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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미친듯이 뛴 수요일"

by 나경sam 2019.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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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듯이 뛴 수요일"


여기 와서 생활하면서 생긴 노이로제 중 하나가 "열쇠"다.

맨션 공동현관 열쇠와 집 열쇠 두개를 한 묶음으로 해서 여권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지고 다니는데

(사실 - 여권은 신경도 안쓰고 살고 있었다.그리고 재류카드도 임대표가 꼭 들고 다니라고 했는데도 재류카드도 무시_

나에게는 열쇠가 증맬증맬 가장 중요한 분이신데


수요일 아침 학교 가려고 열쇠를 찾는 순간

이 분이 실종되셨다.

처음에는 에이 어디서 나오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학교 갈 준비는 늘 여유있게 하는 편이라서 5분 10분이면 나오겠지 했는데

열쇠 - 그 분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으셨다.

내 방이 그렇게 넓었던가.그것도 아닌데 이불까지 한장 한장 미친듯이 털어도 나오지 않아서

잠시라도 히터를 켜놓지 않으면 맨 정신으로는 있지 못하는 내 방이 갑자기 찜질방처럼

더워졌다.머리에서 스팀이 확확 나오고

울고싶어졌다.



아기열내리는법, 열나는 아기 체온재는법



생각해보면 "열쇠 노이로제"는 살면서 쭉 있어왔던 문제였었다.결혼전 단독주택에 살 때는 열쇠가 뭔지도 모르고 살만큼 우리집은

늘 열려있던 집이어서,그리고 열쇠가 있었어도 그걸 끈으로 묶어서 대문 안쪽으로 늘어뜨려놓았다가

누구든 문이 잠겨있으면 그걸 밖으로 잡아당겨서 열고 들어갔었다.그리고 다시 안쪽으로 그 끈을 휙 던져놓고


그러던 우리집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가 엄마에게 제일 먼저 해드렸던 일이 현관을 번호키로 바꿔드린 일이다.

엄마가 처음에는 번거롭다고 싫어하셨지만 바꿔드리고 났더니 편하다고 좋아하셨다.


자동차를 처음 사고 열쇠 노이로제가 생겼던것같다.

차는 샀어도 남편보다 주로 내가 운전을 많이 하고 다녀서 차 키가 늘 집에 있었는데

큰 애가 아주 아주 애기였을 때 외출하려고 했더니 차 키가 없어졌었다.

그 때도 집안을 다 뒤집을 정도로 찾았었는데 (예비키도 있었을테지만 그것조차 어디로 갔는지 분실이 되어서)

정말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었다.


나중에 열쇠가 발견된 곳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였다.

바로 큰 애가 타고 놀던 붕붕이

저런 붕붕이 자동차에 앉아서 운전하고 노는걸 좋아했던 큰 놈이 저런 붕붕이 의자 뚜껑을 열고 거기에 넣어두었던 것

자기 키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붕붕이는 키가 없었으니까 내 키로 가지고 놀다 모셔둔거다.



붕붕이 자동차



하여간 열쇠로 말할것같으면 오만가지 스트레스가 다 딸려나올만큼 후덜덜이지만

찾다찾다 못찾고 결국 학교를 하루 쉬고 어차피 어질러진 집이나 좀 치울까 저절로 포기가 되었다.

20분쯤 미친듯이 찾고 나니까 집안꼴은 저절로 진도 7 강진만난 방구석 1열되었고

토상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순간

어제 밤에 프레스코 가면서 윗옷을 갈아입고 갔었지 - 그때 열쇠를 거기에 넣었었나봐

팍 하고 떠오른 생각

떨리는 마음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 순간

손에 잡히는 두 개의 금속 물질 - 너란 녀석은 바로 나의 열쇠구나


이미 늦은 등교길

미친듯이 뛰고 또 뛰었다. 내가 누군가 전국체전 금메달 유수민 선수 엄마 아니겠어

초등학교 3학년때 백군 계주 선수로 나가서 이미 반바퀴 앞서서 뛰고 있던 청군의 진화를 확 잡아버린 내가 아니겠냐고

초등학교 3학년때지만 그때 아이들이 나를 향해 응원해주던 그 환호성은 가끔씩 생각이 날 정도로

내 인생에서 내가 받아 본 응원중에 몇 안되는 화끈한 응원이었다.


수요일 그렇게 뛴 덕에 샤론파스를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골고루 부쳐야했지만 지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 12월 봤던 jlpt 2급 결과가 학교로 통지되었으니까 접수처에 내려가서 확인하라는 선생님의 말씀


아침에는 뛰느라 두근두근

둘째 시간 끝나고는 결과보러 내려가면서 두근두근

시험 봤던 날 걱정했던 청해는 잘들려서 문제가 없었는데 독해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독해때문에 망했구나했었다.

처음에 올 때 jlpt 시험 보려고 했던건 아니지만 여기 있다보니 시험이라도 준비해서 봐야겠다싶어

8월달에 접수를 하고 청해부터 공부를 했다.워낙 듣기가 안되니까 학교 시험볼때도 청해 점수가 낮아서 원체 스트레스였었다.

