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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내가 거울로 정직하게 보이는 날들"

by 나경sam 2018.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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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울로 정직하게 보이는 날들"


수원으로 이사 오는 날 부터 일을 했으니 지금까지 10년쯤 이런 일 저런 일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이사조차 남편 손에 맡겨놓고 초등학교 딸들은 전학도 스스로 교실 문 두드리고 들어갔고

그렇게 살다가

요즘 쉬는 것처럼 쉬는 베짱이같은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수원으로 이사와서 처음 일하러 다닌 곳이 병점이었었는데

그때 우리 동네 화서역에서 병점역까지 가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었는데

지하철에 앉아서 가는데 사람이 없는 지하철이라 앉아있는 내 모습이 반대편 유리창에 흑백사진처럼 보였었다.


깜짝 놀랐다.

분명히 내가 보이는데 내가 아닌것같은 느낌

저 사람 누구지 하고 잠깐 보다가 그게 나란걸 알았을 때 뭐랄까 슬픔이 확 밀려오는 그런 기분


화장을 했어도 반대편 유리창에 보이는 나는 흑백사진같은 무채색에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고 오나 하는 무거운 마음을 잔뜩 짊어지고 출근하는 사람같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훨씬 늙어보였었다.

그때는 사십대 초반이었으니 그다지 나이 먹었다고도 할 수 없을 때였는데

어쩐지 유리창에 비친 나는 초라했고

늙어 있었고

웃는 얼굴도 아닌

그저 그런 중년 아줌마였었다.


병점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12번을 기다리는데 그 버스는 어찌나 오지 않는지

마을버스가 아니라 망할버스라고 욕을 해주면서

그날 느꼈던 내 마음을 시로 쓴 적이 있었다.


시를 써서 동생에게 보내줬더니

마구 성질을 내면서 언니는 왜 이런 시를 썼냐고 마음이 아프다고 아주 지랄을 해대서

그 시는 그냥 버렸었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내 누님같은 여자들이 되는 줄 알았는데

사는건 우리를 그런 누님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어쩌다 한 시기에는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것 같은 명품백이 나도 하나 갖고 싶어서

카드를 두개나 만들고 내 눈에는 진짜 같은 루이비똥 손가방을 카드 아줌마에게서 얻고서

그게 너무 좋아 화서역에서 병점가는 지하철안에서

무릎위에 보물처럼 올려 놓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내 옆자리에 할머니 그것도 멋쟁이 할머니가 아닌 그냥 동네 할머니가 나랑 같은

그 가방을 나처럼 무릎위에 올려 놓고 가시는게 아닌가.


순간 너무 부끄러워서 가방을 아래로 내려놓고 화서역까지 왔었다.

그래도 미련을 못버리고 큰 애 고등학교에서 입시설명회를 할 때 그 가방을 들고 갔더니

정말 모든 아줌마들이 명품 가방을 들고 온게 보였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여보 나 그 가방 없었으면 큰 일날 뻔 했어.아줌마들이 다 명품 가방 들고 다니더라"

그랬더니 남편 말이

"그 아줌마들도 다 당신처럼 카드 두장 만들고 받은거야 " 그랬었다.

듣고보니 맞는 말 같아서 웃고 말았는데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이 이제서야 드는걸 보면 오십 넘고 철이 좀 났나 싶다.


학교 일 두 곳 남은 중에 오늘 초등학교 한 곳은 종강을 하고 들어왔다.

두달만이라도 어디 일할곳 없나 하고 알바몬을 열심히 쳐다보고 나라일터라는 곳도 들어가서 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별로 없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알바란에 하루 일급이 11만원이어서 지원을 했더니

담당자가 곧바로 연락이 왔다.


조리팀에서 일할건데 조리사 자격증이 있나고 물어서 "없습니다"

그럼 그런 곳에서 일하신 경험이라도 있냐고 물어서 "또 없습니다"

집에서 여태 밥해멕인 경험도 중요하지 않냐고 주부니까 일반적인 일은 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그분이 결정타를 날렸다.

"한 끼에 칠천명 분을 만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칼질도 손이 안보이게 하셔야 합니다"


그말 듣고는 링위에서 왕펀치 맞고 쓰러진 처럼 "네" 하고 끊었다.


"고식당" 에서 밤 낮없이 밥해멕인 건 이력서에 한 줄도 쓸 수 없는 나 만 아는 경력인것이었다.

잛은 일본어지만 외국어로 할 수 있는 평창 알바 모집에서는 나이가 택도 없이 젊은 애들만 뽑아서 나는 그것도 안되고

"나라일터"에 들어가서 뭐 할 것 있나 쳐다봤다.

정말이지 나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하다못해 어디 미화원을 뽑는것도

"경력자" 를 원했다.


조리사는 조리 자격증을 원하고

미화원은 경력자를 원하고

전문적인 일은 나이가 젊은 사람을 원하고

세상 추접스럽고 드럽다는 생각이 확 들었지만


그게 바로 세상이 보는 나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알바몬을 열심히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보니까 딱 한군데 일할 곳이 있긴 했다.

성남에 있는 어묵공장 단순 포장 알바

엄마는 이제 오뎅 공장 밖에는 갈 데가 없다

알바몬 일자리 그 많은 걸 넘겨봤어도 딱 그게 내 일이었다.


서글픔이 쫌 밀려왔지만

경력에 한 줄 쓸수도 없는 고식당 저녁 메뉴

"고등어 감자 고추장 조림"을 할려고

이마트에서 사온 고등어를 꺼내 놓고 나는 곧 저녁 식당 오픈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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