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도"

제주도 2002 년 7월 17일 - 2005년 1월 어느날까지

전주 - 대전- 대구 - 다시 전주에서 근무를 하던 남편이 한 여름 다시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혼자만 훌쩍 들어가버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사는 나의 일 절대 남편의 일이 아니었으므로

네살이 된 막내와 다섯살 둘째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 아이를 데리고

혼자서 제주공항에 내렸던 7월 17일의 더웠던 저녁

그당시 제주도 이사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고 이삿짐은 배로 그 다음날 들어오는 시차가 있어서

우리는 빈 집으로 먼저 들어와서 다음날 이삿짐을 기다렸다.

가동부터 마동까지 있던 관사에서 우리집은 "라"동이었다.

라동 102호에서 이년 반을 살았었다.

큰 애는 초등학교를 둘째와 셋째는 유치원을 다녔던 제주도에서의 유년 시절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을것이다.

이삿짐이 다 들어오지도 못할 만큼 관사는 작아서 대부분의 짐을 지하실에 보관해두고

꼭 필요한 살림살이만 가지고 살아야 했을 만큼 집은 좁았지만

아이들은 늘 관사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놀기 바빠서 집이 좁은 줄도 모르고 살던 곳이 제주도 집이다.

가동부터 마동까지 아이들이 고만고만하게 둘이나 셋있는 집들이 대부분이어서

언제나 관사 마당은 시끄러웠었고

애들이 많아 빨래도 언제나 양이 많았던 우리집은 베란다에다 빨래를 널지 못하고

관사와 관사 사이에 만들어져 있던 빨래 건조대에다 매일 빨래를 해서 널었었다.

저 건조대에다가 아침에 빨래를 해서 널면 남편이 퇴근하면서 걷어서 들어왔었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빨래 걷어서 들어왔던 집이 우리집밖에 없어서

다른 집 부인들이 남편들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빨래 좀 걷으라고 하는 바람에

남편은 나중에 다른 직원한테 제발 빨래 같은거 걷어주지 마세요 그런 민원도 들었다고 했다.

저 건조대에 거의 매일 이불을 널었었다.

아토피도 심했었고 아직 밤 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던 우리 셋째가 밤마다 오줌을 싸서

이불을 그때 그때 빨 수가 없어서

아침이면 그냥 갖다 널었었다.

어느날 좀 친한 사이가 된 아기엄마가 나더러 참 부지런도 하시다고

어쩜 이불을 매일 빠느냐고 해서 사실은 우리 셋째가 오줌을 잘못가려서 이불에 실수해서 매일 빨수가 없어 너는거라고

사실을 말해줬더니 큰소리로 웃으면서

자기는 그것도 모르고 저 집 사모님은 참 부지런하다고 혼자 생각했었단다.

자기만 알고 있어야지 안그럼 우리 셋째 시집도 못간다고 내가 협박했던 곳이 저 건조대 아래였었는데

아마 그 사실을 그집 아저씨도 알았을 것이고

동네 부인들 몇명쯤은 알았을지도 모를일

세상에 비밀이 없는 법이고

더군다나 그당시 우리 관사 동네는  아침에 나온 이야기

저녁이면 돌았던 동네여서

우리 셋째 오줌싸개였던거는 아마 동네가 다 알았을 것이다.

치킨이든 피자든 자장면이든 배달음식은 구경도 못하던 동네라서

누구네가 시내 나갔다가 피자라도 한 판 사서 들어오는 날이면

혼자만 먹을 수가 없어서 이집 저집 애들 다 불러 모아놓고 먹이던 우리 동네

우리집이 이사를 가기 전 겨울

어떤 밤도 오늘처럼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게 내렸었다.

눈도 오고 산 윗동네 절대로 배달을 못한다는 아저씨와 어떻게 협상을 했었는지

(내가 협상을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아저씨와 내가 중간에서 만나 내가 치킨을 받아들고 눈을 뚫고 관사로 치킨을 가져와

나는 멋진 아줌마가 되었던 밤

"다"동 어느집에선가 과메기를 사왔다고 어른들은 전부 그집으로 모여서 과메기를 먹었었고

아이들은 승범이 아줌마가 목숨걸고 받아 온 치킨을 실컷 먹고

펑펑 내리던 밤 눈을 맞으면서

동네가 시끄럽게 놀다가 빨래 건조대 아래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놨었다

그날 내리던 눈 만큼 관사 마당에 눈이 쌓여있었다.

그때는 빈집이 없어서 관사에 들어오고 싶어도 대기를 타야 했었는데

이제는 살림하고 사는 살림집들이 거의 없어서

겨울 밤 불 켜진 관사 불 빛이 몇개 되지도 않는다.

밤에 눈을 뚫고 우리가 왔다고 그때 라동 우리 윗집에 살던 직원분이 마중을 나와주셨다.

애기였던 그 집 첫째가 벌써 고 삼이라고해서 깜짝 놀랐다.

"아니 어쩜 그대로세요 변함이 없으세요" 했더니

고개를 숙여 헤성헤성해진 앞머리를 보여주면서 이게 늙은거지 뭐냐고 한다

하긴 그때 다섯살이었던 우리 둘째가 스물 한살이 되어서 다시 왔는데

어떻게 그대로겠는가

딱 그만큼씩 나이를 먹었을것이다.

관사도 나도 그 아저씨도 우리 딸도

지나온 시간만큼 공평하게 나이를 먹은 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낮에 포크레인이 한 번 밀고 갔다는 관사 마당이

언제그랬냐는듯

쌓여 있는 제주도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