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어쨌든 덕수궁은 꼭 다녀오게 된다. 아무리 많은 곳으로 이사를 다녔어도 서울에서는 못 살아보고
아마 이번 생은 끝나지 싶다.
그러니 부지런히 서울로 놀러 다녀야 된다, 우리 부부의 서울 나들이에는 나의 그런 주장도 바닥에 깔려 있다.
어렸을 때, 서울에 친척집이 있는 애들이 참 부러웠었는데 우리는 서울에는 남보다 못 한 고모 한 분만 계셨고 서울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촌스러운 집안이었다.
"서울고모"였던 큰 고모는 전설의 큰 고모.. 얼굴보는 횟수보다 호칭으로 더 많이 만났던 분.
엄마는 내가 떡 애기였을때 서울 고모네 집에 나를 데리고 가서 하루를 자고 내려왔다했으니 걷기 전부터 서울다녀온 여자가 바로 나지만, 내 발로 걷고 나서 서울에 간 것은 대학교 4학년 때가 처음!! 아 증말 애증의 서울이다.
대학은 서울로 꼭 가야지. 고 3때 그렇게 작정을 하고 공부했건만 지방대 출신이 되었고 인문대 우편함에 서울에서 친구들이 보내오는 학보들은 꼴도 보기 싫었으니 지방살던 컴플렉스가 있었다.
끽해야 외국어대 정도의 학보였는데도 왜 그게 그렇게 보기 싫었을까. 서울대 학보라면 모를까.
외국어대 정도에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하고 지나다녔다니!! 그래서 스무살이었나보다.
4학년 때, 일본 가고시마에 홈스테이를 15일간 하는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가게 되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서류를 보내고 떼고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여서 서울 중구에 있던 서울항공에 서류를 주러 혼자 왔었다.
지도만 보고 기특하게 찾아 온 서울 시청 앞 서울항공 여행사는 건물은 보이는데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전주에는 어디에나 쫙쫙 그어져있던 건널목이 없던 몹쓸 동네가 서울 시청 앞 길이었고 거길 가고 싶으면 지하도라는 신문물을 통해서 건너가야 했지만 지상에서 건너는 방법만 알고 있던 나는 길을 잃은 아이가 되었고 용기를 내어 의경에게 물었다.
"쩌어기 보이는 서울항공 갈려면 어떻게 건너요"
"지하도로 가셔야됩니다"
1990년 전주에서 길을 건너는 방법은 신호등 뿐이었는데, 지하에 길이 있다니 땅굴이 무서운 거라고 가르쳐놓고 이것들은 땅굴을 파서 길을 냈다니, 물어봐놓고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건 마치 제가 오늘 서울에 처음 와 봤어요. 그말이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가 챙피한 일이냐만. 그때는 스물 한 살이었으니, 그래서 그랬다.
길을 알려줬던 의경도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는 나이를 먹고 지금은 환갑도 넘었겠다.
우리집 도련님도 환갑을 맞이해서 자기 대학교 동기들이랑 환갑기념 여행을 간다. 경기도 다낭시로 여행을 가는데 옷보다 소주가 더 많이 들어간 여행가방, 소주부터 간식까지 꾸러미를 준비해서 넣어주는 퍼펙트한 회장 사모님. 바로 나!!
지퍼백마다 이름을 써서 구호물자를 8개 만들어서 여행 준비도와주고.. 며칠동안 섭섭의 얼굴을 못보게 돼서 아주 섭섭하다는 100% 뻥 멘트도 날려주면서 임시 공휴일을 보냈고...
지난 주말에는 애증의 서울, 덕수궁에 가서 전광수 커피 가서 둘이 커피 마시고 덕수궁 앞에서 작년에 찍었던 사진 장소 찾아가서 비슷한 폼으로 다시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맞게 되는 가을을 시작했다.
작년에도 사진을 찍었던 덕수궁 미쿡 대사관 윗 길 돌담길에서 작년과 같은 사진을 기념으로 찍으면서 함께 맞이하는 또 하나의 가을을 기억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NHK밤 드라마 신작 "단지의 두 사람" 내가 좋아하는 배우 소바야시 사토미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쉼.
2003년 수박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두 사람이 친구로 나왔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도 친구다.
달라진게 있다면 이 배우들도 나이를 먹어 얼굴에 나이가 보이는 자연스러움이 있다는 거지
카모메 식당에서 나오던 코바야시 사토미도 카모메 식당 주인이었던 얼굴은 사라졌지만 연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스럽고 얼굴은 손대지 않은듯 더욱 자연스럽다.
해마다 가을을 맞이하면 덕수궁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도 저 사진을 찍어야 할 까보다.
나이먹는 기념으로. 가을을 맞는 기념으로.
우리는 얼마나 함께 가을을 보낼 수 있을까. 이젠 그런 마음이 드는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으니 스물 하나는 절대로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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