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두려운 20대"
딸 친구가 삼수의 길로 들어간다.
함께 재수를 했으니 결과도 좋았으면 좋았겠지만
대학에서 원하는 숫자는 정해져 있고 결국 본인이 몇 점 차이로 떨어졌는지 ( 음악 실기라서 알기가 어렵다 )
알 수는 없지만 영점 몇 점의 차이로 이십대때 인생 희비가 엇갈리고
삼수의 문턱에서 과연 내가 이대로 이 길을 가도 좋은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고민이었고
새벽이었지만 내 딸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러 나갔고
나는 또 그 딸을 태우러 영통 경희대로 새벽에 나갔다.
딸도 재수할 때 음악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부터 하고 시작했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인지"
"습관처럼 해 오던 것을 나는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부모가 보기에는 하나 쓰잘데기없는 고민같고
닥치고 열심히나 하지 왜 저러고 있나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방황하는 시간들이 사춘기처럼 지나가고 나니
무섭게 덤벼들어 결국 재수를 끝내게 되었다.
고 3 현역때는 누구나 거치는 과정을 거치는 때라서 그게 그렇게 힘든줄도 몰랐는데
재수는 현역때의 두배 정도 힘들었었다.
실패를 경험한 후에 출발하는 사람은 투지가 활활 타오르는게 아니라
두려움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출발이 무서웠다.
개나리가 피어도 신경질이 나고
목련이 피어 있어도 예쁜 줄도 모르고
벚꽃이 피어 사람들이 꽃구경하는걸 방송에서 보여줘도
화가 나던 봄을 보낸 후에야
나는 정상인이 되었던 것 같다.
흔들리는 봄을 보낸것은 딸도 마찬가지여서
이유없이 울고
이유없이 웃을 때가 있었다.
그래도 다 지나가고 지나간다.
새벽이었지만
기온은 영상이었고
이제 겨울은 다 지나간것같은 착각마저 드는 2월의 새벽이었다.
경희대 교문인지 건축물인지 길 옆에 쭉 펼쳐진 석조 건축물 앞에서 딸을 기다렸다.
새벽에 본 경희대 건축물은 너무 웅장해서 깜짝 놀라기까지했다.
언젠가 한 번 이 앞을 지나간 적이 있긴 했지만
낮에 본 풍경은 학생들이 그 앞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저 건축물이 경희대 교문인가보다 했었는데
학생들이 사라진 교문은 돌무덤처럼 무서웠다.
저렇게 높고 넓은 문을 아이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일년 이년 기다렸다가 들어가는구나
교문 건너편 24시 맥도날드에서 딸과 친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교문과 맥도날드의 중간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나는
교문이 원망스러웠다.
두시쯤 들어오는 귀가 길
딸과 친구를 태우면서 딸 친구에게 살짝 소심하게 주먹을 불끈 쥐어서 보여 주었다.
설마 ㅎㅅ 너 그걸 감자로 알지는 않겠지
그건 아줌마가 너에게 보내는 화이팅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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