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뭔가 일이 있고 다소곳하게 집을 즐기고 있을 여유가 없는 바쁨 주의 집이 지금 집이다.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은데 이래봬도 집순이랍니다.
남편 친구 모임. 3-1반 놈들의 모임에 우리까지 얹어진, 이제는 자기들이 언제 만난 친구들로 모임이 됐는지도 헷갈려한다.
남편 친구1: 우리가 언제 같은 반이었지
남편 친구2: 우리가 3학년때 같은 반이었잖아.
이젠 총기를 잃어가고 할아버지가 된 친구도 있고 마음은 19살 때 그대로일테지만 부부 모임이다보니 만나서 이야기 할 때 마다 느끼는건데 대화 도중 남편들은 늘 자기 부인한테 혼난다.
보문산에서 남편이랑 찍은 사진을 보니 남편과 나의 늙음이 넘쳐난다.
사진 찍어 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찍어놓다니, 역시 남편은 남편...이다.

여보 고마워, 덕분에 얼굴이 작게 나왔네.
그리고 보문산 전망대에 올라가서 대전이 뒤로 확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살던 1998년에는 없었던 전망대다.

그때도 이런 곳이 있었다면 한 번은 아이들 데리고 왔을텐데, 분명히 없었다.
대전에서 살 때 아이엠에프가 시작되어서 금 모으기 운동한다고 이삼만원했던 금반지를 갔다 냈었고 은행 금리가 20프로 가까이 올라가서 은행 점포 앞에 붙어 있기도 했었다. 1998년도 이야기다.
시절이 그렇게 뒤숭숭했어도 보물같은 은진이가 태어난 곳이 대전이라서, 나는 대전이 정다운 동네다.
셋째가 생겼는데 유산 기미가 있어서 산부인과를 다니다가 산내에 있는 한의원에서 한약 한 번 지어 먹고 셋째가 찰떡같이 달라붙어서 무사히 셋째를 낳을 수 있었다.
우리가 대전에 살 때는 성심당이 줄 서서 들어가는 곳은 아니어서 큰 애 어릴때는 빵집 안에 있던 그네에서 그네도 태우고 빵도 먹고 오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런 말 했다가는 '라떼도 그런 라떼없을것같다'
대전으로 남편이 발령났을때 시어머니는 섭섭해했고 나는 웃었다. 시댁과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 남편의 발령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대전으로 발령났다고 했을 때 혼자서 짐을 싸면서 웃고 집을 시원하게 팔고 나서도 섭섭하지 않았다.
집은 남편이 샀고 팔기는 내가 팔았다. 돌아올 곳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전주에서의 생활은 대한민국 지도에서 시댁과 멀어지고 싶었던 첫 발이 대전으로 찍힌 것으로 우리는 그렇게 선화동으로 이사를 갔다.
길이 막혀서요. 소리 한 번 해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서대전 아이씨에서 시댁까지 고속도로 30분-.- 그렇게 뻥 뚫리고 시원할 수가 없는 길이었다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간간히 막혀줄 때도 있었고 시댁과 속한 '도'가 다르다는 것이 좋았다.
2년 살고 더 먼 대구로 발령이 나서 쌩 하고 이사를 갔으니 대전에서 스타트를 잘 시작한 거 맞긴 하다.
둘째 태어나고 셋째가 생기고 남편도 점점 말 안듣는 금쪽이 장남으로 살살 변해가면서 사는 게 편해졌는데 시작이 된 곳이 대전이었던것같다.
분리가 되어서 떨어져 나온 곳이었으니 대전은 출발점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보문산은 한 번도 오지 않았었나보다.
이름만 들었고 와 본 건 처음이지만 전망대에서 본 대전은 그때 내가 살던 대전은 아닌것같았다.
주말이 바쁘게 지나갔다. 이제 그만... 주말에 집에서 쉬고 싶다. 누워서 일드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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