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네 바람이 단단이 났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질투를 할 수도 없고 꽃하고 질투해봤자 질 게 뻔하니 꽃의 머리끄댕이를 잡을 생각도 없습니다.
남편은 화단이라는 장소와 바람이 났습니다. 헤집어서 갈아 엎을 수도 없네요.
처음 이사 올 때는 아무도 쳐다도 안 보던 죽은 공간이었는데 눈길주고 가꾸다 보니 언젠가부터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가 들여다보는 작은 꽃밭이 되었습니다.
예쁘게 가꾸셔서 보기 좋아요 한마디 해주면 그 말 한마디에 남편은 쭈그리고 앉아서 꽃밭의 노예가 됩니다.
메리 골드 노랑꽃이 그렇게 예쁘다며 베시시 웃는 남편의 모습은 가관입니다만, 그가 가꿔놓은 우리집 여름 화단은 볼 만 합니다. 봉숭아 꽃이 착착착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오고 있고 맘 졸여가며 옮겨 심은 채송화는 자리를 잡은것같습니다.
남편이 옮겨 심은 보라색 꽃은 원래 이름 놔두고 남편이 새로 지었습니다.
수줍음 꽃이라고 지어 놓고 그렇게 부르고 있네요. 낮에는 피었다가 저녁에 퇴근할 때 보면 잎을 딱 오므리고 있어서 수줍음 꽃이라고 부르겠답니다. 이름 지어놓고 웃고, 쳐다보면서 웃고 우리 애들 키울 때 헌신적으로 육아에 집중하던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가서 꽃을 돌보니 얘들이 여기서 저기서 고개 들고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바람은 화단하고만 난 게 아닙니다. 옥상에 있는 상자 텃밭에도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주 주력 상품은 오이같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따 먹을 것 같다고 날짜 세고 있고 주말에 심은 파프리카까지 기대 종목이니 남편의 옥상 상자 텃밭은 심심할 틈이 없네요.
남편은 농사를 유튜브로 배웠고 집 오이는 냄새가 다르다는 걸 남편 텃밭에서 알았습니다.
괜찮은 바람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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