메세지를 보내줬다.


이주동안 짝꿍을 했던 "토"상과는 오늘 아침에 사요우나라


이제 겨우 "토상"이 이래저래 봐줄만해지고 어제는 갑자기 수업이 끝난 후 이런 감동 스토리도 있었는데-.-;;;


"토" - "고상 매운거 좋아하세요"

나 - "그럼 좋아하지 먹고 싶으니까 줄거 아니면 그런 말하지마"

"토" - "그래서 준비했어요. 누님 이거 우리 에츠코 엄마가 만든 말레이시아 매운 카레거든요 대따 맛있어요 드세요"

나 - "몹시 아리가또~ 잘먹을게 에츠꼬 엄마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줘"



하지만 "토상" 사실은 에츠코 엄마가 준 카레는 못먹겠더라

맵기는 매웠으나 향신료 냄새가 너무 강해서

이 아줌마 원래는 너의 성의를 봐서 먹을려고 했어

그런데 막 재채기가 나더라 그래서 못먹었어


미안해


오늘 아침에 너한테 맛있게 먹었다고 한 거 거짓말이야

나 또 신부님께 고백성사할 일 생겼다.

그래도 수업 끝나고 니가 도시락 통 주면서 집에 가서 먹으라고 아주 맵다고 그러면서 건네줄때

진짜 고마웠었다.


다음에 너한테 우리나라 김치로 복수하고 싶어^^

sticker Image

짝 바꾸는 시간



나는 어차피 짝꿍이 바뀔거면 타이완 쉐프 "소상" 이랑 짝이 됐으면 하고

마음은 둑흔둑흔 선생님의 짝꿍 호명을 기다렸다.


거의 매일 먹을거를 반 아이들과 나누어 먹고 수업 시간에 안드로메다 행 일본어를 자주 날려서 우리를 웃게 해주는

마치 우리나라 개그맨 김준현을 닮은

"소상" 너란 녀석

이 아줌마가 너를 찍었다.


"어서와 한국 아줌마 짝꿍 처음이지"


몇몇 아이들이 새로운 짝을 찾아서 자리를 이동할 때

나는 "소" 와 "고"의 호명을 기다렸다.

스티커샵 이미지

그런데 선생님이 부른 건 "소" 가 아니라 "쇼"상

이 자슥 수업 시간에 아예 엎드려서 자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결석을 자주 하는 자식인데

게다가 일본어 발음도 매우 음질이 나빠

나는 얘가 읽는 일본어는
"뭐시라고요 다시 읽어 보세요"하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고상" "쇼상" 선생님이 불렀을 때

귀여운 "요시코" 선생님이 잠깐 싫어질려고 했다.


스티커샵 이미지

근데 이 노무 새끼도 보아하니 나랑 짝이 된게

병맛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네


선생님께 묻고 싶었다.


나 - "선생님 혹시 소상을 쇼라고 잘못 발음하신건 아니신가요 제발요"

sticker Image

하지만 내 짝은 "쇼"

 이자식이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자거나 핸드폰 게임만 해서 나는 얘 책상에서 전투기가 날라다니고 총알이 파파방 나가는것까지

함께 봐야 했다.


다음번 짝을 바꿀 때는 "쇼"상과 꼭 앉을 수 있게 되기를 이번 주에 성당에 가서 기도 좀 해야겠다.

어쨌거나 "토상" 이 모옵시 그리운 금요일 수업을 마쳤다.


처음에 "토상" 을 보고 토나오게 못생겼다는 둥 여러가지 험담을 한 걸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토상"은 성실하고 에츠코를 너무 예뻐하며 자기 부인에게도 굉장히 자상한 말레이시아 아저씨였던 것이다.



sticker Image


수업을 마치고 혼자서 "오까아상 셀프 여행 길"


니죠성을 찾아기기로 구글 맵으로 지도 검색후 주먹밥 하나 먹고 차가운 카페오레 하나 손에 들고 걷고 걸어 "니죠성"

학교에서 그대로 직진만 하면 "니죠성"

학교가 산죠에 있으니 니죠는 그대로 걸어서 앞에 있는 것

인생 뭐 있어 그대로 직진이다.






성 전체가 "해자"에 둘러 쌓여 있고 교토에 있는 17가지 문화유산중 하나라고 하는데


 교토에 유독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는 이유는 

2차대전때 미군이 교토만큼은 폭격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해서라고 한다.


교토에서 외국인을 많이 보게 되는데 구경할거리가 이렇게 많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명동에서 중국인이나 일본 사람 보는 것 만큼 외국인이 특히 많다고 느꼈었는데 다 이유가 있다.


* 교토의 17가지 문화 유산*

  • 가모와케이카즈치 신사 (賀茂別雷神社)
  • 가모미오야 신사 (賀茂御祖神社)
  • 교오고코쿠지 (教王護国寺)
  • 기요미즈데라 (清水寺)
  • 엔랴쿠지 (延暦寺)
  • 다이고지 (醍醐寺)
  • 닌나지 (仁和寺)
  • 뵤도인 (平等院)
  • 우지가미 신사 (宇治上神社)
  • 고잔지 (高山寺)
  • 사이호지 (西芳寺)
  • 덴류지 (天龍寺)
  • 로쿠온지 (鹿苑寺)(킨카쿠지: 金閣寺)
  • 지쇼지 (慈照寺) (긴카쿠지: 銀閣寺)
  • 료안지 (龍安寺)
  • 니시혼간지 (西本願寺)
  • 니조 성 (二条城)
  • 17가지 문화유산 중에서 대부분 절이거나 신사인데 "니죠성"만 유일하게 "성"이다.


    너무 더운 날이었다.

    아침에는 가스불때문에 학교에서 집까지 왕복 달리기를 했고

    오후에는 니죠성까지 제법 걸어서 대문과 해자만 보고 돌아 오는 길


    그늘이 너무나 고마운 하루였다.



    집에 와서 아들이랑 페이스톡하면서 여드름 검사 끝내고

    오케스트라 엑섭시험을 무사히 끝낸 딸이 잘하든 못했든 시험이 끝나면 엄마를 찾는 버릇이 있어서

    "엄마아"하고 부르는 전화를 받고 딸이 4월 말에 오는 기쁨에 "쇼상"이 짝꿍이 되어서 잠시 우울했던 마음도 날려버리고


    이번 주도 잘 살아낸 나에게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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