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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추억은방울방울"

by 나경sam 2018.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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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대구 관사에서 미운정 고운정 들었던 주영이엄마와 이십년 지나 만나 점심을 먹었다.

전화 통화를 할 때 2009년도에 대구에서 안양으로 이사를 왔다면서도 아직도

심한 대구 사투리를 쓰고 있어서

나는 나이를 먹은 주영이 엄마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고

삼십대 중반이었던 그녀가 떠올랐었다.


나와 동갑이었던 주영이 엄마도 아이가 셋이었다.

나랑 같이 셋을 키우면서도 난리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던 우리집과는 달리

주영이 엄마는 요리도 청소도 김치도 다 자기 손으로 야무지게 하던 여자였다.


반면 우리집에 한 번 와서 정신나가게 어지럽혀져있던 방을 보고 후다닥 치우면서

청소 좀 하고 살으라고 언니처럼 잔소리를 하고 내려 가던

그 아줌마가 나는 좀 무섭기도 하고 살갑지가 않았었다.


대부분 경상도쪽 사람들은 돌직구를 날리는 경향이 있는 편이어서

뼈속까지 전라도 사람인 나는 겉으로는 대범해보이나

상대방이 툭하고 던지는 말에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보거나 상처를 받는 편이어서

주영이 엄마의 변화구 없이 던지는 스트라이크는

낯선 대구 생활에 가벼운 고달픔이 되기도 했다.


오늘 만났다.

만니기로 약속한 식당 2층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입문을 보다가

주영이 엄마가 들어 왔을 때 웃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십년전보다 좀 살이 쪘지만 그다지 변한 정도는 아니었고

우리는 그냥 둘이 안아보았다.



그녀도 나도 1999년으로 강제소환되어

3층건물 달랑 두동이 있었던 대구 관사에서의 모든 사람들을 다 소환시켜서

억수로 흉도 보고 그동안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느라

입술이 다 아팠다.


오늘따라 나는 일본의 부동산회사로 계약금을 보내러 은행에 갈 일이 있어서

함께 은행에도 가고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것처럼

함께 다녔다.


대구 살 때 나는 운전을 했었고 그녀는 운전을 하지 못했었는데 식당에서 은행으로 이동을 할 때

그녀는 본인 차 뒤에 분명히 "초보운전" 이라고 씌여 있었건만 운전을 조폭운전처럼 거침없이 하고

내 앞에서 앞서 갔다.


주영이 엄마 운전이 깡패운전이구만 초보운전을 왜 붙이고 다니냐고 했더니

직장 다니는 딸이 한번씩 타서 못뗀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식당에서 한시간

은행에서 한시간

다시 커피숍에서 라떼를 마시면서 한시간

 세시간 정도 쉬지 않고 떠들고도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성당갈 시간있으마 청소쫌 하고사소"

그말한거 기억나냐고 했더니 그때 자기가 미쳤는갑다 하면서 막 웃길래 둘이 또 웃고

주영이 엄마는 친정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김치도 자기가 담궈먹는데

언젠가 내가 우리 엄마가 막 보내 온 김치 택배 상자를 뜯어서 자기한테 나눠주었던 적이 있었다면서

그때 그 김치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이사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자기 집에 전화를 해서

큰 통 갖고 올라 오시라고 했었다는 거다.

그냥 집에서 접시 하나 들고 올라갔더니 내가 김치를 꺼내 주길래

사실은 자기는 남의 김치 잘 먹지도 않는 편이라 그저 대수롭지 않게 들고 내려왔는데

저녁에 먹어보고 깜짝 놀랄만큼 맛이 있어서

큰통들고 올라갈걸 하고 후회했었다고 오늘 말해주었다.


그녀는 세세하게 기억하는 그 김치 이야기가 나는 기억이 안났고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들은 그녀가 기억을 못해서

"사람들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고 사나보다" 결론을 내리고


다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십년 넘어서 만났어도 서로 별로 변한게 없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사실은 살아온 세월만큼 그녀는 앞머리가 좀 빠져있었고

나는 염색도 못한 체로 나가서 군인들 줄 맞춰서 잘 서있는것처럼 흰머리가

일센티는 넘게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나와 있었다.


주영이 엄마도

승범이 엄마도

우리는 둘 다 쫌 늙어 있었지만


참 바쁘고도 유쾌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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