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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새집 좋음 증후군

by 나경sam 2026.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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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첫 집은 남편의 야심작 분양 아파트였다. 24평 복도식 아파트, 40대에 돌아가신 남편 친구 석태 씨가 신일건설 다닐 때 사두라고 했다던 아파트는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다. 남편이 수줍은 듯 당당한 듯 조금은 자랑스러운 듯 

"저는 집이 있습니다"라고 말을 꺼냈을 때 스물일곱 살이었던 나는 그게 얼마나 고마운 건 줄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당연한 말씀 하시네요, 집은 다 있죠" 껌만 안 씹었지 오만불손하기가 아아. 죄송합니다. 그때의 남편씨...

 

모태부터 자가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집이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좋든 나쁘든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가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으므로 집이 준비되어 있다고 수줍게 자랑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는 집이 없었던 적이 철들기까지 있었으므로 집=자존감의 문제였던 것, 그러니 칭찬받고 싶은 마음으로 집밍아웃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생 1회 차. 아무것도 몰랐으니...


다시 스물일곱 살로 돌아가 남편이 집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면 인생 2회 차에서는 이렇게 말해주련다.

"대단하세요. 멋지십니다. 얼굴은 멋지게 안 생기셨는데 어쩜 이렇게 멋지실까요. 박수 짝짝짝"해 줄텐데, 남편을 만났을 때 내 인생은 1회 차임에 틀림없다.

 

                                                          푹푹 발이 빠지게 보고 있는 '브리쉬업 라이프'

어이없게 죽는 상황을 만나지만 같은 인물로 인생을 2회 차 3회 차로 쭉 연결해서 사는 주인공 안도 사쿠라(극 중 이름 아사미)은 다시 태어나 업그레이될수록 자기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상향시킨다. 1회 차에서 시청 공무원이었던 직업도 다시 태어날수록 목표가 분명해져서 약사, 의사, 파일럿을 거쳐 다시 시청 공무원, 마지막에는 사고 없이 자연스럽게 죽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결말의 뉘앙스를 풍기며 드라마는 끝나지만 이걸 왜 이제야 봤지 싶게 재미+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일본 드라마의 특징(큰 갈등이 없는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에피소드 목록 다 보고도 다시 반복해서 보는 중이다.


남편에게 집을 사라고 했던 석태씨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우리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었다. 남편과는 고등학교 친구. 말이 느렸지만 개그코드가 내장되어 있는 사람이라 함께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았었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었을 때 우리는 제주도로 이사해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석태씨 어머니가 3일장을 하지 않고 1일장만 하고 장례를 접었다고 했고 우리는 그가 살아 있었을 때 남편의 모임 친구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집밥을 더 많이 차려준 공덕이 있었으므로 장례식을 가지 않아도 나도 남편도 석태씨가 섭섭해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어린 애들 셋을 두고 우리만 육지로 나가 장례식에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져서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데이 트레이딩을 했던 석태씨는 오전 장이 끝나면 오후에는 남편과 함께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집 딸과 우리집 애들 셋, 내 남편 하나, 남의 남편 석태씨까지 24평 우리집 저녁 식사는 요란했었다.

 

어느 날 내가 병욱이네 집에 놀러 가서 병욱이 엄마와 차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석태씨가 전화를 해서 "오늘 저녁은 뭐 먹어요?" 물었을 때 그 상황을 놀라며 바라보던 병욱이 엄마가 생각난다. 

 

남편한테서도 저녁에 뭐 먹을거냐는 말을 한 번도 안들어봤던 나는 식탐이 많았던 석태씨의 저녁까지 그의 부인 대신 챙겨가면서 그 집 딸도 봐 주고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전주에서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갈 때 시댁과 단절되는 일시적 자유와 함께 석태씨의 저녁과 그 집 딸까지 봐주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있었다.

 

우리가 제주도로 들어갈 때 석태씨는 몹시 서운해했었고 나는 남편의 발령이 감춰둔 선녀의 날개옷같았었다.

 

우리가 장례식에 못 가보는 상황이 섭섭했었는지 다섯살 먹었던 우리 둘째 꿈에 나와서 우리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갔던 석태씨는 귀찮기는 했지만 자상했던 사람이다. 아이들은 석태씨가 죽은 줄도 몰랐는데 다섯살이었던 둘째가 '어젯밤에 아저씨 꿈꿨어'라고 했을 때, 놀랐지만 그렇게라도 우리에게 들러서 인사하고 가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애달프기도 했었다.


그가 다녔던 신일건설의 신일 아파트가 남편과 나의 첫 새 집이었고 이후로 새집에는 한 번도 못 살아봤다. 

집이라는게 새 집이라서 꼭 좋은 건 아니지만 내가 사는 게 처음이 되는 집을 만나는 일도 쉽진 않은데 석태씨 덕분에 분양 후 우리가 살았던 시점이 1이 되었던 집은 석태씨 덕분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는 내가 차려줬던 밥값은 하고 간 것 같다.


밥 차리고 요리해서 주는 건 싫어한 적이 없었다. 다이소에서 칼 한자루만 새걸 사도 요리하는 맛이 나는 마당에 구축이지만 새 집 만들어서 들어와서 새 부엌에서 요리를 하니 아직은 쓸고 닦고 요리하고 모두 즐겁다.

저녁에 따뜻한 물에 들어가 입욕제 풀어놓고 있을때 하루 피로가 싹 풀리니 그것도 좋고, 아직은 '새집 좋음 증후군'에 빠져 살고 있다. 덕분에 남편 밥상도 물 만났다.

 

'넓어서 편리한 집이 아니라 작아도 목적이 분명해서 좋은 집이 있다'는 말을 봤는데 딱 우리집이 그렇다.

엄마가 준 옛날 꽃 접시에 내가 만든 잠봉샌드위치, 현숙쌤이 선물해준 빌레로이앤보흐 머그 잔에 마시는 커피.

"새 집 좋음 증후군" 당분간 지속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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