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토일기

"한 방에 훅 간 일주일"

by 나경sam 2019. 1. 28.
728x90
반응형



"한 방에 훅 간 일주일"


지난 주 월요일에 테스트가 있었고 지난 주 화요일 "우지"를 다녀왔고

                 수요일에는 냉장고를 빵집에 보내고서 저녁에 "밤부"알바를 갔었고

목요일에는 "밤부" 신년회에 다녀왔고 테스트가 또 있었고 좀 아팠었고

금요일 - 테스트가 또 있었고 알바 끝나고서 미역국에 밥 한사발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미역국에 힌 쌀밥이 그리웠다.


알바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밥을 안쳐놓고 미역을 물에 불려놓고 프레스코로 달려갔다.

김치도 사고 소고기도 사고 물도 한 병 사서 묵직한 장바구니 들고 다시 반룸으로(원룸 기준에 못미치는 반룸)

 돌아와 그사이 적당히 불은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소고기 핏물 얼른 빼서 집어넣고 물을 확 붓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미역에서 푸른 물이 조금 나올 떄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미역국 끓여서 애 낳은 산모처럼 한 그릇 먹고 낳더니 좀 살만했다.

밥심이라는 게 없는 말 ,틀린 말은 아니다.정말로 밥심이란게 있다.


화요일에 다녀 온 우지 "평등원"


우지역에서 내려서 사진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면 금방 도착한다.

 


헤이안 중기는 정토교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당시 귀족들은 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정토 세상에 왕생할 것을 바라며,

 서방 정토를 구현한 불당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관백이었던 후지와라노요리무치가 1052년에 우지에 있던 별장을 아버지의 별장을 사원으로 개축

1053년 불당이 준공되었는데 그게 바로 평등원

일본어로는 "뵤우도우인"이라고 읽고 "뵤우도우인"안에 "봉황당"이 중앙에 있다.

저 안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일본 10엔 동전에 있는 봉황당, 이 앞에서 누구나 10엔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더라만은 나는 그냥 패쓰


정원처럼 펼쳐진 연못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봉황당을 비추고 있었으면 더 멋졌을텐데 물이 너무 말라 있어서 아쉽다.

내가 이걸 보기 전까지는 봉황당은 그저 택이아부지에 불과했었다.

응답해라 씨리즈 1988에서 성동일이 택이 아부지를 부를 때 "어이 봉황당" 하던 그 봉황당

바로 이 봉황당 되시겠다.


수요일에 들어 오시는 "하마다"선생님이 진짜 교토사람이라면 할아버지떄부터 아버지 그리고 자식까지 3대에 걸쳐서

교토에 살고 있어야만 진짜 교토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는 거라고 자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면서 자기 할아버지 연배의 교토 사람들은

우지는 교토로 쳐주지도 않는다고 수업시간에 얘기해주셨는데 전철타고 30분 넘게 가서가 아니라 우지는 동네가 정말 시골시골했다.

윤동주 시인이 친구들과 소풍와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교토의 우지 다리에서 였다고 하던데 참 마음이 애달프다.


밤부는 신년회를 했다.

 알바를 끝내고 체코에 유학을 가는 모에코짱과 그리고 우리나라로 돌아가는 나

생일을 맞은 진상의 여자친구의 생파 겸 취직이 결정된 4학년 여자애 그리고 새로 들어온 신입을 위한 환영회 겸 송별회 신년회


"샐러드"

"ちらし寿司/치라시 스시"

"그리고 나경맥주"

전속 요리사가 세명이나 있었던 저 날 음식이 차고 넘치게 있었다.

케잌도 직접 구워서 누군가가 가지고 왔었고 과자도 만들어 온 알바생도 있었고 포트럭 파티처럼 게임도 하고 뽑기도 해서

나는 식사 3000엔 할인권을 받았다.

뽑기 종이에 다른 사람에게 용돈을 줘라 뭐 그런 엿같은 종이도 있어서 심지어 그걸 뽑은 사람은 진짜로 삼천엔이나 오첸엔 용돈을

주기도 헸는데 나는 그런거 안 뽑고 식사 할인권을 받았으니 사람들이 다들 축하한다고 ^^



그리고 신년회의 주인공들되시겠다.



