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월요일"
같이 늙어 간다는 게 딱 오늘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엄마도 나도 왼쪽 어깨가 똑같이 아파 한의원에 가서 침맞고 물리치료 받고
의사선생님께 자세 교정 운동 배우고
비가 오는 월요일
은근히 바쁘게 돌아다닌 하루다.
내가 가는 한의원에 엄마도 가고 싶어해서 함께 갔는데
치료실이 좁아 커텐 하나로 칸칸마다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엄마가 치료를 먼저 받으시는데 의사가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한의사 - "어머니 군산에서 오셨던데 어떻게 오셨어요"
엄마 - "딸네집요"
한의사 - "네 군산은 뭐가 맛있어요"
엄마 - "꽃게요"
한의사 - "꽃게는 지금 맛있나요"
엄마 - "아니요 아직멀었어요 꽃게가 맛있을라믄 음력 삼월은 되야 맛있죠"
그러면서 우리 식구는 간장게장보다는 양념게장을 좋아하고 식구 모두 꽃게를 좋아해서
항상 봄에 꽃게 사느라 돈이 많이 든다고
의사는 한마디했을 뿐인데 엄마는 의사 한마디에 열마디쯤
의사와 엄마의 꽃게 대화를 듣고서야 나도 비로소 음력 3월이 되어야 꽃게가 맛있어진다는것을 알게 됐다.
우리 식구들은 양념 꽃게를 무척 좋아한다.
꽃게가 비쌀 때는 삼십만원어치도 양이 별로 많지 않지만
엄마는 꽃게 살 때는 목돈 팍 풀고 사다가 양념꽃게를 만들어서 우리가 그걸 쪽쪽 빨아먹는 꼴을 꼭 보고야 만다.
우리 동네에서는 양념꽃게라는 정형화된 단어를 쓰지 않고 그냥 "무젓"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놔도 엄마의 상위에 무젓이 빠지면 재미없다.
무젓이 없으면 눈으로 음식을 휘휘 저어보면서 "엄마 무젓없어" 한마디를 꼭 한다.
엄마가 그렇게 길들여놓은 무젓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내려와서 큰애와 둘째는 할머니 무젓을
아주 좋아해서 그게 아무리 매워도 콧잔등에 땀을 만들어가면서 먹는 마법의 음식같은거다.
막내 남동생이 홍천에서 신병 수료식을 하던 이십 삼년 전에도
우리 엄마는 그걸 무치고 들고 찬합에다 한가득 넣어서
수료식까지 들고 갔었다.
무젓은 우리 식구의 입맛의 역사이고 엄마에게는 종교같은 음식인것이다.
누군가 한 번 그냥 한 말이 내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일 때가 있는데
오늘 꽃게 이야기가 딱 그랬다.
의사가 서둘러 다른 환자에게 가지 않았다면
엄마는 꽃게 이야기로 아마 한시간도 더 이야기 할 수 있었을텐데
그걸 상상하면서 치료 받는 침대위에서 나 혼자서 쿡하고 한 번 웃고 말았다.
음력 삼월이 되면 엄마는 또 꽃게값 비싸다고 하면서도 꽃게 사다가 한 번은
무젓을 무칠것이다.
내가 주일에 성당가는것처럼 우리 엄마는 음력 삼월이면 무젓을 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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