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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마지못해 산다"

by 나경sam 2019.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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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못해 산다"


이제 교토에서의 생활도 끝을 향해서 가고 있다.

한 달후에 있을 졸업식에 대한 안내문을 오늘 받았다. 3월 11일 졸업식이기 때문에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할 수 있지만

요즘같아서는 한달이 일주일처럼 가기 때문에 졸업식도 이제 곧이다.


교토에 있을 날도 두달정도밖에는 남지 않았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교토의 문화유산이 17곳

돌아가는 날까지 아직 못 가본곳을 찾아서 가보기로 목표를 세우고

오늘은 아라시야마에 있는 てんりゅうじ [天竜寺]에 갔다.


일본 역사 "남북조"시대에 당시 북조의 세력가이던 "아시카가타카우지"가  

남조의 "고다이고"천황을 애도하기 위해서 지은 절이 "텐류우지"라고 한다.


텐류지 안에 있는"무소 소세키"가 만든 정원 "소겐치 못 정원"이 일본에서 최초의 사적,특별 명승지 제 1호로 지정되어

1994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소겐치 못 정원"



"변함없이 "가레산스이정원"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햇빛이 따뜻한 텐류우지의 마당에 앉아서 잠시 연못을 바라봤다.

가만히 앉아서 겨울 햇빛을 쬐는 일도 일상의 평화로움이다.

아침이면 늘 바쁘게 걷고 학교에서는 5교시까지 수업이 빡빡하고 끝나면 알바하러 빵집으로 뛰다시피 걷고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다가 알바가 쉬는 날 하루나 이틀 보고 싶은곳 가보고 싶은곳에 가서 가만히 연못을 바라보는 일은

"사치"에 가까운 호사스러운 하루다.

"텐류지"의 따뜻한 앞마당에 앉아 있으니 큰집 마당이 떠올랐다.


어렸을때는 자기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아주 커보이지만 어른이 되어서 보면 이렇게 작았나싶을만큼 작아보이는 것처럼

우리 큰 집 마당도 그랬다.마당을 가로질러 우리들이 "토방"이라고 부르던 마당보다 한 단 높은 곳을 올라

(토방 : 방에 들어가는 에다 약간 높고 편평하게 다져 놓은 흙바닥)


또 거기서 한 번 더 오르면 긴 마루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마루를 전라도 사투리로 "말캉"이라고 불렀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별 일이 없으면 늘 큰집에 가서 놀았고 말캉의 끝에 붙어 있던 사촌언니들의 방에 들어가서

그때 중학생 고등학생이던 언니들의 볼펜을 써보거나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몰래 써보는 일도 즐거웠었다.


그리고 언니들 방에 있었던 "tv 가이드"잡지도 보고 "리더스다이제스트"라는 문고판 크기의 잡지도 열심히 봤었다.

내가 생각해도 활자중독등이 있는 편이라 글씨가 써있는것은 땅에 떨어진 종이라도 주워서 볼 때였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들 방에 있던 그 잡지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 봤던 티비가이드 잡지의 기사들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얼마전 중년이 된 여자 개그맨이 결혼 전 사귀었던 남자 가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이야기도 그때 티비 가이드에서 봤었다.


 미국 mit 공과대학 학생들이 공부가 너무 스트레스라서 자살율이 높다는것도 언니들 방에서 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본 기사였었다.


어렸던 나에게 언니들 방에 있던 티비가이드와 리더스다이제스트는 새로운 신세계였다.

벽장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영화 "나니아연대기"처럼 그 당시 언니들 방이 나에게는 "나니아연대기"의 벽장과 같았다.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재미있던 내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 남자가 물건을 사용해보고 스스로 모니터링을 꼼꼼히 해 본 후에 회사로 연락을 해서 "당신네 회사의 물건은 이런점이 좋습니다"

라고 편지를 했더니 회사에서는 감사의 표시로 자기 회사의 물건들을 종류별로 챙겨서 이 남자에게 보내주곤 했다.


각각 다른 회사로부터 여러가지 물건을 답례품으로 받는 일에 재미가 들린 이 남자가 면도날 회사에 편지를 썼다.

"당신네 회사에서 나오는 면도날은 너무 훌륭해서 한 개를 사용하면 석달은 거뜬히 쓸 수있습니다"라고 편지를 보내놓고

이번에는 어떤 선물이 올까 잔뜩 기대를 했더니 면도날 회사에서 달랑 면도날 한자루를 보내주면서 그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 개로 석달을 쓸 수 있다니 이번에 보내드린 면도날로 또 석달을 쓰세요"


초등학생 - 그당시에는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그 걸 읽고 정말 많이 웃었다.


하여간 언니들 방에서 티비 가이드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고 나면 동네 애들이 다 시시해 보여서 같이 놀기 싫을 정도였지만

우리는 늘 뒷산에서 놀았고 큰 집 마당에서 구슬치기도 하고 자치기도 하고 하여간 그 당시에는 징글징글 놀았다.

그러던 인생이 6학년 때 전학을 가면서 확 바뀌었지만 시골에 살 던 6학년 때까지는 원없이 놀았다.

기억이란 특별한 걸 통해야만 떠오르는게 아니었다.


때로는 맛있는 냄새에서 어깨에 내리는 따뜻한 햇빛에서 가라앉아있던 기억들은 수면위로 떠오르는 법이다.

텐류지를 나와서 10분 쯤 걸어서 아라시야마역으로 트롯코열차를 타기 위해서 갔다.

원래는 이걸 타려고 간건데


"트롯코열차"





겨울동안은 운행 정지란다.




3월1일부터 운행 재개라고 - 나처럼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관광객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대신 이걸 탔다.

"란덴 열차" - "시조오오미야"역에서 "아리시야마"까지 다니는 노면 열차다.

한 냥짜리 열차를 타고 가다가 자기가 내리고 싶은 역이 있으면 버스처럼 벨을 누르면 차장아저씨가 세워주고

내릴 사람이 없으면 그냥 통과하는 열차다.

생긴건 "호그와트"로 가는 하늘을 나는 해리포터에 나왔던 열차처럼 생겼으나 딱 한 칸짜리 귀여운 미니 열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교토가 좀 애틋해졌다.

아직 일년은 아니지만 얼추 일년이 되어가는 동안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시간들이다.

남편은 통화를 할 때마다 "요리도 할 만 하더라" "특별히 어려운 일은 없으니 신경 쓰지 말아라" 그런 말들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처음에는 그런 남편의 말이 고마웠었다.

그런데 항상 "힘들지 않다" "요리도 해보니까 할 만하더라"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도 남편이 한결같이 그렇게 말을 하면 속마음은 이랬다.


"아니 뭐라고 내가 없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잘 살아진다는 거야 뭐야"

화난 캐릭터 이모티콘 - 부들부들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아니 서운하다 증맬 내가 없어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냐"그랬더니

"여보 - 당신이 걱정할까봐 그렇게 말한거고  사실은 "마지못해 살아"


풀죽은 냥이


백마디 말 천마디 말보다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확 드는 말이었다.



한국말 듣고 모처럼 크게 웃었다.

란덴열차를 타고 시조오오미야 역에 내려서 46번 버스를 타고 카와라마치에서 내려서 쇼핑을 하고 다시 5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하루

알바도 피곤하지만 놀러다니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김치볶음밥과 호로요이" 교토 고식당 저녁 메뉴

남편은 내가 없어서 마지못해서 살고 나는 혼밥 먹으면서 룰루랄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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