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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옥캉스

by 나경sam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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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옥캉스

호텔에서 호캉스는 생일 선물로 받기로 했으니 아쉬운 대로 옥캉스로 토요일 저녁을 뿌셔버려

 

 

칠보산에서 내려오면서 언제나 눈팅만 했던 정직한 제빵소에 들러서 단호박 쉬폰 사고

스벅 금곡에 사이렌 오더로 주문해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찾아서

막걸리로 풀어야 하는 피곤을 아메리칸 스똬일로 옥상에서 뿌셨다.

 

고등동 재개발로 들어선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의 앞 풍경이 새로 바뀐 동네 풍경이지만

이젠 원래부터 저 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적응이 빠른 인간이 또 내가 아니겠는가

 

아파트는 층간 소음으로 죽일놈 살릴놈 하지만

주택가는 옆간소음으로 험악한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우리집 옥상에서 떨어진 흙덩이에 뒷 집 배수구가 막혔다고

빗속을 뚫고 우리집으로 따지러 온 6년동안 살면서 한 번도 못봤던 뒷집 아줌마와 우리집 옥상에서

현장검증을 하기도 하는게 주택에 사는 거라는 걸 한 해에 한 개 씩 새로운 매뉴얼로 알아가는게

나이든 주택에 사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옥상이 있어서 새로운 체험 삶의 현장같은 주택살이를 이길 수 있다.

 

옆 집 빌라에서 아침마다 길게 울리는 알람은 도대체 끄는 사람이 왜 없는지

전에 우리집 살던 할머니는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었었는지

지금 우리집에 사는 할머니는 왜 혼자 사시는지

갯마을 차차차 못지 않은 3대 미스테리가 있는 우리 동네지만, 이젠 이런거 저런거 다 끌어안고 살만큼의

내공이 쬐끔은 생긴것 같다.

 

마당이 있으면, 옥상이 있으면 사는 곳이 좁아도 별로 좁은지 모르고 살기도 한다.

 

소길리 관사에 살 때 역대급으로 작았던 그 집에서도 작은지 모르고 살았던 것은

애들이 맨날 밖에 붙어서 놀았기 때문이다.

지치지도 않고 나가서 놀았던 여덟살, 다섯살, 네살의 삼남매는 지네도 안무섭고, 도마뱀도 안무서워했었다.

관사의 습한 마당을 들추면 어디서고 나타나는 콩벌레를 굴려가면서 놀았던 무서운 우리집 애들은

집에서 노는 법이 없었다.

 

 

집안은 작았으나, 집 밖은 온통 넓었으니 아이들은 제주도 관사가 자기들이 살았던 관사 중에서 가장 작았었다는 걸

모른다.

 

주말이면 세피아 승용차 트렁크에 신라면과 김밥을 싸들고 미친 사람들처럼 놀러 다녔었다.

걸핏하면 애월 방파제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고, 해녀가 잡은 문어 큰거 한마리를  칠천원에 사서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서 문어맛을 알았다.

 

저가항공도 없었을 때라서 육지 한 번 나가는데 티켓값이 무시무시할 때라

명절이면 시댁에 가지 않았던 것도 나혼자 입꼬리가 올라가는 즐거운 기억이었고

그래서 라동 102호를 잊을 수가 없다.

 

마당이 있다는 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동과 라동 중간에 쳐있던 빨랫줄에 이틀에 한 번 꼴로 이불을 널다가

어느날 옆 동의 수빈이 엄마가 나한테 조용히 물었었다.

 

"이불을 왜 그렇게 자주 빠세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아직 우리 셋째가 오줌을 못가려서 이불을 늘 빨수는 없어서 그냥 너는 거라고"

 

우리 수민이 시집갈때까지 비밀을 지키겠노라고 빨랫줄 아래에서 맹세를 했던 수빈이 엄마가 보고 싶네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이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한 번은 제주도 관사 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지금도 소중한 나의 한 때

노을이 살짝 지는 옥상에서 따뜻한 커피와 달지 않은 단호박 쉬폰 한 조각과 남편과 낄낄대는 옥상담화가

지금보다 더 나이들었을 때, 돌아가고 싶은 한 때일것이다.

 

인생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그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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