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렇게 편한 추석은 교토 이후 처음이다.
토요일 하루 날 잡아서 친정 시댁 당일 투어를 마치고 나머지 연휴는 우리집에서 쉬기로 했다.
애가 셋이어도
대구에 살았어도
88고속도로에서 세피아 승용차에 분유도 못뗀 아기 둘 밀어넣고 남편과 교대로 운전해가며 시댁에
다닐 때
세상의 모든 명절을 폭파시켜버리고 싶었다.
하루만 있으라고 해도 한숨 나올 일인데, 명절 앞으로 연휴가 길면 시댁에 있어야 되는 날짜도
덩달아 길어져, 한 해 달력을 받으면 추석과 설날 앞으로 며칠이 쉬는 날인지부터 보던 때도 있었다.
시부모님 말씀이라면, 싫다고, 아니라고 할줄을 몰랐던 답답이 남편이랑 살 때라서
가슴속에는 언제쯤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한 숨 같은게 있었다.
추석 연휴 지나고나면 이주후에 시아버지 생신이 있었다.
대구에 살 때 아이들이 차 안에서 물병을 뒤집고 난리 쌩쇼를 한 번 하고 나서
추석 지나 이주후에 있던 시아버지 생신에는 남편만 내려갔었다.
은진이의 활약이 컸었다.
분유병쑈, 물병쑈의 덕분에 엄마에게 휴가를 준 고마운 딸이다.
명절에는 빠질 일이 없었을 것 같아도 살아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차츰 한 번 씩 슬쩍 빠지는 일도 생겼고 시부모님보다는 내 자식일이 우선이라
고3이라고 빠지고 재수한다고 빠지고 그럴 일들이 생겨났었다.
내가 내린 판단은 무조건 옳다 주의의 시아버지도 팔십넘으시니
말씀하시는 것도 예전같이 고집불통처럼 하지 않으신다.
울 안에 딸린 텃밭에 욕심껏 가득차게 심던 김장용 배추가 두고랑으로 팍 줄어든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걸 내려놓으셨는지 보였다.
그렇게 말을 해도 듣지 않으시더니 올 해의 배추밭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잠도 안자고 추석도 안지내고 저녁만 먹고 올라오는 세련되다 못해 이래도 되나 싶은 추석은
토요일 저녁으로 끝이났고 남은 연휴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연휴가 남아있다는 것은
돈보다 좋은 보상이다.
진천 베티성지에서 미사를 드리고 근처 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연못에 가득 차 있던 연잎을 주인 허락을 받고 잘라왔다.
언니네 텃밭에서 가끔 보내주던 연잎밥을 해먹고 싶어도 연잎을 구하기가 쉬운게 아니었다.
지마켓에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가격이 만만한건 아니라 망설이게 됐는데, 주인 아줌마가 능력껏 끊어가라니
남편이 능력껏 연잎을 땄다.
밥알이 알알이 떨어지지 않고 덩어리째로 엉겨지면 찰밥찌기는 끝이고 이제 연잎에 싸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끝이다.
냉동실에 10개 있는 연잎밥이 추석 음식이 되었다.
들기름 바른 김과 연잎밥을 먹으면서 둘째가 맛있다고, 엄마 향이 너무 좋다고 몇 번을 말해줬는지
모르겠다.
나도 고맙지
물병쑈, 분유병 쑈를 해준 덕에 2000년도 가을 이맘 때 시댁 행사에 한 번 빠지게 해 준 일등공신이니
연잎밥 한 번쯤이야
이제 어떻게 하는 줄 알았으니 엄마가 평생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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