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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김부장, 뚜껑을 열고야 말았다.

by 나경sam 2026.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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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방송 70프로 한국말 방송 30프로쯤의 비중으로 보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티브이 생활이다.
그래서 우리 딸이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 월드컵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모국 응원하는거지"라는 말까지 했는데
어제 봉인해제 '김부장' 맥주 두 캔과 함께 4편까지 쭉 직진. 안경 낀 아저씨들 셋을 어쩔 거야.
 
맥주 두 캔 까면서 애껴가면서 4편까지 봤더니 그게 끝이라네. 오늘 밤 김 부장 보겠어.


그래, 안경은 내 남편도 꼈다. 대한민국 중년의 안경 낀 남자들 대부분이 불의를 보면 꾹 참고 잘 참고 어지간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잘 넘어가주는 사람들일 텐데 가족을 건드리면 못참지, 딸내미 실종으로 김 부장이 전설의 요원으로 돌아가는 드라마.
 
이해가 된다. 피가 끓을 때가, 내가 내가 아닌것처럼 미칠 때가 있었다. 나도 자식 낳고 김 부장이 됐었으니까.
 
큰애 낳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소아과를 다니던 초보 운전자 시절,  뒷좌석에서 막내 여동생이 우리 아들을 안고 나는 진땀 빼면서 운전하고 가는데 하필이면 차들이 꼬여있었고 내 차가 가장 앞차였다.
 
좁은 도로에서 쌍방 대치 상황, 어쨌거나 내가 빠져 나가야 길이 트이는 상황이었는데 운전이 서툴렀고 수동기어에 여러 가지로 복잡해서 자신 있게 운전해서 나가지 못했는데 내 뒤에 있던 아저씨가 내려서 제대로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었다.
1996년만해도 그랬던것같다. '아줌마 집에서 밥이나 하지 운전하고 다니면서 길 막히게 한다고 아주 있는대로 지랄을 해댔다.
아직 대학생이었던 막내 여동생은 겁에 질려했고 돌도 안됐던 아기는 감기로 울어댔고 나는 피가 끓었다.

 
눈깔을 뒤집어 깔 만큼은 아니었지만 밤에 이불은 안 찰만큼 퍼부어줬다. 스물 여덟살이었고 애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는거, 나도 시간이 급하고 마음이 답답했는데 아저씨가 되도 않는 쌍소리로 기름을 부었다는거
그게 나를 김부장으로 만들었다.


엄마들이 김부장이 되는 순간은 거의 정해졌다. 애가 아플때다. 돌지나서 장염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던 날도 김부장이 됐었다. 주차비 정산 시스템이 새로 만들어지던 1996년즈음이라 이 삼일 입원에 병원비 만큼 나온 주차비를 내지 않으면 주차장 차단기를 열러주지 않겠다는 아저씨랑 나랑 싸움이 붙었다.

분명히 병원에서는 입원했던 보호자 차량이니 출차된다고 했는데 당시 새로 도입된 주차관리 시스템, 혼돈의 카오스 단계였던터라, 주차장 아저씨는 안된다, 이 못 빼유.
나는 왜 안되냐, 병원에서 출차된다그랬는데 아저씨가 뭔데 차를 못 뺀다 그러냐. 운전석에서 나와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눈깔 거의 뒤집어가며 싸울 때, 남편은 안에서 큰 애를 안고 얌전히 있었고요. 나는 미친 아줌마처럼 펄펄 뛰며 난리를 피웠더니 아저씨가 차단기 해제,

주차장관리아저씨: 아줌마 가유,가…
나: 진작 그러셨어야지. 우리 애 더 아팠으면 아저씨 나한테 죽었어.

길에서 남들과 싸우는 경험을 애 낳고 그렇게 두 번 해봤다.스물 여덟밖에 안된 애기였었는데 눈에 내 새끼밖에 안보여서 그럴수 있었다.
김부장보면 안경 낀 아저씨들 무섭더만, 우리집 안경 낀 아저씨는… 아닙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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