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종이었다.
먼저 선방 날리고 훅 들어오는 이 시가 바로 미당 서정주 선생의 "자화상" 이란 시다.
23살에 썼다는 이 시의 한 구절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었다" 때문에 다른 행은 들어본 적도 없이
오직 8할의 바람만이 머릿속에 남아 읽어 볼 겨를도 없게 만든 마성의 한구절이 된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바람이 바람풍인지 바램인지는 잘 알길이 없으나
문득 나를 키운 건 8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나는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지만 얘들은 딱 답이 나온다.
햇빛과 바람과 물이 키웠다.
쪽파는 그 새 한 줌 뽑아서 나물을 해먹었다. 마트에서 적은 단이 2700원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직접 기르기 전에는 생각없이 샀을 테지만 쪽파씨 삼천원 어치가 끝도 없이 새순을 올리는걸 내 눈으로 보고야 말았으니
-.-;;;
킹벤자민도 거실에만 있으니 진딧물이 끼여서 그렇게 약을 뿌려 줬건만 깨끗이 없어지질 않더니
옥상에 올려놓고 그저 햇빛과 바람 올 여름에 많이 내린 비에 잎들이 뽀송뽀송해지고 어느새 쑥쑥 나와
수형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글쎄 나는 한 게 아예 없지는 않고 별로 없다.
물도 몇 번 안주고 눈도 제대로 안맞추고 옥상 볼 일이래봐야 빨래 걷고 널러 다닐 때 한 번 씩 쓱 보고 다닌게 전분데
애들이 워낙 똑똑해 그다지 돈 안들이고 대학 잘 보냈다는 아이들을 둔 재수없는 엄마처럼
내게 저 아이들이 그러하다.
보자!
그럼 나를 키운것은 아니 지금도 살고 있으니까 나를 키우고 있는 것은
1.아버지가 물려준 순수 감성과 그렇게만 살면 안된다고 엄마가 급하게 한 줌 던져 준 강한 정신
2.나중에 만난 지금의 나의 종교 - 카톨릭 신앙이 아니었으면 마음이 바닥이었을 듯 -.-
3.그리고 지금까지 방에서 자고 있는 柳 라는 성을 쓰고 있는 者들
등등 많겠지만 요 정도 선에서 정리 가능
텃밭이라고는 하지만 어른 양팔 넓이 만큼이나 될 까 하는 밭에서 이런 생각도 해보고
내가 배추를 키우는게 아니고 배추가 나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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