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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4월7일-8일"

by 나경sam 2018.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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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 8일"

 

남편이 가고 나니 교토 날씨가 추워졌다.

 

(당신이 가고 나니 날씨도 추워졌고 내 마음은 더 추워졌다)

 

전기장판이 너무나 그리운 밤을 보내고 동네 빵집 "보로니야"에 이력서를 가지고 가려고

아침부터 커피를 다리듯이 내려놓고 이력서를 쓰는 중

 

 

 

 

줸장 이력서를 교토에 와서 까지 쓰고 있을 줄 몰랐네 -.-;;;

 

언제까지나 이력서를 쓰고 있어야하는 "미생"이며 "을"인지 내 인생에게 쓰미마셍해진다

 

일본의 이력서니까 일단 일본어로 쓰는 것도 쓰는 거지만 한자로 써야 하니까

쓰다 틀리고 쓰다 틀리고를 하다가

로손에서 산 1700원짜리 이력서를 세 장 쯤 틀리고 나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같은 경우는 일본인이 아니고 어쨌든 외국인에다가 파트타임을 해야 하는 알바생이기 때문에

(일본 이력서는 파트타임용 이력서가 따로 있었다)

기재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자격쓰는 란에 한국에서의 운전면허를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3분쯤 고민 하하하

 

그리고 항상 시키지 않은 짓까지 더 하는 특이한 성격의 나로서는

이력서에서 시키지 않은 사항까지 당구장표시달고 따로 써주는 성심성의를 보였으니

 

예를 들면 이런거다.

"나는 당신들이 필요하다면 휴일에도 나와서 일을 할 수 있고 너무나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니

나를 믿고 일을 시켜보면 너희들은 아마 만족할 것이다 그러니 후회하지 말고 나를 뽑는게 좋을 껄"

 

이력서 쓰는 데 두시간도 넘게 걸렸다.

그래서 나는 이걸 "이력서"라 쓰고 "논문"이라 읽었다.

 

오메나 애착 쩌는 거

 

펼치면 책 처럼 완전한 한 페이지가 되는 책을 쓴 느낌이었다.

너무나 아까워서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은 만큼 소중했던 "이력서"

하지만 명심해 너는 "을"

 

 

 

 

이력서와 함께 시키지도 않은 "주민표"와 "학교 입학 허가서"까지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래야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 되는거니까 그 정도쯤이야 거기서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할 일

 

 

 

 

 

두시에 약속을 했다고 생각하고 집에서 오분도 안되는 빵집으로 둑흔둑흔 가는길

비는 오고 쫌 추웠지만 이상하게 설레기도 했고

가기 전에 시키지도 않은 두번째 설레발 "자기소개" 도 쓰고 외워서 김칫국 한사발 마시고

그럼 가 볼까

 

나의 일터로 하하하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1시 55분 "보로니야 빵집 앞"

 

빵집 문을 수줍게 여는 아줌마가 있었으니

 

나 - "아노 쓰미마셍"

(미안해 뭐가 미안한건지 나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미안해)

 

예쁜 종업원 - (웃으면서) 하이

 

나 - "쿄우 리레끼쇼노 카키떼 쿠루 코또니시따 고나경데스가^^;;;"

(오늘 너네가 이력서 써서 가져오라고 했던 그 아줌마야 이력서 쓰느라고 멀미했어 책임져)

 

예쁜 종업원 - 도고로떼 야구쏫꾸 지깐와 산지데와나갔딴데스"

(그런데 약속 시간은 세시 아니었었나요^^;;;)

 

두둥 세세세시시시였다니

나는 왜 두시라고 생각했었나

쪽팔림의 극치

그치만 여기까지 온 성의가 있으니 그냥 두시에 이력서 내라고 하면 좋으련만

이노무자슥들 - 다시 세시에 오란다.


 

나는 그대로 후퇴

그래 누구는 가끔은 아침에 먹은 밥도 뭐에다 먹었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했고

가끔 나는 내 나이를 잊어버려 남편 나이에서 4를 빼서 내 나이를 되짚어가는 마당에

엊그제 들은 두신지 세신지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암 당연하고 말고

하지만 아머리카노 투샷을 에스프레소로 마신 것 처럼 입맛은 썼다.

 

"이러면서 무슨 공부를 한다고 -.-;;;"

 

세시를 기다리면서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외우고 읽고 핸드폰에 입력해서 원어민 발음을 듣고 따라하면서

(지금 하는 노력을 이십대때 했다면 나는 지금쯤 대기업 부장은 되있을거다)

 

세시 오분 전 다시 "보로니야 빵집"

 

나 "쓰미마셍"

 (일본에 와서 미안한게 많아진 나)

 

예쁜 종업원 "하이 도오죠"

(뭘 도오죠 - 나나 도와줘라)

 

잠시 서있다가 이층으로 올라오라는 싸인을 받고 좁은 다락같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사실 손님도 별로 없고 가게는 아주 좁아서 이런 가게에서 내가 일하면 시급이내 제대로 줄 수 있을 까

혼자 오지랖 넓은 고민이 살짝 들었었다.

