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전 성삼일 미사와 부활 미사까지 세례 받은지 이십년만에 성심이 가장 충만한 부활을 보내고
큰 가방 두개밀고 어깨에 작은 가방 하나 메고 집을 떠나왔다
떠나보면 안다
늘 보던 사람들이 소중하고
늘 쓸 수 있던 작은 물건들도 아쉽고
그리고 그동안 너무 욕심부리고 살았다는걸 알게 된다
집 떠나기 전 날까지 짐을 싸지 않아서 남편에게 잔소리 몇번 들었지만
내가 집을 비우려고 하니까
마침 이 집의 보일러는 완전히 고장이 나서 새로 바꿔야했고
세입자 중 한명은 보증금의 일부 반환이 필요했고
우리 성당 성가대 내가 속한 알토 파트 성님들은 "헨델의 할렐루야"를 24마디부터 박치들이 되어 노래가 끊어졌다가
30마디쯤 넘어서 다시 부르는 자체 편곡을 하고 있어서 멀쩡하게나 혼자 그 부분을 해내느라 열일을 해야했다
(남들이 다 틀리는데 부르고 있자면 내가 틀린것같은 착각이 들어 강한 멘탈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휘자를 믿고 자기 자신을 믿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성가대 회식중 여동생이 전화를 해서 목을 놓아 우는 바람에 마음이 아팠고
우리집 막내3번도 전화로 10분을 넘게 울고
내가 아는 오십 넘은 사람중에서 가장 마음이 여린 ㄱㅎㅅ 쌤도 울고
나는 여자 세 명울리고
남자 둘은 가슴으로 울리고
이제 삼십분 후에 공항으로 간다
어제까지 연주하느라 바빴던 딸은 엄마가 비행기 타고 가는 시간이 월요일 2교시 화성학 시간이라 자기는 그때 아마 울고 있을지도
모를거라면서 나름 시크했지만 우는걸 보고야 말았다
아들이랑 한 번 안아보고 앞으로 월 목 10시에 배달오는 반찬을 부탁하고 체크카드를 맡기고 이 집 식구들 식생활을 책임지라했다
큰 애가 집에 있어서 남편과 딸만 있는 집보다 훨씬 마음이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
새벽에 나가야 돼서 인천 청라 여동생 집에 와서 하루 자고
이제 나간다
나는
두려운건지
설레는건지
이 기분이 뭔지 잘모르겠지만
나랑 일곱살 차이 나는 막내 여동생은 내가 약도 안챙겨왔다고 약챙기고 라면챙기고 커피까지 챙기면서
언니 힘들면 그냥 다 그만두고 다시 오라고 한다
엄마도 빨리 오라 그러고
여동생 막내도 빨리 오라 그러고
우리집 3번도 빨리 오라 그러지만
다수의 지지자들은 어차피 나가는거 일년은 채우고 있다 오라고 말해주었다
사람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나도 안가본길이니
하지만
나는 간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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