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편해졌다. 사람과의 관계도, 내 마음도, 내려놓고 떠나오고 TWO GO를 했더니 올 해가 편하다.
성가대 총무도 그만, 합창단 회계도 그만. 나 아니면 안될 일 절대 읎다.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맡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고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귀찮기 때문에 하던 사람이 계속 해 주기를 바랄 뿐, 내가 잘해서 붙잡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가대를 탈단하고 나니, 미사의 자유가 생겼다. 골라서 가는 미사. 9시 미사를 가도 되고, 미사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성가대에서 드리는 미사도 좋았지만 세례받는 그 시절로 돌아가서 신자석에서 드리는 미사도 좋음을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는 걸리고 둘은 유모차에 타던 시절, 세 놈 나이 합쳐서 10도 안되던 시절.
나의 유일한 해방일지는 주일 미사였고 남편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에 6자 붙은 놈들 같지 않게 나에게 일요일의 자유를 주었으니, 일요일에 나 혼자 미사보고 와서 집에서 쉬고 있으면 애 셋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서 혼자서 한 나절 이상을 놀아주던 사람이었으니 일요일은 쉼이 가능했다. 데리고 나갔기 때문에 혼자 있는 완전한 자유가 있었고 애들은 아빠가 있으면 나를 찾지 않았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게 남편이고 나는 그래서 전주 아중리 부영 아파트 놀이터를 아직도 인생 놀이터로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은 아중리 부영 아파트에 살던 애기들의 아빠들에게는 빌런이었을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데리고 나간 아이들의 꼴은 사실 이랬다.
셋째 머리는 산발에 신발은 벗겨지고, 그나마 짝짝이로 신고 있다. 승범이는 둘째를 보고 웃고 있는 거 같고.
네살에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있던 둘째도 운동신경도 좋아서였지만 남편이 일요일날 데리고 놀면서 가르쳐줘서 다른집 아이들보다 빨리 롤러브레이드나 자전거를 배울수 있었다.
언니 신발 손에 끼고, "나는 언제 저거 타 보나" 눈독 들이고 있는 셋째의 애잔한 눈빛이 귀엽다.
나에게 평화를 안겨준 일요일 우리 아이들과 남편덕분에 그때 나는 홀가분하게 성당에 나가 미사드리고 휴가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봄 꽃보다 더 예쁜 아이들. 저 때는 닭발에 술 좋아하는 애들도 클지 상상도 못 했지만-.-
삼십년 후딱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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