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생협을 정리하고 퇴사를 했을 즈음이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던 내 인생 힘들었던 최악 3월중 하나였을것이다.
승범이를 일곱살에 입학시켰던 이십년전의 3월도 힘들었었다.
가방이 땅에 닿을 듯 끌리는 작은 키의 승범이가 신경이 쓰여서 아침마다 함께 학교에 갔었다.
네살 세살 연년생 여동생들은 쌍둥이 유모차에 태우고 밀면서 (둘을 함께 밀었으니 합이 아마 30키로가 넘었을듯하다)
승범이는 유모차 옆에 세우고 함께 걷던 2001년 전주 아중리
네살짜리 우리 은진이는 누가 우리 오빠 건드리기만 해봐 다 디졌어-.- 의 사나운 얼굴을 하고 유모차에 타고 있었고
육아에 지친 내 얼굴도 피곤에 쩔은 그래도 그 때는 아직 내 인생 마흔이 안됐던, 찬란한 삼십대였었다.
3월 한달동안 셋이서 함께 학교를 갔다 왔다 하는 강행군을 하다가 승범이랑 나는 입술 옆에 커다란
물집을 달고 3월을 마감했다.
승범이 입술 주변에는 그때 생겼던 물집이 아직도 흉처럼 얇게 남아있다.
네살짜리가 아침마다 유모차에 실려서 갔던 오빠 학교 가는 길을 외웠다가
어느날 집에서 놀다가 조용히 가출을 감행했었다.
네살짜리가 어떻게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갔는지 하여간 애가 없어졌다고 내가 울면서 애를 찾으러 다녔는데
2층에 살던 승기엄마가 아중초등학교 가는 길에서 은진이를 발견했다며, 은진이를 체포해서 데리고 왔었다.
유모차 안에서 눈썰미있게 길을 봐뒀다가 자기 발로 집을 탈출했던 둘째였다.
승범이는 일곱살답게 학교 다니는 게 힘들긴 했었다.
수학 익힘 숙제를 해갔는데 같은반의 백 뭐시기라는 아이가 지우개로 박박 지웠다고 울면서 나한테 일렀었다.
화가 머리 뚜껑을 열어 김을 쒹쒹 뿜으면서 그 애가 있다는 학교 앞 문구점으로 가서
남의 집 귀한 아들을 문구점 앞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세일러문처럼 응징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아들 말만 믿고 남의 집 아들 말은 들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피가 끓던 삼십대 엄마였다.
치맛바람까지는 아니었지만 승범이 담임이 부탁했던 교통안전 교육을 받고 아이들 앞에서 수업도 해주었고
받아쓰기가 있는 날이면 100점 아니면 목숨이라도 내놓을듯이 미친듯이 공부를 시켰던 엄마였었다.
그래서 3월이 힘들었었다.
승범이가 오른쪽 입술 주변에 물집이 생기면 나도 같은 쪽에 커다란 물집이 생겨났고
왼쪽으로 옮겨가면 나도 같은 쪽에 물집이 부풀어 올랐다.
집에는 네살 세살 애기가 두명에 초등학생이 한 명
몸이 부서질만도 했다.
그러고도 간식은 죄다 만들어 멕이겠다고 밤마다 오븐에 쿠키를 구웠고
옷도 직접 만들어 입히겠다고 잠도 안자고 미싱을 돌리기도 했었다.
웬만하면 이고지고 살지 않을려고 버리고 또 버려가면서 살자 주의지만
미싱돌려가며 애들 옷 만들어 입힐만큼 육아에 진심이었던 것만은
애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몇 벌은 기념으로 가지고 있다.
옷본이 나와있는 양재 책을 사다가 자로 재지도 않고 그냥 대충 쓱쓱 그리고 오려서 만들어 입혔어도
내 새끼들이라 그런가 뭘 입혀놔도 이뻤었다.
향남까지 오고 가고 왕복 네시간
학교에서 네시간 일을 하겠다고 길 위에서 네 시간을 쏟아붓고 일본어를 듣느라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아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
그동안 마음이 힘든 일이 있었다.
훌훌까지는 절대 털 수 없지만
앞으로 나갈 길을 위해서 차근차근 정리해나갈까 한다.
작년 이 맘때도 힘들었었다.
하지만 생협 그만두고 제주도 한달살기도 다녀왔고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지나가니
그걸 믿고 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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