 

(하지만 이거슨 그야말로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 작렬이었으니-이유는 잠시 후에 투비 컨티뉴)

 

이층에 올라가니

 

여자 사장님 "하이 곤니찌와"

나 "나도 곤니찌와"

이력서를 주고 주민표도 보여주고 학교 입학허가서도 보여주고

이 아줌마 사장님 꼼꼼하게 읽으면서

 

사장아줌마 "결혼하시고 쭉 일을 안하시다가 나중에 하셨네요"

 

나 (웃으면서) "그건 제가 아이가 셋이어서 애들 키우느라 일을 못했어요"

(셋도 힘들었는데 그 중에 둘은 승질 드러운 연년생 딸들이었거든 당신같으면 밖에서 돈 벌수 있었겠냐)

 

사장아줌마 "이런 빵집같은데서 일하신적 있으세요"

 

나 (웃으면서) "아니 없지만 이제부터라도 잘할수 있어요 사먹기만 했어요"

(내 얼굴을 봐 당신이 뽑아 놓으면 두 명이 일하는 줄 알지도 몰라 이 아줌마 사장님아 하하하)

 

사장아줌마 "일은 주말에도 하실 수 있나요 오봉에도 가능하신가요"

*오봉 - 일본 전통 명절

*우리 엄마 쟁반을 오봉이라고 하셨었는데 여기서는 쟁반이 아니라 오봉 명절을 말한다.

 

나 (눈에서 불을 뿜으면서) "그럼요 저는 한국사람이잖아요 오봉에도 할수 있어요.주말에도 할게요"

 

사장아줌마 - "영어는 조금 할 줄 아세요"

 

나 - "영어는 조금 하지만 한국말은 완전 잘해요"

 

사장 아줌마 (쫌 웃다가) - "시급은 850엔이고 수습 끝나면 900엔이예요"

"언제부터 일 하실수 있어요"

 

나 - "다음주 월요일은 인터넷 아저씨가 온다고 해서 안되고 화요일부터 되는데요"

(내가 그렇게 필요한거야 그런거야~~~~)

 

사장 아줌마 (몹시 당황하면서) "아니요 저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이 빵집에서 하실 일은

전화로 주문 받으시고 주문수량대로 상자에 포장도 하셔야 하고 판매도 하셔야 되는데

고상이 하실 수 있는 일은 판매도 어렵고 전화주문 응대도 어려워서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 잠시 베토벤의 "운명" 빠빠빠밤 빠빠빠밤이 머릿속에서 울렸고-

그런데 바로 뒤

 

사장 아줌마 - (주문서를 내밀며) "이거 한 번 읽어 보시겠어요"

나 - 읽었다-

 

내가 주문서를 읽음으로써 사장 아줌마를 또다시 시험에 들게 했고

(주문서대로 상자에 넣으면 되는 일도 해야 하므로 주문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빵 종류도 물론 외워야 되겠지만)

 

사장 아줌마는 나의 존재가 몹시 궁금했는지

공식적인 면접은 끝났지만

자기랑 나랑 동갑이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왔는지 궁금해 하길래

그렇담 내가 준비한 "지꼬쇼우까이"를 해봐도 되겠습니까를 말했더니

 

사장 아줌마 - "어머 해보세요"

 

나는 준비한대로 말했지

 

"나는 한국에서 온 고나경이라고 해

지금부터 이년동안은 교토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려고 해

한국에서 막내까지 대학교에 다 들어갔으니까 엄마로서의 중요한 일은 어느정도는 끝났다고 생각해서

짐을 싸서 일본으로 왔어

가족의 양해를 구했고 물론 막내는 아직도 징징거리지만 그냥 왔어

일을 시켜만 주면 나는 한 번 한다는 일은 하는 아줌마야 열심히 할게

제발 뽑아줘라"

 

사장 아줌마 나보면서 감동의 박수를 칠까말까 할 쯤에 나는 시크하게 인사하고 나왔다.

(박수칠 때 떠나야 되거든-그래야 있어 보여)

사장 아줌마가 나의 소중한 논문=이력서를 자기가 더 봐도 되냐고 해서

 

나 - "그건 단순한 이력서가 아니야 논문이라고 논문 일본에 와서 처음 쓴 이력서라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그래 당신 가져라"

 

나는 이력서도 소중하긴 했지만 (다시 쓰라면 그렇게는 또 못쓸것처럼 글씨도 잘썼다.줸장 보는 눈은 있어)

 

사장님은 생각해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말했고 나는 좁은 다락같은 이층에서 나와 오후 내내

"기온 거리" "니시키시장"  "카와라마치거리" 의 코스로 셀프 관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음이 왜그렇게 허전하고 쓸쓸하고 우리집의 아이들이 보고 싶고

늘 내가 구박만 하던 방구쟁이 남편이 보고 싶은지

그리고 집은 왜 이렇게 추운거야

 

이상하게 슬픈 마음이 들어서

 

혼자서 마음 고생을 하다가 잤다.

 

 

물론 아직도 자는 일은 익숙하지 않아서 한 시간에 한 번 씩

우리 큰 애 백일까지 잠투정하듯이

나도 그렇게

오십이 넘어 교토에서 잠투정을 하면서 잤다.

 

 

 

 

 

 

 

 

 

 

*교토 보로니아*

 

동네 작은 빵집이 아니었어

교토 마블 식빵의 원조

이 집이 그렇게 유명한 집이었다네

내가 시급 걱정했던건 미친 착각이었던거고

그 아줌마 알고보니 거의 재벌급 아줌마였던거야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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