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일기 2"
무려 삼박사일
감자탕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제주도에 있는 삼박사일동안 눈과 숨바꼭질을 실컷 했다.
아침이면 펑펑 내려 있고 오후가 되면 말짱해져서 마음을 놓게 하고
또 아침이면 종아리까지 빠지게 내려 있고 비행기는 결항에 지연에
오늘 아침만 해도 관사 앞마당이 밤사이 이렇게 되어 있어서
나갈수 있을 까 걱정했지만 군인정신으로 저 눈을 눈삽으로 쓸어내서 길을 만들고
우리는 나갔다.
다행히 큰 길은 당신이 방금 본 것은 헛것이요 라고 해도 될 만큼 눈이 없어서 운전하기는 괜찮았고
대신 "사려니숲길" 은 체인 없이는 통제 구간이라서 다시 돌아와
"구제주투어"
효리네 민박에 나왔던 "모퉁이옷장" 빈티지샵같은 분위기의 옷들과 핸드메이드 귀걸이나 니트 조끼 인디언풍 가방
마니아층이 좋아할만한 옷들이 있고 주인 아가씨는 시크한듯 친절해서
부담없이 구경하기가 좋았고 대신 가게 안이 협소해서 둘이 들어가는 것도 살짝 미안해지는 평수
길고 좁은 가게지만 위로 이층까지 있고 옷에 대단한 욕심이 있는 딸은 위험한 이층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
원피스를 두 벌 집어 들고 나를 쳐다봤지만 내가 한 번 노려보는 걸로 포기
이곳은 그냥 구경한번하는걸로만 패쓰
옷장을 구경하고 터덜터덜걷다가 만난
"순아"
100년된 이 집을 헐지 않고 내부의 서까래가 다 들어나게 천정을 높이고 단차가 나는 바닥도 그대로 두고
옛모습 살려서 커피숍을 만들었다.
벽에 붙어 있던 "순아"라는 손글씨의 이야기가 감동이다.
제주도 여인이었던 "순아" 할머니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고생끝에 돈을 모아 제주도에 사둔 집터가
바로 "순아" 커피솝 자리이고 할머니는 일본에서 제주도로 들어 올 때마다 편한 호텔 마다하고 낡은
이 집에서 며칠씩 머물면서 항상 "살암시라 살암시믄 좋은 날 온다" 말씀하셨다고 한다.
후손들은 최대한 집을 허물지 않고 이 자리에 새 건물을 올리거나 팔지 않고 커피숍을 열었고
순아할머니가 큰어머니인 조카딸이 커피를 내려준다.
잠깐씩 살기 힘들다 느껴질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살암시라 살암시믄 놓은 날 온다"
명심하고 살지어다.
계피향 진한 라떼를 마시면서 "김영갑 두모악갤러리"를 좀 읽고
느릿느릿 내맘대로 달팽이 투어 다시 시작
제주도 살 때 다녔던 "하귀성당"
소길리 집에서 하귀성당까지 차로 이십분이 넘었지만 먼줄도 모르고 잘도 다녔었고
큰 애는 성당 대항 축구 시합도 나가서 어느 성당 축구부에 져서 울기도 했던 각자의 추억이 있는 성당이다.
성탄 재롱잔치를 한다고 성당 지하에서 딸들이 손에 풍선을 끼우고 춤을 추기도 했던 "하귀성당"
성당은 그대로인데 그때보다 작아보인다.
어렸을 때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보면 작아보이는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큰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지
애월 해안도로를 달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제주도가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이 되고 대란이다 라고 인터넷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모두 다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평화로운 바다를 만났다.
바다는 잔잔했고
비행기는 언제나처럼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배를 드러내고
잘도 오르내리는것을 오늘만 해도 운전하면서 몇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살짝 감기가 와서 머리가 아픈 나는 만병통치약 쌍화탕을 뎁혀서 먹고
이번 여행 정리
또 언제 올수있을지 모르는 제주도
금방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을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 훌쩍 다녀가는 제주도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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