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동생네랑 장가계를 다녀 온 후로 엄마가 군산에 내려가시지 않고 수원에 계신다.
바로 아래 여동생이랑 오분거리에 살기 때문에 엄마는 수원에 오시면
밤에는 그 집에서 주무시고 낮에는 우리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신다.
아버지 살아계셨을 때는 집을 오래 비우고 딸네 집에 있지도 않으셨고
설령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있어서 자식집에 며칠 있을라쳐도
아버지 전화가 스토커 수준으로 와서 엄마는 나중에는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거나
예정된 날짜보다도 더 일찍 내려가셨다.
이건 두 분의 삶의 스똬일이 서로 달라 충돌을 일으키는 거였지
두 분이 서로 애틋하거나 특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서로 스똬일이 달라 생기는 충돌은
우선 군산집에서 출발할때부터 아버지는 터미널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주겠다
엄마는 아니다 택시타면 된다 그냥 가겠다부터 시작되고
중간 쯤 버스타고 올 때 부터 시작되는 아버지의 전화는
엄마를 아주 힘들게 했다.
"지금 뭐가 보이느냐 어느 휴게소를 지났느냐"
직접 운전을 하셨던 아버지는 휴게소 이름만 대면 어디 쯤 지나가고 있는지를 금방 아시기 때문에
엄마한테 물어보는거였지만
엄마는 그냥 논밖에 안보인다고 말하면 아버지는 화를 낸다고
엄마는 아주 스트레스라고 하셨었다.
그렇게 이틀이건 삼일이건 자식집에 와 있는 동안
아침 점심 저녁으로 오는 전화는 엄마에게는 피하고 싶은 빚쟁이 전화같은거였고
아버지는 딱히 용건도 없는 전화를 시시때때 하셨다.
결론은 그거다.
아버지는 알고 싶은게 많고 말씀도 많으셨고 유머도 많으셨고
엄마는 딱 할 말 이외에는 주저리주저리 말씀을 하시는 편이 아니셨기 때문에
두 분은 늘 사소한 일에 싸우셨고
서로를 못마땅해하셨다.
나는 큰 딸이라서 잘 알 수밖에 없었고
엄마나 아버지 두 분 모두 나한테는 어느정도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두 분 사이의 건널수 없는 성격적인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콰이강의 다리" 같은거다.
겨울학기가 되면서 일을 줄인 나는 낮 시간 대부분을 엄마랑 붙어 지낸다.
엄마의 전화는 이제 막내 이모 전화가 대부분 차지하고
어디선가 딱히 올 데도 없다.
전에 아버지 전화 번호가 뜨면 보고 한숨부터 쉬고 받으셨는데
그 모습 안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콰이강의 다리는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
중환자실에서 엄마의 손을 아버지가 잡아 주는 걸로 해결이 되었으니
그건 엄마에게는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서
나는 이미 여러번 들었는데
아버지 손을 엄마가 잡았더니 아버지가 의식이 없으셨을텐데도
엄마 손을 밀어내고 아버지가 다시 엄마 손을 잡더라는
이건 좀 디테일의 문젠데
엄마의 결론은 아버지가 엄마의 손등을 아버지 손으로 잡았을때
그동안 미안함과 고마움과 모든 감정을 그렇게 표시했을 거라는 거였다.
엄마의 해석은 견고하여 엄마는 아버지와 그걸로 모든 화해를 하셨다.
엄마가 계시는 동안은 밥도 안하고 국도 안끓이고 식생활에 관련된 일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매일 화서시장에 나가서 매일 매일 다른 메뉴로 두 집 식구들 거두느라 바쁘시다.
말씀으로는 얼른 군산집에 가고 싶다고 그러시지만
나한테만 그러셨다.
가면 혼자 있어야 되고 가끔 우두커니 있을 때 싫더라고 하셨다.
그게 엄마의 본심인데
그나마 그걸 큰 딸이라고 내가 좀 아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헛것 먹지는 않았구나
스스로에게 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뭐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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