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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남편, 핸드폰 바꿔줄게 돌아오시오.

by 나경sam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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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돌아오시오, 당신이 없으니 아침에 커피 내려 줄 사람이 없소.

당신이 없으니 빨래를 옥상에 널어 줄 사람이 없소. 내가 했단 말이오.

 

퇴근하고 걸어갔소. 데리러 와 줄 사람이 없었단 말이오.

쵸코비 100개 사줄게, 아니아니 핸드폰 바꿔줄게. 돌아 오시오.


그렇다. 우리집에서 물건을 가장 오래 쓰고 안 바꾸는 사람은 남편이다.

버리는 일도 신중하게, 사는 일은 결정을 못 한다. 집도 내가 사 자고 해서 샀고 자동차도 내가 사자고 했다.

큰 돈 쓰는 일은 두려워하고, 빚지는 일은 죽는 일인 줄 안다.

그래서 아직까지 신용카드는 체크카드로 사는 사람이 남편이다. 자기 이름으로 신용카드 만들어서 확확 긁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남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집은 제가 문제지요....

 

카드도 내가 긁고, 집도 내가 사 자고 했으며 차도 제가 사자고 했더랬습니다. 이십 팔 년전에요.

남편은 면허가 없었고, 나는 있었지만 막 결혼한 우리는 집은 새 아파트가 있었으나 차가 없었습니다.

스물 일곱에 취직한 남편이 월급을 거의 안 쓰고 모아 장만해둔 전주 송천동의 신일 아파트 24명은 

새집 증후군이었는지 그 집에서 돌 잔치까지 했던 승범이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아파서 소아과에 다녔다.

 

1995년 파란색 세피아 뒷 좌석에서 승범이를 안고 있던 막내 여동생을 태우고 소아과로 운전해서 가는데

앞 뒤로 꽉 막혀 있던 송천동 골목길을 빠져 나가지 못 해 진땀뺀 적이 있었다.

정말 답이 안나오는 각도, 내가 옆 차랑 깻잎 한 장 차이로 빠져 나가야 내 뒷 차들이 함께 대탈출을 할 수 있는

지옥의 미로에 들어섰는데. 

그럴 때 뒷 차의 어떤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서 나한테 "아줌마 솥뚜껑 운전이나 하지 왜 차 갖고 나와서 지랄이냐"

이런 미친놈의 새끼를 봤나.

 

그때 나는 스물 여덟,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었다.

차는 앞 뒤로 막혀있지. 뒷 자리에는 어리디 어린 넷째 여동생이 두려움에 떨면서 한 살짜리 아들을 안고 있었고

애는 아파서 소아과 가는 길이었으니 무서울게 없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던 상황.

한 판 붙자. 덤벼라. 이 새끼야. 니가 나 면허 따는데 돈 보태줬냐. 함부로 말 하지 말어라. 나도 내 상황이라는게 있는거다. 미친놈아.

 

미친놈아 소리는 안했지만 앞에 쓴 대사는 거의 그대로 그 놈 귀에 들으라고 크게 말했고 열이 뻗친 아저씨는 화가 무지 났지만, 그는 앞으로 올 수 없었다. 왜냐고. 말했지. 지옥의 미로같았다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대환장 파티에서 국민학교 웅변 실력이 아직 목청에 남아 있던 나는 꼰대를 무찌르고 

지옥의 미로를 홀랑 탈출했다. 사실 무서웠을것이다.

나 잡아 봐라 미친놈아 메롱, 소아과 주차장에 차를 대고 후덜덜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뒷 자리를 쳐다봤더니

승범이를 안고 뒷 자리에서 낮은 포복으로 덜덜 떨고 있던 대학교 1학년이나 됐을 때였던 막내 여동생이

"언니, 잘했어. 속이 다 시원하다"

 

기억할라나. 그때 조카가 보고 싶다고 재수할 때도 불쑥 찾아오던 막내 여동생도 이제 쉰 언저리니 세월 참 빠르다.

 

남편, 그나저나 돌아오시오. 당신이 자기 손으로는 못 바꾸는 당신의 핸드폰을 내가 지플립 5로 바꿨고, 요금도 내 줄것이도. 생일선물이오. 돌아 오시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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