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월요일"
남편의 생일이자 월요일
토요일 심야에 끓여놓은 갈비탕으로 미역국을 대신하여 열심히 먹은 결과
월요일 아침까지 솥바닥까지 먹을 기세로 덤빈 식구들 덕분에 들통가득 갈비탕은 흔적이 없다.
다섯 식구 많은줄 알고 살았지만 어느새 함께 모여 밥먹을 일도 드물어진 식구들
저녁밥하면 생각나는 풍경은 어렸을 때 둥근 소반에서 엄마가 들기름 발라 구운 김을
우리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면 아껴가면서 먹었던 생각이 난다.
딸들만 고만고만하게 넷이 있었고 막내로 아들하나가 있었어도 한번도
딸 아들 편갈라놓고 이야기 하신적이 없으셨던 부모님덕분에
차별이 뭔지도 모르고 컸다.
맛있는 반찬이든 맛없는 반찬이든 엄마의 밥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우리는 늘 둥근 소반에서 누구하나 처짐없이 평등한 아이들이었다.
그 소반에서 밥을 먹다 종종 싸움이 나기도 했는데 주로 나와 내 바로 밑의 여동생이 싸웠던것같다.
말싸움을 하다가 화가나서 내가 밥먹던 숟가락으로 여동생의 머리를 시원하게
숟가락과 머리가 딱 맞아 떨어졌을 때의 느낌이 거짓말처럼 아직도 기억이 난다.
별 쓸데 없는 걸 잘 기억하는 나로서는 대학교때 타과랑 족구 시합을 하면서
왼발잡이인 내가 시원하게 안타를 날렸을 때 나의 왼발과 공이 들어 맞던 순간의 느낌
그것도 발이 기억을 한다.
어쨌거나 그때 못되게 군 덕분에 나는 아직도 여동생네 아들 늦잠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느라
일년에 서너 번 쯤은 아침 시간에 허겁지겁 그 집 아파트로 가서 우리 남편보다 더 큰 고등학생
조카가 몸의 가운데만 간신히 걸친 속옷 한장에 의지해 늦잠을 자는 걸
등짝을 때려가면서 흔들어 깨우는 벌을 받고 있다.
"언니 집에 좀 가봐주라 안일어나는 것 같애" 하면 꼼짝없이 그 집으로 뛰는 것이다.
어렸을 때 밥상에서 숟가락으로 머리를 가격한 벌을 이렇게 대신 갚고 있는 것이다.
월요일 생일에 다섯이 모여 케잌 먹을 일은 없을 것 같아
일요일 저녁 로또처럼 들어맞은 다섯명이 한자리에 모여 미리 축하를 해주고
이렇게 저 사람의 오십 몇 번 째 생일은 지나간다.
시어머니는 해마다 빼놓지 않으시고 남편의 생일에 전화를 하신다.
"미역국은 끓여 먹었느냐고" 아니 그 말씀의 속 뜻은
맡겨놓은 내 자식 생일인데 오늘 니가 내 대신에 미역국은 끓여줬느냐가 아마 정확한 해석일듯싶다.
그럼 시어머니 말씀에 고분고분 네 하면 좋으련만 나도 그런 며느리는 못되서
어머님의 남편 생일 미역국 전화는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작년 생일에는 같은 전화를 받고 "어머니 우리집에는 수험생있어서 미역국 안먹어요" 하고 말해드렸지만
농담을 가장한 며느리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말을 어머니는 이해하셨는지 못하셨는지
아마 이번 생일에도 또 전화를 하실지 모르겠다.
남편이 어머니의 그런 전화를 두고
"시어머니 갑질"이라고 표현해서 내가 웃고 말았다.
아마 남편도 어머니의 그런 전화가 내 심기 불편하게 할 줄 알고 아마 미리 방어선을 구축하는듯하지만
늘 그렇듯이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면 어머니가 덜 노엽고 남편은 귀엽고 그렇다.
생일을 맞아 낡은 구두와 핸드폰을 바꾸었다.
구두 티켓이 몇 달 전부터 화장대 위에 있었지만 수험생 둘인 집에서 일요일 오후 남편 구두 바꾸러
안양까지 나서기가 아주 큰 맘을 먹어야 되는 일
종이 쓰레기인지 구두 티켓인지 모를 만큼 늘 같은 자리에 있던 구두 티켓을
실물 구두로 바꿔 오는데만 육개월쯤 걸렸나보다.
혼자서는 자기 구두 한짝을 못사는 오십 넘은 어른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참 피곤하다.
주말에 들이 친 추위로 잠깐 방심하는 사이
화단에 준 자주 달개비가 냉해를 입어 시들시들하고
옥상에 있었던 벤자민도 잎에 살짝 냉기가 보여 얼른 집안으로 옮겨 두었다.
좁은 거실에서 큰나무들과 서너달 동거를 해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보일러만으로는 집안의 온기가 금방 차오르지 않아
요런 스피커 모양의 온풍기도 장만하고
일요일 오후 성당에 다녀 온 후부터 저녁까지 남편이랑 사이좋은 부부를 가장하여 하루종일 붙어서
많은 일들을 했다.
입시생이 빠져 나가고 난 자리
이젠 늘 입시생같은 저 어른이가 남아 영원한 나의 수험생이 될 터이지만
저사람이 없으면 옥상에서 저 무거운 화분을 나르는 일도
매월 20일에 월급을 가져다 줄 일도 없겠지 싶은게
오늘은 어머니 전화를 좀 상냥하게 받아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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