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아침 리허설을 가는 딸의 아침밥이다.
내가 나갈 때 보통은 자고 있는데 오전에 리허설이 있는 때, 간단하게라도 밥을 먹고 싶어할 때가 있다.
아들은 아침밥 패쓰지만 얘는 또 아침을 차려주면 먹는 아이라서 간장계란밥으로 줬다.
딸 : 엄마, 나 밥 조금 먹고 싶은데
나: 그래, 그럼 간장계란밥 괜찮지
만만한게 간장계란밥이지만 먹고 나면 포만감과 만족감이 어설픈 반찬에 밥 먹는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렸을 때 갓 지은 흰 밥에 간장넣고 참기름 넣어서 비벼먹는 밥을 좋아했었다.
우리 엄마가 키웠던 다섯의 자식들 중 내가 가장 입이 짧았고 눈으로 봐서 이상한건 절대 안먹는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간단하고 맛이 있는 간장계란밥이 좋았을까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동네에 슈퍼는 없었고, 또세네집이 우리들의 로망, 이마트같은거였다.
오는 사람들에게 '또 오세요' 인사를 꼭 해서 별명이 또세네 집에서 왜간장을 사오라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버스 한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는 또세네집까지 싫다소리 한 번 하지 않고 간장을 받으러 다녀왔다.
플라스틱통에 들어있는 간장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덜어주는 간장이었고 지금처럼 양조간장이라는
고상한 단어가 아니라 왜간장이었다.
어렸을때야 그게 왜간장인지, 양조간장인지, 외간장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가 간장을 사오라고 한 날은 가마솥에 한 밥에 간장을 뿌려서 참기름 한 방울 둘러주는 간장밥을 먹는 날이었기 때문에
간장을 사오면서 냄새에 홀리고 저녁에 먹을 간장밥을 생각하면서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지던 간장의 추억
간장을 무시한 적은 없지만, 간장 무시할 일이 아니다.
계란을 위에 올리지 않아도 참기름, 간장만 비벼도 맛있고 방심해서 조금 더 넣었다간 짜서 못 먹는 간장
우리 셋째도 입맛이 없을땐 딴 거 안찾고 그냥 간장계란밥 그런다.
간단한 간장계란밥이지만 계란을 세 개나 후라이하고 참기름은 선물받은 명인의 참기름이었으니
내가 어렸을 때 먹었던 간장계란밥보다 더 맛있었겠지만 엄마가 어렸을 때 해주던 간장밥
그것도 맛있었다. 간장밥은 추억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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