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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며느리 일기

by 나경sam 2020.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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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도 의미없는 명절, 애들 셋 중에 은지니만 우리집 애들 대표로 볼모로 잡아 내가 데리고 갔다.

남편하고 둘이만 가는 시댁은 아직도 불편한게 솔직한 마음이다.

시댁에만 가면 하루가 이십사시간이 아니라 사십 팔 시간 같으니 딸이라도 한 명 데리고 가지 않으면

사십 팔시간이 아니라 하루가 삼일이 될 것 같다.

 

은지니도 집에서 쉬는 게 더 편할테지만 엄마 생각해서 따라 가주는 거 내가 다 안다.

자식도 키워 놓으니 이제 부모 맘을 아는 것 같아 고맙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남편이 나도 없는 우리 친정에 아이들 데리고 가서 다녀 온 거 생각하면

내가 시댁에가기 싫다고 하는 게 참 미안한 일이지만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게 명절에 대한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나마 이번 추석 지나고 올라오면서는 부모님 살아 계시니 시댁도 있지 머지 않아 시댁에 내려간다고 할 일도

없어지겠다는 현실자각을 했다.

 

현타가 왔지만...

 

팔십이 넘으셨으니 고령이고 그 분들한테는 추석이고 설이고 애틋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남편은 산적 꼬지하나 꿰지 않은 주제에 어머니 다음에는 전은 조금만 부치시라고 해마다 하는 잔소리를 한다.

막상 꼬지는 아버님이 다 꿰었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고

전은 막내 동서랑 막내 동서 딸 지은이가 다 부쳤고, 송편은 몇 년 전부터는 맞춰서 가져오고 나물은 아직은 어머님이

하시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생색내고 내려 갔다가 다음 날 올라오는 손님들이면서

해마다 하는 소리를 어김없이 하고

또 어김없이 손님처럼 있다가 온다.

물론 설거지도 잔칫집 수준으로 할 때도 있고 큰댁가서 차례지내는걸 돕고도 오지만, 그나마 편한

큰며느리라고 늘 생각한다.

 

그래도 명절은 에휴다.

 

주차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우리 뒤에 들어왔다.

은지니랑 나랑 먼저 들어가도 어머님은 반갑게 맞아주시기는 하지만 남편이 들어서니

 

"아이구 우리 아들왔네"

 

반가움의 정도와 목소리의 톤이 누가 들어도 달랐다.

 

커피로 따지만 원샷과 투샷의 차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은지니조차, 엄마 할머니가 아빠보고 그렇게 말해서 깜짝 놀랐어 그랬다.

 

이제 아이들도 컸고 눈치라는게 생겨서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차별을 두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거는 하나도 안 서운하다.

어머니 마음으로는 그게 당연하거고, 남편보고 우리 아들 왔냐고 하실 날도 어머니 연세로 보아 많이 남지 않았으니

마음껏 하시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는 시댁에 거의 내려가지 않는 사람들이라

어머니가 남편을 보고 우리 아들 소리를 맘껏 하시지도 못한다.

 

남편의 앞 모습을 보시고는 우리 아들이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셨지만

나의 뒷 모습을 보시고는 "이제 너도  몸이 났구나" 팩트를 날리셨다.

 

순간 짜증지수 100상승

 

어머님의 눈은 정확하다.

그리고 팩트를 말씀하셨지만, 가뜩이나 체중이 늘어서 불편한 상황에 시어머니의 그런 말씀은 반갑지 않다.

 

"빠지직"

 

마음에 금이 가는 소리가 시댁 입성 후 1차 발생

 

예전에 친척중 한 분이 남편의 누나인 큰형님 얘기를 하면서 예전에는 뚱뚱하더니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시자 우리 어머니가 언제 우리 oo 이가 뚱뚱한 적이 있었느냐면서 발끈하시는 걸 내가 본 적도 있었는데

며느리에 대해서는 팩트 폭격기 시어머니

 

하지만 많이 늙으셨다고 생각이 되는게 내가 결혼했을때만해도 육십이 안되는 나이셨을 때라

성격이 만만치가 않으셨는데 나이드시고 여기저기 아프시면서 많이 꺽이셨다.

그리고 직계 자식들한테서 효도를 받고 케어를 받으시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우리 아들"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게 당연하다.

 

병원 다니실 때마다 직계 아들들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시간을 내서 모시고 다니고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게

시부모님 눈에도 그대로 보이니 얼마나  흐뭇한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일지

어머님은 세상의 모든 아들들보다 당신의 아들이 더 낫다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아들들을 이길 비밀 병기 아들들에 당신의 큰 아들은 빼야 맞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아들만한 아들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시댁의 큰 집에서 여덟분의 조상님들의 사진이 놓여진 제사상에 절을 했고 (그 중에서 얼굴을 아는 분이 세 분, 몰라요가 다섯분)

우리집은 남동생이 편지를 써서 읽어 드리는 게 우리집 제사만의 포인트다.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여동생이 제사를 함께 지냈는데 이번 제사에서는 우리 수민이가 경기에서 1등을 한 이야기와

나의 흰머리 이야기를 편지에 써서 읽었다고 전해 들었다.

 

해설자가 수민이가 1등으로 들어 오는데도 수민이를 부르지 않고다른 선수 이름만 말하면서 헛소리 한 걸 아버지한테 편지로 일렀으니 그 해설자는 한 번은 어디선가 쿵하고 넘어질지도 모른다.

우리 아버지한테 뒷통수를 맞고 휘청할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 두 분이 시댁 큰댁으로 제사 지내러 가는 걸 하지 않으셨다.

가서 앉아계시는 것도 건강이 좋지 않으시니 불편하시고 아버님 눈에야 안차는 어른들이지만

제사상 차린 짬밥이 있어서 아버님 없이니 한 상 차려 낼 수 있으니 하여간 이래저래 이번 추석에는

우리들끼리 제사상을 차리고 후다닥 끝냈다.

 

 

아침 먹고 술, 점심 먹고 술, 중간에 술

알콜에 조금씩 젖어서 연휴를 보내고 아버지 산소에 들러 커피믹스랑 시원한 소주 한 컵 드리고

친정에 가서 엄마랑 옥상 담화를 한 후에 나의 연휴는 끝났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니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거라는 현타를 오는 길에 잠깐 하고

이럴수 있는 시간이 많이는 남아 있지 않을거라는 아쉬움같은게 문득 들었던

이번 추석도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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