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셋째를 낳고 에어컨을 달았다. 1999년 6월 9일 대구, 그때는 대프리카라는 말은 없을 때였지만 대구는 대구였다.
여름은 더웠고 겨울에는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아서 눈이 오던 겨울 어느 날 관사의 아이들은 강아지들처럼 밖을 뛰어 다녔고 어른들도 덩달아 나와있던 곳이 대구였다.
응답하라 1988처럼 아줌마들은 남편들이 바로 옆 회사로 출근하면 집 청소 후다닥 해 놓고 관사 마당 평상으로 출근해서 점심이 되면 어느 한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점심을 먹었다.
우리집 섭섭도련님도 대구에서는 미틴놈(ㅁㅊㄴ의 순화버전)처럼 술을 마셨다. 나이도 젊었고 타지역에서 직장 적응의 루틴이었을것이지만 나는 무척 힘들었다.
무엇보다!! 대구는 육아 불모지였다. 친정, 시댁 200키로 이상 떨어진 곳이었으니 이 악물고 내가 키울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육아불모지, 육아유배지 같은 곳이었지만 세례를 받은 곳도 대구였고 우리 큰 아이의 첫 유치원도 대구, 셋째도 대구에서 낳았으니 대구에서 섭섭했던 것을 퉁칠랍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돌직구였는지 성당간다고 유모차 밀고 가면 '그럴 시간있으면 집 청소나 하이소'하고 뒷통수에 대고 돌을 던진 아줌마도 있었고 (나중에 진심으로 사과를 했지만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나에게 대구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도 주말에는 동화사에도 놀러 가고 경주에도 여러번 갔다. 대구에 살았기때문에 가능했다. 사립 유치원을 다녔던 큰아이는 밖에서는 어설픈 대구 사투리를 썼고 집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육아가 가장 힘들었던 곳이라서 둘째가 십칠개월밖에 안되었는데도 혼자 밖에 나가서 놀아도 따라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꼼짝도 못했던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셋째에게 온갖 공을 들여 키우지도 못했다. 관사 골방같은곳에 아기 침대를 대여해서 그곳에 셋째를 가두다시피 놓고 키웠는데 둘째가 호시탐탐 셋째를 노렸기때문에 격리할 수 밖에 없었다.
다리미 잔열로 둘째 손 윗등에 화상 상처가 난 곳도 대구에서였다. 도무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살았던 곳, 애증의 대구.
그래서였나 남편이 다시 전주로 발령이 났을 때 먼저 전주로 가 있던 남편을 다시 대구로 오라고 하지도 않고 혼자서 이사를 했다.
갓난아기였던 셋째만 여동생에게 미리 보내놓고 다섯살, 두 살 두 것들을 세피아에 태우고 밤에 88고속도로로 혼자 운전을 해서 대구를 떠나왔다.
그달치 풀무원 녹즙값을 주고 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을 뿐, 대구를 떠나올 때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앞 집 여자에게 전화를 해서 녹즙값을 해결한 뒤로 대구에서 내가 받은 소식은 딱 두개였다.
큰 아이 한솔 유치원 김현정 선생님의 편지와, 내 뒷통수에 대고 '성당 갈 시간 있으면 집 청소나 쫌 하이소'했던 1층 주영이 엄마.
김현정 선생님의 편지는 애틋했고 주영이 엄마는 미안했었다고 사과를 했다. 아주 오래 시간이 흐른 뒤에 주영이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주영이 엄마가 말했었다.
자기 손으로 김치를 만들어 먹기 때문에 자기는 남의 집 김치는 잘 안먹는데 우리 엄마가 해서 준 김치를 내가 줬을 때, 이걸 우예 먹노 했더니만 나중에 더 달라고 할 만큼 맛있었다 라는 그녀의 말도 재미있었다.
셋째는 너무나 잘 컸다. 떼쟁이에 고집이 누굴 닮았지 싶은 면도 있었지만 여리기가 코스모스같은 아이가 운동선수가 되어서 하루를 견디고 일주일을 견디고 일년을 견뎌내는 것이 애달프다.
춘천살때는 석사초등학교 모닝글로리 아줌마가 우리 셋째를 보고 단박에 '공주'라고 불렀을만큼 얼굴이 귀티가 절절 흐른다.
애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모닝글로리 아줌마가 사탕을 줬단다. 함께 있어도 사탕을 받지 못했던 둘째의 불만이 있던 때였다.
우리 공주는 지금 시합중이다. 생일 지나서 집에 오지만 생일 선물은 하이닉스 1주로 미리 선물을 했다. 120만원일때 한 주사서 줬으니 잘한 일이다.
아이엠에프때 셋째를 낳아서 키우느라 이유없는 눈치를 받았는데 내 인생에서 큰 아이는 행운이고 둘째는 보물, 셋째는 굴러들어온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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