문법이나 한자 단어는 공부하면 해결이 되는거지만 청해는 달랐다.

문법이나 한자 독해는 공부하면 되는거지만 청해는 공부라기보다는 매일 듣고 훈련하면서 패턴을 익히고

일상적인 회화 표현들도 익숙하게 들리게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목이었다.

결과 확인 통지서를 받고 돌아가려는데 접수처의 직원이 결과를 뜯어보고 불합격이든 합격이든

학교에서는 그 결과를 복사해서 둬야 될 의무가 있으니까 지금 바로 뜯어보라는말을 했다.

집에 가서 혼자 뜯어보려고 했는데 -.-


종이를 끝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살살 밀어나가면서 뜯었다.

아침에는 미친듯이 뛰고 둘째 시간 끝난 다음에는 아껴가면서 개봉하고 인생이 극과 극인 하루였다.


맨 아래 하단에 두 글자


合格

토나오게 뛰어서 학교에 온 보람이 있었다.

물론 걱정했던 것처럼 "독해"는 60점 만점에 36점이었지만 "청해"는 60점 만점에 55점이었으니

 앞으로 1급을 준비할 때는 "독해"에 신경을 써야겠다 뭐 그런 피드백도 얻을 수 있었다.


정신없었던 하루


"이마미야"진자에 가서 아부리 모찌를 먹었다.





1인분 500엔 - 이마미야 진자 앞에 가게가 두 곳이 있고 그 중 한 곳은 1000년을 이어온 곳이다.

"노포 舖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교토의 노포 중의 노포다. 떡을 숯불에 구워 하얀 된장소스에 발라서 먹는 저 떡을 수학여행때 교토에 와서 먹고

어른이 된 이후에 또 교토에 와서 먹고 싶을 만큼 잊을수 없는 맛이라고 한다.


나도 언제 또 먹어 볼까 싶었다.

금방 다시 올수있을것같아도 그렇지 않은게 인생이니까 말이다.

제주도에서 살 때도 그랬었다. 2005년 1월에 이사를 나가면서 그 때의 마음으로는 일년 안으로도 다시 놀러 올 수 있을것만 같았었는데

전학갈때 초등학교 4학년마치고 5학년 올라가기 전이었던 승범이가 고3 올라가면서 가족 여행으로 다시 갈 수 있었다.


아부리 모찌 먹고 - "료안지" りょうあんじ 竜安寺


450년 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호소카와 가츠모토'가 기존의 귀족 별장을 개조해 만든 사찰이다.

가레이산스이(枯山水) 정원이 유명하다. 엘리자베스여왕이 일본에 왔을 때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셨던 것 처럼 가장 그 나라의 분위기를 대표할 만 한 곳을 여왕의 방문지로 선정한다니

"료안지"는 그런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후치와라"가문의 개인 별장이었던 곳을 사원으로 다시 개축했다고 한다.

교토의 문화유산을 보면 "후치와라" 가문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주 최씨"쯤에 해당하는 가문쯤 되나보다.

개인 별장이었던 곳인 만큼 넓디 넓은 "료안지"안쪽에는 "납골당"도 있었다.


"료안지의 석정"




평상에 앉아 돌의 갯수를 세어본다. 모두들


내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일본인 남자애가 자기 친구에게 "너는 몇개로 보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쓱 쳐다봤더니 이 자슥 발꼬락 양말을 신고 있었다.

돌은 몇개인지 셀때마다 헷갈렸어도 너의 발꼬락은 열개임이 틀림없구나



석정의 돌은 보는 위치에 따라서 갯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한 곳에서 안보고 자리를 조금씩 이동해가면서 봐야 된다.


돌의 갯수가 15개인 것은 달이 차는 주기가 15일이라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15개의 돌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이를 두고 '모든 돌을 다 보려고 애쓰지 말고 늘 부족한 듯 살아가라'는 선종의 세계관이 담긴 배치라고 해석


석정에 있는 돌이 갯수 15개 + 니 발꼬락 10개 = 25개

나는 그날 25개를 다 봤다.

어딘가에 가면 늘 도장 찍듯이 보고 나오기에만 바빴던 관광지들의 틈에서 오랫동안 앉아서 돌 정원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침부터 뛰었던 수요일

내 다리에 대한 미안함,그리고 뛰면서 또 생각한 우리 막내 (잠깐 뛰는것도 이렇게 힘든데 매일 그렇게 어떻게 훈련하나-.-)

한국은 명절이 지났다.

남편은 내 대신 딸 노릇도 하고 며느리 노릇도 하고 아들 노릇도 하느라 바빴다.

자기 친정 놔두고 우리집 먼저 가서 나도 없는데 하룻밤 자고 우리 아버지 산소 가서 인사드리고 나의 큰 집에도 가서 우리 큰 아버지에게

인사도 드리고 그 다음에 자기 친정(본인 본가)로 갔다.

증맬증맬 - 보기 드문 남자다.


우리 아버지가 결혼 전에 보시고 사람 괜찮겠다고 하셨던 말씀이 딱 맞았다.

울 아버지 아마 산소에서도 거봐라 내가 사람 잘봤지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뛰다가 걷다가 쉬다가

하루하루가 드라마틱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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