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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갈 준비"

by 나경sam 2019.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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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준비"


사람이 사는 일에는 모든일에 "준비"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일본에 올 때도 2018년 4월 학기 입학을 위해서 나는 2017년 4월부터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학교를 찾고 서류 준비를 하고 방을 찾았다.

처음에는 막막했었던 일련의 과정들이 준비를 해가는 과정속에서서 압축이 되어져 갔고

막막해서 앞이 잘 안보이던 계획들이 내가 준비를 해가면 할 수록 구체적인 모습이 갖춰져갔다.

집도 그랬고 학교도 그랬다.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혼자서 모든걸 해낸것은 아니지만 일본대사관에서 비자가

찍힌 여권을 받았을 때는 성취감같은게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에게 "애썼구나" 라는 그런 기분마저 들었었다.


원래 나는 그다지 꼼꼼한 사람이 아니다.

덜렁덜렁하고 잃어버리기 잘하는 헐랭이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남 좋은 일을 시키고 살아왔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분실에 대한 아픔"은 국민학교 1학년 때 "왕자파스"사건이다.


12색 왕자파스

우리 엄마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 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가방" 하고 "왕자파스" 다.

어쩐 일인지 나는 저 왕자 파스를 미술시간이 들었을 때마다 잃어버려서 미술 시간이 돌아 올 때마다 저걸 새로 샀다.

100원이었었다.엄마한테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엄마는 또 잃어버렸냐고 야단을 치셨지만

크레파스를 새로 살 돈을 주셨고 1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왕자파스 주세요 하고 사서 학교에 갔었다.

문구가 많이 있지도 않을 때라서 크레파스는 무조건 왕자 파스였었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 산 왕자파스도 미술 시간만 끝났다 하면 어디론가 사라져서

선생님한테 없어졌다는 말도 못하고 항상 빈손으로 집에 왔었다.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도 가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던 시절이었다.

자기한테 없는 색깔은 친구한테 빌려서도 쓰고 여러가지 색을 섞어서 만들어서도 쓰고 몇개 되지도 않는 크레파스를

그냥 들고 와서 쓰는 애들도 있을 때여서 - 아니 그런 크레파스조차 없었던 애들이 더 많았던 때였다.


2학년 때 미술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었는데 그때 상품이 27색 크레파스였었다.

전체 조회 시간에 단상에 나가서 상을 받고 우리 반 줄로 돌아 올 때 아이들이 나를 보던 부러워하던 눈

아니 내가 받았던 27색 크레파스를 봤었을것이다.

크레파스가 그렇게 귀했던 때도 있었다.

크레파스 다음으로 엄마가 이야기를 많이 하는 나의 책가방 이야기는 잃어버린게 아니고 털털하게 가지고 다니다 온통 뜯어지고 박살이 나서 

항상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새로 사줘서 6년동안 5개의 책가방을 썼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5개로도 모자라서 6개를 살 뻔했었으나 6학년 졸업하면 어차피 중학생 가방을 사야 되니까 그냥 말았다는 엄마의 이야기는

엄마가 내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실로 전설의 책가방 여사가 아닐 수 없다.

책가방 끈이 참으로 길었던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공산품 품질이 좋지 않을 때라서 나처럼 늘 뛰고 휙휙 날라 다녔던 

학생에게는 가방이 얌전히 붙어 있지 못하고 어디가 뜯어져 나가거나 제 정신이 아닌 가방처럼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크레파스를 잃어버리고 책가방을 한 해에 하나씩 사서 매고 다녔어도 그런 걸로는 야단 한 번 맞지 않았었다.


그 대신에 지금까지도 엄마는 그걸 이야기 하는건가 싶다.


  그렇게 털털하고 준비성도 없던 내가 이제는 뭘 할려면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외출도 하기 싫어질 만큼 변했다.


3월 19일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도 예매를 해 놨고

쓰던 물건 버리는 일도 미리미리 교토 시청에 전화해서 접수를 해뒀다.

한 달 전부터 "퇴거 신청"도 할 수 있으니 오늘은 시간이 있을 대 미리 히가시야마구야쿠쇼에 가서 퇴거 신청을 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전입신고" - 귀국할 떄는 "퇴거신청"



의료보험도 해지하고

원래는 3월 31일까지 분을 처음에 의무 용지로 받았으나 귀국이 3월 19일이라서 의료보험료도 거의 한 달분은 면제받았다.

하지만 들어가는 날 까지는 보험 헤택을 받을 수 있으니 카드는 반납하지 않았고

돌아가는 날 의보 카드를 봉투에 넣어서 보내라는 반송용 봉투를 받았다.

국민연금도 돈을 내지는 않았으나 가입중이었기 때문에 해지신청도 하고 이제 일본에서 서류로 얽힌 일은 없게 만들었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보란티어 튜터 선생님하고 그 선생님 친구랑 셋이서 또 만나서 회식


"히라이" "나경" "에츠코" - 세명이서 밖에서만 벌써 세 번째 만났다.


이번에 만난 곳은 "튀김 전문 미세" 카운터 석밖에는 없는 아주 작은 가게였지만

8종류의 튀김을 세프가 바로 앞에서 튀겨서 내주는 가게였다. 8점에 4000엔이니까 싸다고는 할 수없었지만

게다가 일본술에 에비스 맥주까지 마셔 마셔 달려 달려 했더니 각각 7000엔이 나왔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무서워서 제대로 돈도 못썼었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돈을 쓰지 않는 날이 없다.

이렇게 적응을 하고 나니까 돌아갈 때가 된거다.


저 날 맥주 "에비스"진짜 맛있었었다.


앞으로의 회식은 저 선생님들이 4월에 한국으로 놀러 오면 수원에서 하기로 했다.



일본에 와서 친구같은 사람들을 사귄게 좋은 경험이었다.

빵집 아줌마들도 저녁 먹자고 해서 마지막 시험이 끝나면 호텔 뷔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줌마들도 6월 쯤 놀러 온다고 하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차근차근 돌아 갈 준비를 하고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남은 알바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산다고 살아도 하루가 애틋하다.


그래도 우리 막내가 혀가 반은 접혀서 어린냥 하면서 보고 싶다고 할 때는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팍 들기도 하고


"아 진짜 다시 생각해봐도 항상 잃어버렸었던 내 왕자파스 12색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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