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언니가 나의 아저씨 보라고 했을 때, 말을 안듣고 한참 지나 이번 주에 봤다.
16화까지 몰아보기로 보고 나서
가슴에서 한 번, 머리에서 한 번
심벌즈가 울렸다.
드라마 보다가 드라마 작가 찾아보면 그건 끝난거다.
정희네서 후계 후계 잔 비우게 하면서 후계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이 술 마실 때
나도 거기서 함께 술 마시고 싶었고
정희가 겸덕이 있는 절에 불을 지른다고 하면 라이타를 건네주고 싶었다.
뭐 이런 드라마가 다 있냐
개구멍으로 도망치다 패딩이 찢어져서 오리털을 풀풀 날리며 걸어갈 때 나오던 음악 "그 사나이"
드라마 장면과 음악이 이렇게 맞아 떨어지기 있기 없기
주인공은 이선균이지만, 나는 큰 형 상훈과 입만 열면 욕인 막내 기훈이를 다시 봤다.
연기를 저렇게 잘하는 사람들이었구나
아저씨, 아줌마가 되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는 줄 알았었다.
살아보니, 이십대로 삼십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안정감같은게 있는 나이가 지금이라
삼십대 사십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부럽지도 않다.
지금이 좋다.
금요일, 오후 퇴근하는 전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뚱뚱한 젊은 남자애가 이어폰 끼고 게임하는 걸 봤다.
옆에는 배가 제법 부른 젊은 임산부가 서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옆에 서 있었다.
핸드폰에 대가리 박고 사는 세상이라,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어도 바로 옆에 진짜 임산부가 서 있는것도
못보기는 했겠지만, 나이 드신 분도 아니고 젊은게 차라리 서서 가지
한 정거장 참았다가, 내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젊은 애를 툭툭 쳤다.
이어폰 끼고 사는 세상
내가 팔을 툭툭 치는 것도 늦게 반응하면서 왜 그러느냐고 그러길래
"야 이 쌍놈의 시키야, 눈깔이 있으면 봐라, 옆에 임산부가 서 있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옆에, 임산부가 계시잖아요. 양보해주세요" 라고 웃었지만 최대한 눈에 힘주고 말했다.
흰머리인게, 이럴 때는 약발이 빡 받는다.
애가 쫄아갖고 벌떡 일어나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못봤어요"
봤든 못봤든, 앉지를 말았어야지, 비워둬야 진짜 임산부가 앉지 개놈의 새끼야 라고는 하지 않았다.
일어섰으면 됐지, 그걸로 됐다.
됐다고 하는 임산부를 자리에 앉히며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잖아요" 한마디 했더니
눈은 나를 보고 웃었다.
역에서 내릴 때도 감사합니다 앳되게 인사하고 내리던 사람
나도 잠깐 그 분에게 "나의 아줌마"가 된 기분
길 가다가 한 번 쯤 형제 청소방이라는 다마스 승합차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한 아줌마로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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