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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학자금 대출 0원

by 나경sam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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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24일 선을 보고 1994년 4월 3일에 결혼했다. 석 달 만나고 결혼했다.

미쳤었나보다.

 

그리고 애를 셋 낳았다.

완전히 미쳤었나보다.

첫째 낳고 3년 지나 둘째와 셋째는 연년생으로 낳았다. 손에 똥독이 올라 왔었다.

하지만 애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하나 더 낳을려고 했었다.

그러자 젊었던 남편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그럼 집 나간다" 


남편은 사회대생, 나는 인문대 생이었는데 둘은 음대생, 하나는 체대 언니로 키워냈다.

큰 애 키울 때는 분유 좋은 걸 먹여야 애가 똑똑하게 크는 줄 알고 1995년도 고급분유 임페리얼로 키웠지만

둘째 셋째는 연년생이라 하나에 하나 붙어 있는 요구르트 아니면 손이 가지 않았었다.


돈으로 싸서 키운 것은 아니지만 줄 수 있을 만큼, 그 이상의 사랑은 주고 키웠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똥도 이쁘고 침도 이쁘고 뭐든지 이쁜 게 자기 자식이지만 사랑으로만

키울 수 없어서 음대생 자식 둘 키우는게 한숨이 푹푹 나올 만큼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 지나가는게 인생이다.

" 이 또한 지나가리라" 희망고문같은 말을 희망으로 삼으며 살았던 때도 있었다.

운동하는 셋째는 4년 장학생으로 대학교에 스카웃 돼서 학비가 들지 않았지만 큰 애 사립대, 둘째 국립대

학자금 대출이 부담스러울 만큼 남아 있어서 아이들이 돈 벌어서 조금씩 스스로 갚으면 우리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갚아주고, 이제 얼마 남았다. 열심히 노력하자. 빚 갚는 재미도 모아가는 재미만큼 있다는 걸 가르쳐줘가면서

대출금 줄어드는 걸 서로 격려해가면서 살았다.

그러다보니, 대출금 0원 되는 날이 오긴 오더라. 이 말이다.

세 명 옆에 잔액 0이 세 개가 생겼다. 남편이 학자금 대출을 다 깨버린 날 울 뻔 했다.

애들도 고생했다. 렛슨비 받아서, 연주비 받아서 그걸 목돈으로 모아서 갚아나갔고, 나는 나대로 모아서 함께 갚아 나갔으니, 누가 더 고생했고 힘들었다 할 수 없다. 우리 모두 함께 애쓴거다.

 

당신 참 애썼다. 남편이 건네 준 말이 고마웠고, 나도 같은 말을 해줬다.

일요일 저녁, 옥상 텃밭에서 가지와 오이 고추를 바로 따서 튀기고 새우를 튀겨서 텐동을 해서 먹었다.

텐동이 너무 맛있어서 박수 한 번,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게 기특해서 또, 박수 한 번

우리 넷은 박수를 치고 저녁을 먹었다.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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