선물도 잔뜩 받아서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아직 한달 남기는 했지만 짧은 알바기간에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을만큼 받았네


열개쯤 선물을 받았고 같은 곳에서 일하지 않아서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던 알바생한테까지 선물을 받았다.

많은 선물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후로시끼"

후로시키 風呂敷 일본 전통 보자기

목욕하러 들어 갈 때 입었던 옷을 보자기로 감싸놓고 목욕을 마친 후에는 보자기 위에 서서 발을 닦으면서 옷을 입었다는 데서 이름의 유래가 있다는데

風呂(후로) 가 목욕의 의미이고 敷 (시끼) 의 의미가 바닥에 까는 깔개의 뜻이 있는 걸로 볼 때 후로시끼의 원래 의미가

목욕에서 유래된게 맞는 듯하다.


재주껏 저 보자기로 가방을 만들어서 들고 다녀야 될탠데 똥손이 만들면 그냥 보자기가 될것이고 금손이 만들면 가방이 될텐데

혼자 이렇게저렇게 만들어본 결과 - "똥손"

그래도 예쁜 후로시키


금요일에 시끄럽던 중국애들 삼인방을 한방에 제압하고 교실에 평화를 만들었다.

그날 이후로 애들이 떠들지를 못한다.

그래도 걔네들이랑 사이가 안좋게 지낼 수는 없어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붙였더니 애들이 또 순수한 면이 있어서

잘받아줘서 뭐 그럭저럭 애들이랑도 괜찮아졌고 자리바꾸기를 또 해서 이번에는 중국애 "료"상이랑 짝이 되었다.


우리나라식으로 료상 이름을 읽어봤더니

"여흥호"


얘가 우나기집에서 알바를 하는데 한국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메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달라고 부탁을 하길래

간단한 거는 우리말로 알려주고 연습도 시켰는데 얘가 아주 잘 따라하길래

"료상" 한국으로 유학을 다시 가라 일본어 발음보다 한국어 발음이 훨씬 더 좋아 그랬더니 얘가 함박웃음^^

어서오세요,안녕하세요도 연습시키고 스무살이지만 얼굴은 스물 일곱처럼 생겨서 "흥호"가 우리반 중국애들 중에 젤루 착하다.


"료상 - 니 이름 말이야 우리나라에서는 흥호라는 이름은 아저씨들 이름이야 요즘 애들은 이런 이름읎써"

그랬는데도 또 함박웃음


내일부터는 료상이라고 부르지말고 "흥호야" 그래야겠다.


빵자르고 식빵 귀를 모아서 학교에 간식으로 가져가서 흥호랑 나눠먹었더니

얘가 나더러 알바가 너무 좋은 자리라면서 부럽다고 하길래

나도 식빵을 가져오는데

"그럼 너도 우나기(장어)를 가져와 이 자슥아"


엊그제는 빵집 알바에서 키타무라 규탄대회가 열려서 까딱 잘못하면 촛불들고 나갈 뻔했다.

나만 스트레스를 받았던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키타무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불만이 있었다는걸 알게 된 날

키타무라가 조금 딱했다.


늘 그렇듯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는 걸 본인만 모르니 사단이 생긴다.

그녀가 좀 변하기를 바란다. 화가 난 것처럼 지내지 말고 인사도 잘 받아주고 그랬음 좋겠다. 진심으로^^


해가 조금 길어졌다.

다섯시면 깜깜해졌었는데 이젠 다섯시에는 까딱도 하지않고 밝은 걸 보니까 겨울도 지나가고 있다.


아침에 학교갈때 아이들이 아직도 짧은 반바지에 긴 양말만 신고 유치원 등교하는걸 보면 교토는 겨울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지만

엊그제 제법 눈이 내려서 먼 산이 하얗다.


교토는 겨울에 눈이 두 번 정도 내리면 많이 오는거라고 선생님들이 그러던데

두 번의 눈을 이미 다 봤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는게 맞다.





'교토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친듯이 뛴 수요일"  (0) 2019.02.09
"배워서 남주는 게 진리 - 쓰앵님"  (0) 2019.02.04
"나는 오늘 오늘의 나를 만났다"  (0) 2019.01.21
"사람과 신발은 오래 될수록 편하다"  (0) 2019.01.18
"나라"  (0) 2019.01.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