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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대구관사마당"

by 나경sam 2018.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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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관사앞마당"





대구관사 1998.01- 2000.01

내 인생의 프로필 중에서 대구 관사도 제주도 살이만큼 이야기거리들이 참 많이 숨어 있다.

막내를 대구에서 6월에 낳고 둘째는 관사 앞마당에서 관사의 아줌마들이 함께 키웠다.

저 때가 17개월 정도였을것이다.

세 아이 육아에 도와줄 친정도 시댁도 멀어서 독박육아에 거의 제정신이 아니게 살았던 때가 대구살때였었다.


둘째는 17개월밖에 안된 때였는데도 집에서는 엄마가 놀아주지를 못하니까 늘 마당으로 나가서 혼자서 실컷 붕붕이를

타다가 자기 붕붕이도 잘 챙기고 가끔 마음에 드는 남의 장난감도 챙기고 들고 내려간 자기 물건은 더 잘챙겨서

3층 우리집으로 악착같이 기어서라도 올라왔었다.


지금 생각하면 17개월짜리 아기가 혼자 나가서 놀았다는 이야기가

거짓말같고 어떻게 혼자 애를 내보냈느냐고 하겠지만

마당에 내려가면 관사의 직원 부인들이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평상이나 돗자리를 펴놓고 늘 아기들을 봐줬었다.

전주에서 처음 이사가서 새침하게 평상앞을 지나다니면서 뒤에서 아줌마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도

저 평상에 앉는 순간 나는 저기서 못빠져 나올것 같아 새침을 있는데로 떨고 다녔지만

이사 올 무렵에는 나도 그 평상의 주요 멤버까지는 아니었어도 부침개 한쪽은 거기서 얻어 먹었던

비주류 멤버까지로는 등극을 했었다.


평상에 앉아 있던 아줌마들은 부침개도 부쳐먹고 집에 있는 간식들을 들고 나와

내 새끼 남의 새끼 할 것없이 챙겨주고 거둬주고 그랬다.


그러다가 저 사진도 찍힌것 같다.

자기 오빠가 없어도 엄마가 없어도 환하게 웃고 찍은 못난이 저 사진을

대구에서 함께 살았던 직원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나한테는 없는 저 사진이 거의 이십년만에 배달이 된거다.

위로 큰 애는 저때 유치원을 다녔고 둘째는 마당 유치원으로 혼자 나갔다가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남의 집에 가서 밥도 우르르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둘째의 가장 자유롭던 시절이다.


저 사진의 남자 애들중에 한 명 엄마가 어제 전화를 했다.

근 이십년만에 만나기로 했다.

저 사진에 있는 아이가 군대를 갔단다.


금요일에 잠깐 보기로 했는데

전화통화하는데 옛날 일이 마구마구 떠올라 앞집 뒷집 애들 이름 맞추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이름을 떠올리고

각 집의 아이들 나이부터 다시 족보정리 하고 아주 바빴다.


일요일날도 예외없이 관사 마당 입구에서 놀다가

성당에 가는 나한테

성당 갈 시간에 집쪼까 치우소 라고 돌직구를 날려서 내가 미워했던거 그 엄마는 모를텐데

그 얘기를 할까 말까


2009년도에 안양으로 이사를 왔다면서도 아직까지 높낮이가 억수로 심한 대구 사투리를 쓰면서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경상도 분이시냐고 물어보면 심한 대구 사투리로 "어떻게 알아요"를 한 글자씩 높낮이가 다르게

물어본다고 해서 내가 막 웃었다.

어는 땅아래 떻 발음은 하늘로 올리면서 자기가 대구 사람인거 사람들이 아는게 신기하다고 말한다.


돌직구를 팍팍 날려도 인정이 차고 넘쳐

우리집에 와서 발디딜 틈이 없던 집을 순식간에 치워주고 내려가면서

"청소쫌하고 사이소" 한마디 꼭 했던

돌직구 여사


돌고 돌아 이렇게 그리운 사람은 한번은

만나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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