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이 수업받는 기초학력교실도 아이들 목소리로만 따지고 들면
내 생각에는 10명 쯤 되는 것 같다.
다들 목소리가 크다.
나는 어렸을 때 목소리 크다고 웅변을 했었는데 요즘 애들은 목소리가 크다고 웅변을 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귀가 아프다.
웅변을 했었지만 나는 웅변이 너무 싫었던 1인이었다.
6월이면 정해놓고 열리던 6,25 상기 웅변대회의 원고가 아직도 생각난다.
망할놈의 기억력
"녹음방초 우거 진 유우월... 새벽의 일이었습니다."
녹음방초가 뭔지도 모르고 선생님이 외우라고 하니까 외우고 대회가 있는 아침에는 엄마가 사 준 새 옷을 입고
선생님이랑 기차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국민학교 강당으로 가서 덜덜 떨면서 대기를 했었다.
상은 한 번도 못 탔었다.
대회 나가서 보면 웅변을 하는 지 연기를 하는 지 모를 대단한 연사들이 너무 많아서 그 아이들의 육이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겪어도 안 본 전쟁이 휙휙 지나가는 것처럼 총알이 날라다니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울고 있는것 같아 전쟁은 끔찍한 것이로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그저 원고만 외웠을 뿐, 입상을 한 아이들처럼 중간중간 단상을 탁탁 쳐가면서 실감나게 연설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웅변대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싫었으나 해마다 정해놓고 내가 나갔고 상도 해마다 못 탔다.
어느 해, 가뜩이나 상도 못타서 속상해서 돌아오는 데 길에서 만난 우리반 남자애가 내가 들고 있던 상자를 보고 상을 탔다고 내가 학교에 가기도 전에 먼저 헛소문을 내서 내가 화를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회에서 입상을 했건 말건 웅변대회가 끝나고 선생님이 사주셨던 군산 역 앞 자장면집의 자장면은 맛있었다.
기초반 아이들도 다들 목소리가 웅변대회 연사감이다.
목소리가 너무 크다.
어떤 아이가 아파서 하루 결석하고 왔길 래 내가 물었다.
"어디가 아팠어?"
"배요."
그러자 옆에서 어떤 아이가 말에 끼어 들었다.
"배 아닌데, 누난데"
이건 무슨 상황이지, 배 아팠다는 아이랑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배 아닌데 누난데는 무슨 상황이었을까
교실 앞에서 누나가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자기 누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상황이 그렇게 된거다.
삼자대화를 한 것이다.
누나가 기다리고 있는 아이는 "배"라는 단어에만 꽃혀서 "누나"라고 정정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지만 일학년들에게는 진지한 상황이다.
이미 하고 있는 대화가 끝난 다음에 자기 차례가 온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학년들도 있다.
그러니 자기는 누나가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급한데 선생이라는 사람은 배라고 하니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답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가 기다리는 게 아니고 누나가 기다린다고요" 가 그 아이의 마음이었을것이다.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데 방울은 방울인데 소리가 나지 않는 방울은? 문제가 있었다.
답은 솔방울인데 어떤 아이가 빗방울이라고 했다.
기발하고 참신한 답이었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가 한마디했다.
"빗방울이라니, 너는 그렇다면 귀가 없는 것이야"
빗방울은 부디치는 곳에 따라 소리가 나니까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수께끼에 정답이 어디있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거리지
둘이 큰 싸움 날뻔 했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싸우는 게 1학년들이라,
남의 말을 잘 알아듣는 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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